월간참여사회 2005년 08월 2005-08-01   912

올 여름에는 비우자

휴가철을 맞아 산사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짧게는 1박2일로부터 길게는 보름,한 달에 이르기까지 그가 묵는 절의 일상에 따라 깜깜한 새벽의 예불로부터 교교한 달빛 아래 명상의 시간까지 산사체험을 한다. 새벽부터 밤까지의 일정만으로도 힘들지만, 도시의 일상에서 강고하게 찌들었던 버릇들을 단 하루라도 버리기 쉽지 않을텐데, 유람과 관광을 뒤로 하고 고요한 산사로, 깊은 암자로 들고 있는 것이다. 단지 불교도의 문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불교의 문제도 아니다. 부처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만나러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부처는 어디에나 있고 나 자신 속에도 있다는 화두에 따르면 그건 중요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들어갈 때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비워야 하고, 나올 때는 그나마 찌꺼기들도 더욱 비우고 나오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허위와 욕망에 찌들어 있는지는 내 앞의 ‘여백’을 보고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에 따라 시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집안의 여백, 여백의 공간. 무슨 전자제품이라도, 아니면 액자라도 갖다 붙이지 않으면 그대로 두고는 참지 못한다. 미완성이며, 채움을 기다리는 공간으로만 여백은 의미 있다고 느끼고 산다. 땅의 여백, 여백의 땅. 갈아엎고 무너뜨려 짓고 세우지 않으면 그대로 두고는 참지 못한다. 개발하지 않으면 빈곤이고, 어리석음일 뿐이다. 세월의 여백. 죽음의 여백. 불로와 불사의 약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고, 그리하여 황우석 교수는 이 시대 가장 뛰어난 과학자이며, 구원자이다.

올 여름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은 ‘비운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보자. 우리가 얼마나 채워만 왔는지, 채우다 엉켜서 금융위기를 맞고, 엉킨 것 위에 또 채우기 위해 신자유주의가 흐르고, 종래는 채워진 것으로 인해 내가 눌리고, 내 목줄을 죄고, 내 발 디딜 틈도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도록 해보자.

‘비운다’는 것은 결코 물러서거나 나아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비운다’는 것은 올곧게 나아가도록 하고, 바른 마음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도록 하는 힘이다. 우리 사회의 갖가지 모순들이 하루 이틀에 해결될 일이 아니고, 편협한 감정이나 자신의 이익을 기반으로 해결되어서는 아니 되는 일이라면, 이번 여름, 하나의 터널을 지나고 ‘비운’ 마음으로, 또 끈질기게 시작해보자.

성종규 참여연대 협동처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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