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8월 2005-08-01   8890

1965년 한일조약의 문제점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관계가 사뭇 불안하다. 1965년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이하 「기본조약」)과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이하 「협정」)이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체결 40주년을 맞은 지금,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을 둘러싼 ‘역사교과서 전쟁’이 정기화·격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미 해결되었어야 할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다수의 소송이 일본과 미국과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 3월 17일에는 한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가 ‘철저한 진실규명, 진정한 사과와 반성, 용서와 화해라는 세계사의 보편적 방식에 입각하여 과거사 문제를 풀어갈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 일본의 외무대신이 ‘양국관계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것은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세계사의 보편적 방식’이란 무엇이며, ‘양국관계 역사의 수레바퀴’는 과연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이것은 곧 한일관계의 법적 기본틀인 1965년 한일조약에 의해 무엇이 해결되었는가, 그리고 남은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름 아니다.

합의 없는 조약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기본조약」 2조,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조문이다. 이 조문에 대해 1965년 당시부터 해석은 둘로 나뉘었다. 한국은, 영문조약문의 ‘already null and void’라는 표현을 ‘이미 무효’라고 옮기고, 소위 한일합병조약을 비롯한 1900년대 초 한일 간 조약들은 일본의 침략주의의 소산이기 때문에 당초부터 효력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일본은, ‘already null and void’라는 표현을 ‘もはや無? (이제는 무효)’라고 옮기고, 위 조약들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체결된 것이기 때문에 원래는 효력이 있었지만, 1948년 8월 15일 한국 독립으로 효력이 상실되었고, 그 결과 1965년 시점에는 무효가 되어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일 양국은 「기본조약」 2조에 합의했지만, 그것이 해결하고자 했던 ‘1900년대 초 한일 간 조약들의 효력의 문제 =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의 문제’에 관해 사실상 아무런 합의도 보지 못한 것이다. 1965년 당시 양국이 상반된 입장을 좁히는 것을 포기하고 ‘already’라고 하는 이현령 비현령(耳懸鈴鼻懸鈴) 표현을 삽입하여 각각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는 ‘애매성에의 합의’ 혹은 ‘무합의에의 합의’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미합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협정」 2조, 즉 한일 양국은 양국과 양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조문이다. 이 조문에 대한 양국의 해석도 처음부터 서로 달랐으며, 각국의 해석 또한 시대에 따라, 국면에 따라 달랐다.

쟁점은, 일본이 한국에 무상으로 3억 달러를 제공한다고 규정한 「협정」 1조와의 관계와 한국인 개인의 권리의 소멸 여부이다. 일본은, 1조와 2조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따라서 3억 달러는 권리문제 해결의 대가가 아니라 ‘독립축하금’ 혹은 ‘경제협력자금’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인 개인의 권리는 「협정」에 의해 소멸된 것은 아니지만, 그 중 ‘재산, 권리 및 이익’은 일본의 국내조치법에 의해 소멸되었다고 주장했다. ‘청구권’에 관해서는, 1965년 당시에는 적극적으로 언급하지 않다가, 1990년대에 들어와 청구권이 존재한다고 인정했으나,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청구를 해도 그것에 응할 의무가 없다’며 발뺌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 1조와 2조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고, 따라서 3억 달러는 권리문제의 해결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인 개인의 권리에 관해서는, 1965년 당시에는 「협정」에 의해 소멸되었다는 투의 주장을 하다가,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의 권리만 소멸된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1970년대의 보상입법으로 소멸되었다고 다시 바꾸었다.

이제라도 책임과 반성을 따져야 한다

이와 같이 권리문제의 해결에 관해서도 한일 양국의 명확한 합의가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보다 심각한 것은 해결되었다고 하는 권리의 원인이 「협정」에는 전혀 제시가 되어 있지 않으며, 그 결과 무엇이 어디까지 해결되었는지가 애초에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이와 관련해서는 1965년 당시의 한일 양국 모두가, 「협정」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것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4조 (a)에 따라 일본과 한반도가 분리·분할된 데 수반되는 재정·민사상의 권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결국, 「협정」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지배’와 관련된 권리문제는, 기껏해야 그 일부만이 해결되었을 뿐, 여전히 미해결의 상태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일 간의 진정한 우호를 위해, 1965년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지금이라도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양국관계 역사의 수레바퀴’가 위치하는 지점이다.

냉전 종식 이후의 변화는 문제 해결에 호의적인 여건을 만들기도 했다. 일본은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와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통해, ‘한국 국민에 대해 식민지지배에 의해 통절한 반성과 사과’를 해야 할만한 ‘커다란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했다. 이것은 식민지 지배의 성격에 관해 일본이 한국의 주장 쪽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변화에 맞추어 「기본조약」 2조를 다시 자리매김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일본이 식민지 지배로 초래된 ‘커다란 손해와 고통’에 따르는 권리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1965년에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았고,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았다. 이제 잘못을 인정했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진상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그 진상에 기초하여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사죄할 것은 사죄하고 구제할 것은 구제해야 한다. 또 진상에 기초하여 현재와 미래의 역사교육을 해야 한다. 이것은 1945년에 했어야 할 일이다. 적어도 1965년에는 했어야 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양국에 요구되고 있는 것은 40년이나 60년 ‘지체된 출발’이다. 그만큼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식민지 지배라고 하는 인류의 부끄러운 역사에 ‘세계사의 보편적 방식’의 밝은 빛을 비추는 귀중한 작업이다.

김창록 건국대 법과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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