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8월 2005-08-01   2146

아시아에 남긴 일제 침략의 경험과 기억

일제의 침략전쟁이 종료된 지 60년이 지났으나, 아시아에서 이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과 갈등의 원천이다. 침략을 당했던 국가들은 일본이 진심으로 반성과 사죄를 하고, 피해자와 피해국가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며, 군국주의로 회귀하지 않을 것을 제도와 정책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비해 오늘날 일본은 점점 극우 보수 세력의 주장을 지지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지난 60년을 되돌아보면, 일본의 침략행위 정당화는 부침(浮沈)을 거듭했고, 일본 내에도 이를 비판하고 저지하려는 세력이 적지 않았다. 침략을 받았던 국가들 안에도 당시에 대한 평가가 여러 갈래로 존재한다. 이처럼 과거사는 오랜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기억투쟁 대상으로 현존한다.

일제 침략의 국가별 경험

최근 일본의 태도를 둘러싼 갈등의 뿌리는 일제 침략에 대한 ‘기억’과 ‘평가’에 있다. 이 때의 기억을 둘러싼 대치점은 개인이 아니라 집합적 성격을 두고 형성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합적 기억을 형성하고 유지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개체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2001년에 이어 2005년에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런데 침략을 경험한 국가들이 일본 역사교과서 파문에 동일한 수준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 점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국과 중국은 왜곡된 부분을 다양한 방법으로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는 반면, 다른 국가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그다지 들려오지 않는다. 어쩌면, 이는 일제 침략의 경험과 기억의 차이에 기인하는지 모른다. 실제로 일제의 침략행위는 반세기 동안 이루어졌고, 점령지에 대한 통치 및 지배 전략도 달랐다.

일찍이 일제의 식민지가 된 곳은 대만, 조선, 사이판이었다. 대만은 1895년, 조선은 1910년, 사이판은 1914년 각각 일제에 합병되었다. 이후 일제는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2년 만주국을 세웠다. 몇 년 뒤에는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남동쪽과 내륙으로 진출하는 한편, 장고봉 사건을 계기로 소련과 전쟁을 하였다. 중일전쟁 이후 일제가 점령한 지역은 식민지라기보다 점령지로 관리되었다. 식민지를 구축할 만한 시간과 저항을 진압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가 점령지를 최대로 확보한 것은 이른바 태평양전쟁을 통해서였다. 이 전쟁을 통해 일제가 점령한 국가들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홍콩, 필리핀,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에 이른다. 많은 지역은 이미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미얀마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서구 제국주의를 축출하고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해 일제에 협력하기도 했다.

아시아가 기억하자

과거에 대한 집합적 기억을 형성하는 중요한 방법은 다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기념일과 기념행사를 통해서이다. 남한, 북한, 싱가포르 등에서는 천황이 항복을 선언한 8월 15일을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 남한은 이 날을 ‘광복절’로, 북한에서는 ‘조국해방기념일’로 부른다. 중국은 민간에서는 8월 15일을 기념하고 있으나, 정부 차원에서는 일제가 연합국에게 항복문서를 제출한 다음날인 9월 3일을 ‘항일전쟁 승리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필리핀은 4월 9일을 ‘대일전 희생자 추모’로, 홍콩은 8월 29일을 ‘해방기념일’로 한다. 이와 같이 일제의 침략 경험을 가장 상징적으로 기념하는 날과 일제의 패망을 해석하는 관점에도 차이가 있다.

둘째, 세대간 기억의 전달과 계승을 위한 교육체계의 핵심적 구성물인 교과서이다. 교과서는 정치체제의 변동과 과거사에 대한 재평가 등을 통해 바뀌기 마련이지만, 일제 침략에 대해서는 아시아의 모든 국가가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교과서에 기록하는 주요 내용은 일제의 침략으로 인한 역사 및 사회문화의 단절, 전쟁 동원 및 폭정에 의한 인적 피해, 공출과 수탈로 인한 물적 피해와 이로 인한 빈곤, 일상생활의 고통과 억압 등이다. 그렇지만 이를 어떻게, 어떤 수준에서 기록하는가 등에서 나라마다 다르고, 강조하거나 축소하는 부분도 생긴다. 일례로 중국과 북한은 사회주의적 항일 투쟁을 강조하고, 애국주의를 고취시키는 방향으로 활용하고 있다. 남한 역시 항일투쟁을 애국주의로 활용하고 있지만, 임시정부와 광복군 등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연합국과 조선인의 독립투쟁에 의해 해방이 이루어졌음을 강조한다.

셋째, 일제 침략의 흔적이 배어있는 장소와 공간, 독립을 기념하는 공간들의 기억이다. 이는 다시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일제가 통치를 위해 만들었던 건축물과 상징물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사라졌으나 대만, 한국처럼 오래 식민지배를 당했던 나라에 아직도 이러한 시설물들이 남아 있는데, 대만은 이를 관광자원화 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 등과 같이 소멸 혹은 왜소화하는 방향을 선택하였다.

② 일제의 전쟁 과정에서 파괴되거나 훼손되었던 시설물과 장소들이다. 전쟁의 흔적은 상당부분 복구되었으나 동남아시아 곳곳의 전장과 전투 흔적은 기억을 생생하게 유지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③ 일제 통치의 경험 및 상처를 기억하고, 해방과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기념공간과 기념물들이다. 우리의 경우 1987년 8월 15일 준공된 독립기념관, 1992년 8월 15일 개원한 서대문 독립공원, 1998월 11월 개관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등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가장 대표적 시설인 독립기념관은 독립운동의 일부가 누락되어 있고, 지난 정권들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킨 것이 문제가 되자 1945년 이전의 전시만으로 국한하는 소극성을 보여주고 있다. 독립기념관은 전두환 정권을 위협하던 정당성 위기의 극복과 1982년 발생한 일본 역사교과서 파문에 의한 국민적 정서를 바탕으로 건립된 것이었다.

1982년의 상황은 중국에도 영향을 미쳐 1985년 난징대학살중국피해자동포기념관, 1987년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 건립을 자극했다. 중국에는 항일전쟁과 일본군의 범행을 폭로하는 기념관이 100여 개에 이른다. 싱가포르의 전쟁기념관, 베트남의 호치민 박물관 등에도 일제 침략의 기억이 전시되어 있다.

왜 식민지의 경험을 기억해야 하는가?

일제 침략에 대한 평가와 기억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갈등의 소재가 될 가능성이 많다. 상이한 경험으로 구성된 ‘과거’에 대한 기억을 일정하게 합치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이것은 ‘또 다른 의미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억의 정형화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억을 인위적으로 탈각시켜버리는 것이다. 생물학적 망각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왜곡과 변질, 자기 중심적 해석으로 과거를 재구성하여 진실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방식으로 유지되는 기억의 배후에는 과거와 같은 제국주의 침략 전쟁이 재현되기를 갈망하는 죽음의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을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정호기 전남대 호남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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