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8월 2005-08-01   1201

과거청산에 동아시아의 미래가 달렸다

20세기 전반, 일본은 아시아 유일의 제국주의 패권국가였다. 서구 열강의 집중 공격 대상이던 중국은 반(半)식민지로 전락했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는 서구열강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아야 했다. 일본은 1937년 중국침략을 통해 제 2차 세계대전을 선도하고 1941년 미국을 선제 공격하여 전쟁을 확산시키면서, 동아시아인에게 깊은 상처와 고통을 남겼다. 난징대학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등은 명백한 전쟁범죄였고, 동남아 침략은 서구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을 염원했던 아시아인에게 더 깊은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은 패망했다.

전후 동아시아의 최대 현안은 과거청산이었다. 각국은 친일잔재 청산에 나섰다. 일본은 마땅히 침략과 지배로 주었던 고통을 사과하고 진상을 규명하고 배상해야 했다. 하지만, 남한의 친일청산 실패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전범 처리 및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처리, 각국과의 국교 재개 등은 미국의 이해관계에 좌우되었다. 전쟁의 최고 책임자였던 천황은 그 자리를 지켰고, 일본인들은 패전을 ‘종전’으로 이해했고, 그들의 뇌리에는 미군의 도쿄 대공습과 원폭투하에 대한 피해의식만 남겨졌다.

그래서 과거청산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 산을 넘지 않고는 동아시아가 함께 모색할 미래도, 전망도 없다. 과거청산을 위한 동아시아 연대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미래를 여는 관건이다. 과거청산을 위한 동아시아 연대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냉전시대에 연대란 불가능했다. 1990년대 들어와 한국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면서 체제를 초월한 연대가 본격화되었다. 그것은 과거 청산을 외면하는 일본정부와의 전투를 위한 ‘실천’ 연대였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모색하는 동아시아담론이 등장하면서 ‘서로를 알기 위한’ 지식인 교류가 본격화 된 것도 이 때다.

2000년대에 들어와 일본의 후쇼사 교과서 왜곡문제가 터지면서 한·일, 중·일 간에 과거청산을 둘러싼 갈등의 골은 오히려 더 깊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반면에 한·중·일의 시민운동계와 학계의 연대는 진일보했다. 일본 정부와 우익에 대한 즉자적 대응을 넘어서서 상시적인 연대기구들이 결성되었다. 그 연대 강화의 대표적 결실이 한·중·일 공동 역사 교재인 『미래를 여는 역사』이다. 이 책은 세 나라의 시민운동계와 학자, 교사가 연대하여 일본의 왜곡 교과서를 규탄하고, 나아가 평화와 인권을 추구하는 동아시아 미래를 열기 위해 출간되었다.

하지만, 상황은 아직 비관적이다. 일본은 여전히 그들의 ‘가해’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다시 끔찍한 군국주의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강력한 항의는 그나마 의식하는 그들이 동남아시아의 역사는 마음껏 농단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일본의 동남아 침략은 서구열강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었고 자신들은 해방자였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들으면서 한·중·일, 남·북 연대와 함께 동남아를 포함하는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비록 전망이 밝지는 않지만, 과거청산을 위한 연대 투쟁과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 형성을 위한 교류가 활발한 2005년 8월, 오늘의 노력이 지속되는 한, 희망은 있다.

김정인 『참여사회』편집위원, 춘천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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