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8월 2005-08-01   1044

선출되지 않은 권력, 삼성을 누가 감시할 것인가

‘삼성보고서’ 발간하는 참여연대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1987년 이후 역전된 국가와 기업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발언이다. 최근 들어 삼성의 독주는 우뚝하다. 오죽하면 한 대표적인 보수 신문마저 ‘삼성의 나라’라는 칼럼을 실었을까. 이 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중앙일보 조사에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신뢰할 만한 집단으로 삼성이 선정되더니만, 급기야 서울신문이 선정한 ‘한국을 움직이는 101인’에 노무현 대통령, 황우석 서울대 교수를 제치고 이건희 회장이 1위에 올랐다.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 1위, 이건희

이처럼 특정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면서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문제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이는 삼성과 관련된 법 집행(검찰, 법원, 금감위)의 영역에서 도드라진다. 삼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되지 않고 지체되는 현상은 ‘법 집행의 자의적 유예와 왜곡된 집행’이다.

2000년 5월 법학교수 43인이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삼성에버랜드의 이사 등을 배임 혐의로 고발하였다. 에버랜드의 이사들이 1996년 10월 이 회장의 아들 이재용 씨에게 7,700원이라는 저가에 전환사채를 발행해주는 방법으로 에버랜드 지배주주의 권한을 이재용 씨에게 넘기면서 주주들과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 이유이다. 일반인에게는 놀이기구와 야외 수영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삼성에버랜드는 실제로 삼성 그룹 안에서는 지주회사 노릇을 한다.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삼성그룹의 주요 계열사, 대표적으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불과 1년 뒤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이 중앙일보로부터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인수한 가격이 10만 원 대라는 점에 비춰보면 이사들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사실은 너무나 명료해 보인다.

그러나 이 간단한 ‘1차 방정식’이 검찰에게는 ‘고차원 방정식’쯤 되었나보다. 검찰은 법학교수들의 고발에도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다가 2003년 12월 공소시효 직전에 이건희 회장 등을 제외하고 2명의 임원 만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기소했다. 법원 역시 선고를 위한 결심공판을 앞두고 대단히 이례적으로 재판을 재개하는 등 사건 발생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종결되지 않고 있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만약 이 사건에 재벌이 관련되어 있지 않았더라도, 또 만약 그 재벌이 삼성이 아니었더라도 이렇게 긴 시간이 걸렸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장악한 권력, 삼성공화국

이런 현상들은 삼성이 자신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삼성전자는 작년 세계에서 9개 뿐이라는 당기순이익 10억 달러(10조 원)클럽에 가입하였고, 삼성그룹의 14개 상장 계열사의 시가총액은 107조 원으로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 475조 원의 22.5%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아직 외환위기 이전의 습관대로 ‘5대 재벌’이란 말을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삼성과 기타 군소 재벌이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정도이다.

이러한 삼성그룹의 거대한 경제력이 삼성공화국 권력의 시원(始原)이다. 정치인이 투표를 통해 권력을 얻는다면 삼성은 돈과 사람으로 권력으로 행사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무기(bullet)가 유권자의 투표(ballot)라면, 정치자금과 광고, 기부금이 삼성의 무기이다. 돈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사람으로 해결한다. 능력 있는 법조인과 관료들이 삼성으로 몰려들고 있다. 직접 고용된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내로라 하는 인물들이 삼성이 운영하는 재단의 이사로, 사외이사로 삼성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필요하면 수시로 통하는 비공식적인 관계를 말하는 이른바 ‘전화 한 통화의 관계(relation of telephone)’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할 의회와 정부, 사법부의 결정이 특정기업의 이익에 밀려 왜곡되고 있다. 실제로 삼성과 관련된 민·형사 사건이나 행정사건 어느 것 하나 법과 원칙대로 해결되는 것이 없다. 설사 운이 나쁘게 적발되더라도 이들은 조사 단계부터 불구속 수사나 무혐의 처분의 특혜를 받고, 진짜 억세게 운이 나빠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실형을 받지 않고, 결국에는 사면을 받아 나온다. 최근 불법 대선 자금을 준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삼성그룹 임원의 예를 보라.

이처럼 기업이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국민 경제 전체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자본주의의 생명력은 시장에서의 공정경쟁이 영속적으로 보장될 때 유지된다. 그러나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몰락을 가져올 무한경쟁을 반길 이유가 없다. 따라서 기업은 성패 여부가 불확실한 혁신이나 위험 관리(예컨대 지배구조개선) 대신 로비와 같은 지대추구행위(경영권의 불법세습)를 좇게 된다. 그 결과 그 기업과 사회 전체의 경쟁력은 약화된다. 지금 삼성이 그런 징조를 보이고 있다.

거대 경제 권력에 위협받는 민주주의

삼성은 분명히 ‘권력’이 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에 의해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하는 대신 삼성은 위임받은 바 없는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선출된 권력은 투표라는 선출단계에서, 그리고 집행단계에서는 의회, 검찰 등 여러 권력 감시장치의 견제를 받는다. 그러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그 어떠한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다. 이제 묻는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삼성을 누가, 어떻게 감시할 것인가.

참여연대는 곧 내놓을 삼성보고서에서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갈 것이다. 참여연대는 8월 초부터 삼성공화국의 실체를 보여주는 보고서를 제작할 예정이다. 보고서는 홈페이지(samsung.pspd.org)를 통해 회원과 일반인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삼성공화국’ 논란에는 결국 견제 받지 않는 경제권력이 우리 사회가 어렵게 성취해놓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말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녹아있다. 삼성보고서는 이에 대한 대안을 논의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최한수 참여연대 경제개혁국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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