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8월 2005-08-01   1126

인권 군대, 꿈이 아니다

흔히들 인간의 권리는 군에 입대하는 순간부터 정지된다고 한다. 부모 자식이나 교사 학생의 관계와 유사하게 군에서 상관(장교, 부사관에 심지어 선임병까지)과 부하의 관계는 일종의 특수권력관계라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는 단 2년 동안 자신의 인권을 유예시키는 것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다.

군의 존재 이유를 들어 ‘인권 사각지대로서의 군’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적에 대한 적개심을 극대화해야 하는데 적군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보편 인권’이라는 잡생각이 끼어 들면 무너지기 쉽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사시 “돌격 앞으로!”라는 명령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군인들이 인권을 요구하게 되면 곧바로 이기적이 되고, 이기적이 되면 적전분열에 자중지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군기론1 – 내무생활이 더 빡세다

군대와 인권이 도저히 공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특히 숱한 예비역 남성들을 중심으로 한 이들의 공통된 인식은 ‘군대에는 반드시 군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사시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군기가 확립돼야 군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가뜩이나 원하지 않는 군대에 끌려온 젊은이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군기 잡기’이며, 나아가 군의 존재 목적이나 사명과 상관없이 사람을 옥죄기만 하는 ‘군기 잡기’가 문제다.

칼잠을 자거나 ‘개인용’이 아닌 ‘공용 컴퓨터(Public Computer)’ -그것도 인터넷이 되지 않는-를 사용한다고 해서 군 생활이 힘들다고 하지는 않는다. 혹서기와 혹한기의 훈련, 불침번이나 경계근무 서기, 삽질 낫질 비질의 이른바 3질(톱질을 더해 4질이라고도 한다), 밤늦게까지 행정반에서 이런저런 행정서류 작성하기 따위가 힘들어서 군대를 불평하는 사병들은 별로 없다. 그런 행위들이 쉬울 리만은 없다. 그러나 군사훈련, 작업, 행정업무, 경계근무 등은 분명한 목적과 사명이 있고 병사 상호간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크게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현역이나 예비역들은 편히 쉬고 편히 자야 할 내무생활이 가장 참기 어렵고 힘들었다고 지적한다.

일과시간에는 그냥 넘어가도 될 일들이 내무생활이 시작되면 달라진다. 일단 내무생활이 시작되면 휴식 군기, 면회 군기, 식사 군기, 취침 군기, 목욕 군기, 청소 군기 등 사병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군기’가 따라 붙는다. 군기가 필요해 보이는 일과시간에는 오히려 군기가 느슨하고, 군기가 불필요해 보이는 내무생활에서는 ‘빡센’ 군기가 요구되는 현실은 우리 군대가 잘못 가도 한참 잘못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업이 힘들고 훈련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내무생활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것이 현실이다.

군기론2 – 신세대라 군기가 빠졌다?

군에서 사고가 날 때마다 숱한 예비역 남성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은 요즘 군에 입대하는 장병들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신세대이고, 부모 밑에서 곱게만 자라난 세대라 기본적으로 군기가 빠져 있고, 이 때문에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병들의 잇단 자살도 군기 빠진 신세대인 탓으로 설명한다. 예전에는 군기가 꽉 잡혀 있어서 아무리 군 생활이 힘들어도 자살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는데, (그들이 보기에) 요즘은 군 생활이 예전처럼 힘들지도 않은데 애들이 약해 빠져서 적응하지 못하거나 자살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군대는 더 힘들어져야 하고, 더 엄정한 군기(그것도 사실은 내무생활에서의 군기에 지나지 않지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군기’에 대한 잘못된 환상이 실증적 자료조차 압도하는 현실을 드러낼 뿐이다. 지난 20년 동안 군대 내 자살자의 수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1980년대 초반에 비하면 절반 수준도 안 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이들의 생각대로라면 오히려 두 배, 세 배로 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군기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람들이 군기 빠진 신세대 장병들 때문에 28사단 사건 같은 참사가 일어나고, 자살하는 장병의 수도 많다고 믿고 있을 뿐이지 사실은 전혀 다르다.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전에는 훨씬 더 큰 사건이 일어나도 얼마든지 은폐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게 쉽지 않다는 것 정도일 게다. 군대는 예전과 다르지 않은데 군에 들어오는 장병들이 참을성 없고 나약해서 적응 못하고 문제가 생긴다는 생각은 근거가 빈약한 편견이고 예단이다.

내무반부터 바꾸자

군대 내 인권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병들의 월급을 올려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내무반의 시설과 환경을 개선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비록 2020년이라는 까마득하게 먼 훗날이지만, 50만 명 선으로 병력을 감축한다는 발표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군 생활에서 가장 힘겨운 내무생활의 개념과 구조를 혁신하는 것이다. 지금의 내무반은 ‘작전 대기’의 개념에 따라 구성돼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불편해도 상관없고, 쓸데없는 군기를 잡는 것도 모두 전투력 강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미신을 재생산하고 있다. 이 내무반에 주거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내무반은 철저하게 쉬고, 놀고, 개인적인 일을 하고, 편히 자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과시간에는 엄연한 군인이지만, 일과를 마치고 내무반에 돌아오는 순간, 시민으로서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

군인이기에 제한되고 유예되고 통제된 모든 권리를 적어도 내무생활에서는 보장하자는 것이다. 일과가 끝나면 휴대전화와 인터넷 사용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통신의 자유를 보장하자. 경계 근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외출과 외박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내무반에 가족과 친지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자. 내무반에 개인의 공간을 허용하여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일기도 쓰고 편지도 쓸 수 있도록 사생활의 비밀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자. 사병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사관, 장교 등의 간부들도 영외 생활을 하면서 주거와 일터가 명확히 구분된 상태에서 근무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2년의 의무복무 기간이 끝나면 사회로 돌아가야 하고, 부여받은 임무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사병들이 간부들도 누리는 생활을 누리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예산이나 시설, 군사보안 등이 걸림돌이 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문제는 오히려 그런 것을 걸림돌로 내세우는 구태의연하고 경직된 생각이고, 쓸데없는 군기를 강요하는 미신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라 군대 내 인권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이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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