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8월 2005-08-01   955

회비만 내더라도 회원 되는 게 낫다

전북 완주군 삼례 박미현 회원

서울을 출발한지 2시간 반쯤 지나 전북 완주군 삼례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그곳은 마침 장날이라 상인들로 북적댔다. 울긋불긋한 옷들이 길가에 즐비하고, 트럭 한 가득 마늘을 싣고 와 파는 아저씨, 밭에서 캐온 작물들을 펼쳐놓고 앉은 할머니의 모습이 정겹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장을 지나면서 마음이 훈훈해진다. 장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박미현(45세) 회원이 운영하는 치과 의원이 있다. 그 곳엔 박 씨와 미소가 귀여운 간호사 둘, 그리고 눈에 호기심이 가득한 꼬마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벽에 걸어둔 참여연대 ‘가족회원증’

익산이 고향인 박미현 씨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이곳을 떠나지 않은 전북 토박이다. 치과 개업 19년째인 그는 학업도, 개업도, 결혼도 이곳에서 했고 지금껏 여기 살고 있다.

그가 참여연대 회원이 된 것은 지난 가을이다. 진작 알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할 거면서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가입을 미루던 그가 작년 가을 『한겨레』에 난 기사를 보고 용기를 냈다.

“왜 그런지 참여연대는 특별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겐 문턱이 높게 느껴졌어요. 그러던 중 신문에 소개된 참여연대 기사를 보고 ‘회비만 내는 회원이라도 참여하는 게 좋겠다. 안 하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곧바로 참여연대로 전화해 아무 활동도 할 수 없고 관심만 있는데 가입해도 되는지 물어봤어요. 물론이라는 흔쾌한 답변을 듣고 바로 가입했죠.”

그는 혼자 가입하지 않았다. 교수인 남편(김인휴, 53세)과 고 2, 중 2인 두 딸 규린이와 동린이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회원이 되었다.

“처음 가입할 때 남편과 큰 딸은 상의해서 함께 신청했습니다. 그랬더니 참여연대에서 가족회원증을 보내왔어요. 제가 무슨 상장이나 증서 같은 거 걸어두는 걸 싫어하는데 가족회원증은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싶었어요. 아이들 마음 속에 참여연대 회원이란 생각을 깊이 심어주고 싶었거든요. 그걸 본 막내딸이 자기만 빠졌다고 항의해(?) 막내까지 가입하게 된 거죠. ”

박미현 씨는 딸들에게 주고 싶은 것이 많다. 사회를 바로 보는 눈과 참여하는 용기도 그중 하나다. 아이들이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나려면 시민단체나 사회에 관심을 갖고 직접 참여하는 것보다 확실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다. 이 가족은 꽤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4년 전 쯤 새만금 갯벌 살리기 환경축제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아이들이 참 즐거워했고 새만금에 대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언젠가는 실상사를 방문해 ‘작은 학교’를 둘러보고 도법스님의 강연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가족과 함께 한 시간들이 딸들에게 자신의 가치관과 삶을 올바르게 세우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부모의 바람 덕분인지 이제 제법 자란 딸들은 가끔 엄마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목욕탕에 함께 가면 시끄러워요. 여기 저기 사용하지 않는 물이 틀어져 있는 걸 보면 가만있질 못해요. 가서 물을 잠가야 되고, 수도마다 계량기를 달아야 한다 어쩐다 떠들어대 정신이 없습니다. 둘째 딸은 음식 남기는 것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해요. 라면 국물조차 버리면 안 된다고 냉장고에 넣어두자고 할 땐 흐뭇하면서 이런 게 교육이구나 하고 실감합니다.”

어머니에게 배운 것 딸에게 물려주고 싶어

그는 아이들이 잘 되길 바라지만 또 한편 부모의 욕심이 앞설까봐 조심한다.

“저의 가치관과 생각이 옳다고 해도 아이들한테 강요할 수는 없잖아요. 아이들이 자기 삶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딸들을 바른 길로 이끌고 싶어하는 부모인 그에게도 그런 부모가 있다. 그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할 말은 하고 사는 바르고 용감한 분이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국민교육헌장선포일이란 게 있었어요. 국민교육헌장을 잘 외는 학생들에겐 학교에서 선물로 스테인리스 수저를 나눠줬어요. 제가 그걸 받아오자 어머니는 ‘박정희가 준 걸 받을 수 없다’며 바로 선생님에게 편지를 써 돌려 보내셨어요. 저희 집은 대문에 ‘10월유신 결사반대’라는 글귀가 붙어 있는 그런 집이었어요.”

박 회원은 대학 시절 어머니로부터 『전태일 평전』을 받아 읽었고, 어머니가 건네주는 시국에 관한 유인물을 가지고 학교에 가야 했던 때도 있었다. 지역의 전경들도 알아볼 만큼 강인하고 사회 참여적인 어머니 아래서 자란 그는 어머니의 삶을 보면서 조금씩 깨친 것들이 어느새 그에게도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수줍게 말한다.

“어머니는 방관자는 더 나쁘다며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과 바른말을 할 때는 주저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셨어요. 자식에게 강요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걸 몸소 가르쳐주신 거죠.”

그는 딸들이 자기만의 신념을 가지고 자기 일을 찾아나가기 바란다. 둘 중 하나는 시민운동에 뛰어들었으면 하는 욕심도 있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딸들이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삶을 개척하는 것이다.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 미안할 때가 많아요. 돈 없으니까 몸으로 때운다는 말을 하지만 돈으로 때우는 것이 쉽지, 몸으로 하는 건 훨씬 어려운 거예요. 회원이면서 마음을 다해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회의가 들 때도 있고 회원이라고 말하기 미안할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요즘은 생각을 조금씩 바꾸고 있어요. 환자를 치료하면서 떳떳하게 양심적으로 사는 것도 작은 실천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죠.”

말은 그렇지만 그녀는 병원 일을 하면서 작은 실천들을 하고 있었다. 처음 치과를 개업했을 때 남의 목에 칼이 될 수도 있는 상해진단서를 함부로 발급하지 않으려고 고집 피웠던 일에서부터 단골 환자들에게 ‘안티조선’ 전단과 ‘노사모’의 희망돼지를 나눠주기도 한 그다. 요즘은 한겨레 독자배가운동에도 열심이다. 우유대리점을 하는 환자에게서 우유가 남아돈다는 얘기를 듣곤 지역의 공부방에 연결시켜주었고, 병원을 수리하면서 쓸모 없게 된 집기를 이주노동자센터에 보내기도 했다.

아이들 키우고 나면 좋은 일을 해보자고 남편과 궁리한다는 그는 나이 50이 넘어서도 받아만 준다면 참여연대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름다운 노후란 무엇일지 고민하는데 아마도 그것은 지금은 하지 못하는 보다 직접적인 참여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눈빛도, 마음씨도 40대 소녀 같은 박미현 회원을 만나면서 그의 작은 참여와 실천의 빛이 딸들을 넘어, 병원의 단골 손님들을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로 퍼져나가는 아름다운 상상을 해보았다.

정지인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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