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8월 2005-08-01   1025

풀과의 전쟁

아침 산책길에 강아지가 길섶을 킁킁거리자 새끼 뱀이 튀어나왔다. 손가락처럼 가늘고 크기는 큰 지렁이만 했지만 움직임이 날랜 것으로 보아 뱀이 분명했다. 풀이 우거진 곳에 뱀이 꼬이기 쉽다는 말이 퍼뜩 떠올랐다. 뱀뿐이랴, 우거진 수풀은 모기의 좋은 서식처이기도 하다.

후텁지근한 날씨였지만 주저 없이 잔디 깎는 큰 가위를 찾아들었다. 수동식 잔디 깎는 기계가 접근하기 힘든 건물 외벽을 따라서는 잔디가 밭이 아니라 숫제 숲이다. 나무들과 바윗돌 주변에도 잔디가 우북하게 올라왔다. 빗물이 무슨 고단위 복합 영양제라도 되는 듯 장맛비를 한껏 빨아들인 잔디는 기세 등등하다.

가위가 차가운 쇳소리를 내며 다가가자 개구리며 방아깨비 같은 곤충들이 화다닥 튀어나온다. 전쟁 중 적의 근거지를 없앤다는 이유로 정든 집과 마을에서 순식간에 쫓겨났던 백성들이 이런 꼴이었을까. 팥죽 같기도 하고 비지 같기도 한 땀을 흘려가며 가위질을 계속한 지 두 시간 남짓, 목과 두 어깨 사이가 뻐근해져온다. 돌아보니 가위가 지나간 곳은 털 깎인 양처럼 말끔한 모습이다.

수풀에 깃들었던 곤충들은 어디로 떠나갔을까. 여기 아니어도 이 넓은 세상에 제 한 몸 깃들 곳은 있을 테지. 게다가 자연의 생명력이란 경이로운 것이어서 일 주일만 지나면 이곳엔 또다시 풀이 우거질 테니까. 쓰레기 산에도 꽃이 피지 않던가 말이야…….

그래도 마당은 텃밭보다 낫다. 사발농사 지으면서 꼬박꼬박 비닐 쓰는 꼴이 한심해서 올해는 밭에 비닐을 덮지 않았다. 신문지나 풀로 덮지도 않았다. 그랬더니 고구마는 봄에 유난히 갈증을 탔다. 다른 밭들은 벌써 고구마 순이 무성한데 우리 것은 꺾어 무쳐 먹기에도 애처로울 지경이다. 진짜 골칫거리는 풀이다. 선선한 시간을 골라 하루에 한 두시간 씩 며칠 걸려 밭 전체를 뽑아주고 나서 뿌듯한 마음에 돌아보면 어느새 처음 시작한 자리에는 풀이 무성하다.

쇠비름, 바랭이, 명아주는 풀 삼총사다. 요놈들도 장마 중에 무서울 정도로 자랐다. 『어린 왕자』가 들으면 진실하지 못한 어른이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르겠지만 요놈들을 보고 있으면 바오밥나무가 저절로 떠오른다. 요놈들이 바오밥나무처럼 억센 뿌리를 가지고 있다면 땅을 뚫고 들어가 밭을 산산조각 낼 것만 같다. 이 풀들이 모두 기막힌 효능을 지닌 남성 정력강화 식품, 여성 다이어트 식품이라면 오죽이나 재미질까. 날마다 광주리 가득 뽑아 가지고 장에 내다 팔텐데. ‘가재 잡고 도랑 치고’ ‘꿩 먹고 알 먹고’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 가만, 정말 그렇다면 풀들이 이미 씨가 져서 이렇게 일 삼아 뽑고 있을 이유도 없겠지…….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풀을 뽑아 머릿속에 옮겨 심은 듯 머릿속은 온통 잡념 밭이 되고 땀으로 뒤범벅이 된 몸은 모기의 공격을 알리는 신호를 속속 보내온다.

장마 끝나면 풀과의 전쟁이다. 힘든 싸움이기도 하려니와 이겨도 개운치 않은 싸움이다. 『어린 왕자』의 말을 빌리면 이 풀들은 내가 길들이지 않은 풀, 시간과 정성을 들여 가꾸지 않은 풀들일 뿐 아닌가. 찜찜한 기분으로 미적대다 잔디밭과 텃밭이 풀밭으로 변한 뒤에야 삼복 더위에 모자와 긴 옷으로 무장하고 한숨 푹푹 내쉬며 싸움터로 나가는 것이다.

고진하 (참여사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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