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8월 2005-08-01   532

『미래를 여는 역사』 ‘한중일청소년캠프’ 3국 시민들이 나선다

『미래를 여는 역사』 공동집필자 김성보 교수 인터뷰

2005년 5월, 특별한 역사교과서가 출간됐다. 『미래를 여는 역사』, 한·중·일 3국의 역사학자들이 함께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편찬한 공동교과서이다. 한국 측 집필진으로 참여한 김성보 연세대 사학과 교수를 만나 공동교과서 제작의 의의와 출판 이후 계획을 들었다.

공동교과서 출간의 의의는 무엇인가.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공동 비판과 공동 대안마련이다. 후쇼샤 역사교과서의 역사 왜곡을 3국이 공동으로 비판한다는 것, 단순한 비판과 국경에 갇힌 역사교육의 한계를 넘어 평화와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공동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제작 과정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작업이 2002년 시작되어 2005년 봄에 책이 나왔으니 3년이 걸렸다. 많은 시간을 목차 구성으로 보냈다. 목차는 기본 뼈대이다. 즉 역사를 어떻게 보고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동교과서에 대한 각국의 견해차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일본은 동아시아 근현대사에서 중요사건을 시기적으로 구분하고 시기 별로 3국이 어떻게 맞물려 있었는지 전체적으로 보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에 대해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침략지배가 차지할 비중에 대해 지적했다. 그런 논의를 거쳐 현재의 목차가 확정된 것이다.”

일본의 가해 사실로 일본측이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나.

“이 작업에 참여한 일본 측 학자들은 침략 자체를 부정하는 분들은 아니었다. 다만 지나치게 일본의 가해만 강조하게 될 때 한국과 중국의 독자는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일본의 독자들이 이를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까가 우려되었다. 많은 논의 끝에 침략 사실은 명확하게 서술하되 정확한 근거를 함께 제시할 것과 표현은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중국과의 갈등은 없었나.

“사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중국과의 문제였다. 중국은 스스로를 근대 이후 한번도 외압을 가한 일이 없고 오로지 피해만 받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중국은 제국주의 열강의 압력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한국 등 주변국에게 그 외압을 그대로 행사했던 양면성이 있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아 한·중간 갈등이 있었다. 최종적으로는 외압 사실을 서술했는데 막상 나온 책을 비교해보니 인식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는 ‘간섭했다’로 썼는데, 중국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도로 썼다. 번역에서 뉘앙스가 드러난 것이다.”

출판 이후 계획은 무엇인가.

“기본적인 지향점은 있으나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가 쉽지는 않다. 지향은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고대사와 중세사를 포괄하는 온전한 의미의 ‘동아시아 공동교과서’ 집필이다. 그러나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문제를 포함해 첨예한 쟁점이 많아 실제 작업까지는 길이 멀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이 교과서가 각국의 교육현장에서 채택되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학생들이 읽는 것이 중요한데, 현재 교육시스템으로 보자면 이런 책은 정식교과서로 채택될 수가 없고 부교재로서만 가능하다. 중요한 부교재로라도 채택되도록 공동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으로 교육받은 청소년들이 교류하는 것도 중요하다. 올 8월 중국 베이징에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3국 청소년 캠프가 열린다. 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캠프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요건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새 질서가 구축되고 있다. 각국의 이익만 내세우는 패권주의적 경쟁체제가 아니라 평화를 보장하는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과거사를 제대로 정리하는 것이다. 침략을 미화하기까지 하는 일본의 역사왜곡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를 해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둘째는 동아시아 시민이 주인 되는 질서로 바꿔가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주도의 패권질서를 뛰어넘어 동아시아 질서 내에서 서로간의 지역안보를 바탕으로 한 제도화된 평화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과정은 역사의 문제이기도 하고 현실질서 재편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공동교과서 발간과정에서 한국이 조정자, 중재자 역할을 많이 했다. 외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한편으로는 우경화로 치닫고 있고, 중국은 애국주의로 무장된 민족주의가 고양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침략을 받았지만 극단적인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보다 개방적인 자세를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공동의 역사의식을 만들어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본다.”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희망적이라고 보는가.

“역사학자가 미래를 점칠 수 없지만, 희망이 있다. 우선 3국의 경제 문화 교류가 눈부시게 발달했다. 각국 정부나 일부 정치인들이 나서서 뒤엎을 수 없을 정도로 아래로부터의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어가는 것이다. 또 새로운 세대가 형성되었다. 평화를 구축할 시민들이 3국에 두텁게 형성되어 간다는 점, 이들이 희망의 기초조건이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우경화가 있지만, 자세히 보면 지난 세기와는 크게 다르다. 일본이 분명하게 군국주의로 방향을 잡았다기보다는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미국의 보호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자기 정체성을 놓고 심각하게 방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익의 모습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무조건 일본을 비판하고 억누르는 자세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민을 내면적으로 이해하는 가운데 이들이 평화적인 방향으로 정체성을 잡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여기에는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도 함께 있다. 한국이 오히려 더 심각하게 냉전체제 속에서 살았고, 남북의 분열과 대립이 주는 긴장감이 일본이 평화와 민주화로 가는데 부작용을 주는 면도 있다. 한국이 보다 민주화되고 통일 지향적인 평화공존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는 물론 일본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지금 한국은 그 역량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희망적이다.”

우리가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이유를 들자면.

“홍보는 많이 되었는데 많이 팔리지는 못했다. 중국에서는 10만 부, 일본은 6만5천 부인데 우리나라는 초판에서 2만 부가 조금 넘었다. 앞으로 나아지길 바란다. 동아시아의 평화가 구축되어야 한국사회의 안정과 발전도 보장된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3국이 공동의 역사의식을 갖고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를 만들어 가야하는데, 이 책은 그 출발점이다. 단순히 지식을 얻는 수준이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 만들기에 동참한다는 의미다.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동아시아 평화에 한 걸음 더 다가서길 바란다.”

최현주 참여연대 인터넷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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