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9월 2005-09-01   553

“힘들수록 웃으면서 살아요”

충남 당진 합덕 박종일 회원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싱그런 바람 가득한 그대의 맑은 숨결이 향기로워요~”

전화기를 통해 낯익은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의 끝에 듣는 가을 노래가 반가웠다. 전화기의 주인은 충남 당진군 합덕읍에서 세탁소를 하는 박종일 회원(40세)이다. 그와의 만남은 그렇게 가을노래로 시작됐다. 세탁소 이름도 가을이다. 가을세탁소.

“예전부터 가을을 좋아했어요. 힘들면서도 좋은 거 있잖아요. 거긴 이유가 없어요. 93년엔가 계룡산에서 딴 단풍잎을 지금도 일기장 갈피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일기를 쓴다. 이사 올 때 그동안 써온 일기장 20~30권을 잃어버린 게 너무 안타깝다고 한다. 그저 감성이 풍부해서가 아니라 일기를 쓰며 마음을 가다듬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얻고 있었다.

“마음이 답답하고 속 터질 때 일기를 쓰게 돼요. 어쩌다보니 지금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어요. 밤에 아들이 자는 모습을 보면 별 생각이 다 들지요. 불쌍하기도 하고, 애한테 못할 짓 하는 것 같아요. 일기 쓴다고 힘든 게 정리되는 건 아니지만 낙서라도 하고 끄적거리면 마음이 편해져요.”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을 혼자 키운 지도 벌써 8년 째다. 세탁소를 계속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애가 학교 갔다 돌아오면 갈 때가 없잖아요. 세탁소는 애를 돌보면서도 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그는 2년 전 혼자된 아버지를 모시고 있다. 남자 셋이, 그것도 삼대가 살아가는 쉽지 않은 가정을 꾸려간다. 하지만 표정이 참 밝다.

“세탁소를 찾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얘기가 있어요. 뭐 그렇게 기분이 좋냐고. 항상 웃고 노래를 흥얼대는 제 모습을 보니까요. 인생 그 까이꺼 별거 있나요? 인상 찌푸린다고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니고 내 무거움을 가져가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웃고 살아요. 그러자고 맘 먹으니까 진짜 웃게 되더라고요.”

삶의 고단함을 흔연히 털어 내고 밝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는 하루 12시간 이상을 세탁소에서 지낸다. 가을세탁소는 넓고 환했다. 오후의 볕이 쏟아져 들어왔다. 온통 옷으로 뒤덮여 칙칙하고 답답한 세탁소 특유의 분위기가 싫어서 옷은 한쪽에 잘 정리해 놓고 아침마다 쓸고 닦는다. 가게에서 주인의 깔끔한 성품이 느껴졌다. 그 곳에서 종일 생활하면서 늘 라디오를 켜 놓는다. 라디오는 그의 친구이자 세상과 만나는 또 다른 통로다. 참여연대를 만난 것도 라디오와 TV를 통해서였다.

“TV 토론회에 나와 시원하게 말하는 참여연대 사람들을 보면서 가입을 결심했어요. 김기식 처장이 나와야 토론이 재미있잖아요. 제가 성질이 더러워서 TV를 보면 열을 받아요. 사회가 부패한 걸 보면 우리가 쪼까 힘을 모아야지 생각하지요. 힘 있는 사람들끼리 다 해 먹는 거 조금이라고 막는데 나도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참여연대가 삼성을 고발하고 삼성보고서를 낸 것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삼성에 대항할 때 속이 제일 시원해요. 재벌들이 겉으론 웃으면서 사회에 환원하는 척 하지만 뒤로는 검찰에 로비하고 세금 탈루하면서 호박씨 까는 거 보면 진짜 속 터집니다.”

“삼성에 대항할 때 속이 제일 시원해요”

세탁소를 한지 13년이 된 그는 처음 서울 영등포의 한 학원에서 세탁기술을 배우고 1년 정도 남의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 자기 가게를 냈다. 그때 만해도 세탁소는 특별한 기술 없는 사람들이 성실과 열정만으로 도전해 볼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세탁소 하면 돈 번다는 건 다 옛날 얘기예요. 10년 전에 비해 세탁비는 떨어지고 재료비는 올랐어요. 그리고 세탁소가 너무 많아졌잖아요. 한집 걸러 세탁소고 미용실이니……. 여기 합덕만 해도 세탁소가 10개는 될 거예요. 거기다 대형 할인마트 같은 곳에서 운영하는 세탁소에 작은 세탁소들은 게임이 안 되죠. 그나마 합덕은 대형 마트가 없어서 이만하지 대도시에선 작은 세탁소들이 더 힘들 겁니다.”

그도 세탁소 경기가 좋지 않아 가게를 정리하고 싶지만 아이를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이 일을 쉽게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예당평야가 있어 예로부터 벼농사로 유명하던 합덕이지만 지금은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다 빠져나가고 노인들만 남았다. 상권은 쇠락하고 상권이 죽으면서 경기도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고 그는 걱정했다.

“여기도 한 집 걸러 빈 상가예요. 장사는 안 되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문 닫고 방치하는 거죠. 곧 있으면 합덕 옆으로 4차선 도로가 나는데 그 때 이쪽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거예요.”

아버지와 아들을 돌보는 박종일 씨에게 삶의 터전인 합덕에 사람들이 돌아오고 경기가 되살아나는 것은 생계가 걸린 중요한 일이다.

박종일 씨에게는 한 가지 소박한 바람이 있다. 세탁소를 쉬는 일요일, 가족들과 오붓하게 가까운 삽교천에라도 나가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것이다. 아들의 엄마까지 같이 말이다. 엄마 없이도 밝게 자라준 아들이 고맙기만 하지만 아이에겐 지금도 엄마가 절실하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아빠!”하고 불러놓고는 “왜?”하면 대답하면 “사랑해요”하고 도망가는 아이는 그에게 기쁨이고 삶의 원동력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혼자 키울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람들의 옷을 깨끗하게 빨아주는 그에게 얼른 새로운 가족이 생겨 그의 어둠을 뽀얗게 빨아주길 바란다.

정지인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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