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9월 2005-09-01   750

원자탄 한 방에 무너진 자이바추(財閥)

1921년 2월 24일, 경성지방법원에서는『개벽』잡지 필화(筆禍)사건의 언도공판이 열렸다.『개벽』6호에 실린 ‘민중이 단결하여 재벌(財閥)의 발호와 관벌(官閥)의 위압을 타파해야 한다’는 유진희의 글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법원은『개벽』발행인에게 신문지법 위반으로 벌금 50원을 선고하였다. 이 사건은 재벌이 식민지 조선에서 본격적인 사회문제가 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일본말로 ‘자이바추’로 불리는 재벌은 봉건적 가족주의와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의 산물이다. 자이바추는 창업자 및 직계가족이 중심이 되어 족벌 경영을 하고, 계열사에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기관을 소유했다. 이윤이 발생하는 모든 곳에 기업을 확장했으며, 정치권과의 유착 등으로 온갖 특혜를 누렸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부루스 커밍스 교수는 1930년대 말 식민지 조선과 만주·대만에서 일본의 미쓰이(三井)·미쓰비시(三菱)·스미토모(住友)·야스다(安田) 등의 4대재벌을 비롯한 신흥재벌들이 구리와 석탄 생산의 50%, 선박 총 톤 수의 50%, 밀가루 생산의 70%, 제지 생산의 90%, 대부분의 항공산업과 모든 제당업을 통제하였음을 밝혀냈다. 게다가 일본의 재벌들은 조선의 금광·국유산림·방직회사·토지 따위를 가리지 않고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싹쓸이를 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군국주의화 과정에서 나카지마(中島)·모리(森)·닛산(日産)·닛소(日曹) 등은 신흥군수재벌로 성장했다. 일본 군국주의에 빌붙은 조선의 새끼재벌인 김성수·김연수 형제의 경성방직, 박흥식의 화신그룹도 만주와 북중국으로 진출하여 한몫 챙기기도 했다. 광복군총사령 이청천은 1941년「적구내(敵區內) 동지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담화에서 재벌을 가리켜 ‘강도무리요, 우리 민족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라고 하였다.

그러던 자이바추가 원자탄 한 방으로 무너졌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자 연합국은 전범처리 차원에서 자이바추를 해체했다.

그러나 자이바추는 해방된 대한민국에서 ‘재벌’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삼성·현대·SK·LG·두산·롯데 따위의 재벌이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적산(敵産) 불하,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수출 진흥 정책과 중화학공업화 등에 힘입어 급성장을 했다. 재벌은 어떤 정치권력과도 끈끈하게 유착하였고, 족벌체제·총수 1인 지배 등 소위 ‘황제경영’ 기법을 눈부시게 발전시켰다. 그 과정에서 부정축재, 정·경·언 유착, 사기, 밀수, 탈세, 분식회계, 주가조작, 노동조합 탄압, 노동자 착취, 불법상속, 이권 로비, 문어발식 기업확장 등 온갖 불법을 밥먹듯이 자행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헌법 1조를 ‘재벌공화국’으로 바꾸어야 할 운명에 처했다. 바로 이 때 삼성 이건희 회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전 회장의 추악한 모습이 안기부의 불법도청을 통해 드러났다. X파일은 부활한 자이바추를 한 방에 날려버릴 원자탄이 될 수 있을까?

박상표 참여연대 회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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