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1월 2006-01-01   1560

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뱃길, 철길, 고속 도로, 산길, 들길, 이 모든 길들은 그냥 자연 현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 인간의 언어다. 언어는 인간만의 속성이다. 그러기에, 인간만의 세계에 길이 있고, 길이 있는 곳에서 인간이 탄생한다.

길은 부름이다. 길이란 언어는 부름을 뜻한다. 언덕 너머 마을이 산길로 나를 부른다. 가로수로 그늘진 신작로가 도시로 나를 부른다. 기적 소리가 저녁 하늘을 흔드는 나루터에서, 혹은 시골 역에서 나는 이국의 부름을 듣는다. 그래서, 길의 부름은 희망이기도 하며, 기다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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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우리의 삶을 부풀게 하는 그리움이다. 그리움의 부름을 따라가는 나의 발길이 생명력으로 가벼워진다. 황혼에 물들어 가는 한 마을의 논길, 버스가 오며가며 먼지를 피우고 지나가는 신작로, 산 언덕을 넘어 내려오는 오솔길은 경우에 따라 기다림을 이야기한다. 일터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친정을 찾아오는 딸을, 이웃마을에 사는 친구를 기다림에 부풀게 하는 길들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길은 희망을 따라 떠나라 부르고, 그리움을 간직한 채 돌아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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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과거에 고착함을 부정하는 동시에, 미래에만 들떠 있음을 경고한다. 길을 떠나 나는 이웃과 만나고, 길을 따라온 이웃이 나를 만난다. 길 끝에 휴식할 곳이 있지만, 다시 길을 찾아 어디론가 움직여야 한다. 길은, 인간이 자연 현상과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고 인간과 자연과의 경계선을 전달하는 크나큰 표지이지만, 그 표지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새로운 만남을 나타낸다.

이러한 만남에서 과거가 미래로 이어져 역사가 이루어지고, 내가 남들에게로 연결되어, 고독한 실존적 존재로서의 나는 사회라는 광장에서 인간으로서 재발견된다. 그리고, 이런 만남을 통해서 인간은 자연, 더 나아가 우주로 해방(解放)된다. 이리하여, 길이 만남이라면, 만남은 곧 열림이다.

구체적 삶은 어떠한 하나의 관점으로 설명될 수 있는 일차원적 현상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꿈과 현실, 희망과 좌절, 휴식과 일, 기쁨과 슬픔, 활기와 피로, 웃음과 눈물, 명상적 순간과 광기의 순간 등으로 무한히 얽혀 얼룩져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어떤 이는 보다 감성적이고, 어떤 이는 보다 이지적이다. 어떤 이가 의지적이라면, 어떤 이는 순응적이다. 남자가 억센 성격이라면, 여자는 흔히 유순한 체질이다. 한 집안, 한 마을, 한 사회, 한 시대의 다양한 길들의 구조와 내용들은 각기 다양한 인간들의 삶을 표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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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 한 시대의 생활 양식의 변천과 더불어 그 사회, 그 시대의 길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옛날 길들에 마음이 끌리고 유혹을 느낀다면, 그것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낭만적 향수나 진보에 대한 거부심에 기인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남들과의 조화로운 만남 속에서 살아 있는 인간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박이문의 ‘길’

박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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