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1월 2006-01-01   923

황우석 사태와 과학 민주화

2005년 말은 뜻하지 않게 터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관련 연구논문 허위 의혹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과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국민들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른 채 황우석 교수 지지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심각한 갈등을 경험했다. 따지고 보면 한 과학자의 연구논문에 대한 논란일 뿐인데, 국가적 위기라 할 만큼 온 국민이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정부 역시 불신의 대상이 되어 사태 해결에 아무런 손을 못쓰는 상황까지 가게 된 것은 처음부터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나라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황우석을 영웅으로 만들었나

정상적인 나라라면 과학계 내부의 자정 메커니즘으로 쉽게 처리되었을 과학적 부정행위가 우리나라에서는 이 지경으로 사회적 대혼란을 일으키게 된 것은 황우석 교수가 단지 한 과학자가 아니라 이른바 ‘국민적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깊은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계층과 지역과 성별과 세대 그리고 지지정당의 차이를 뛰어넘어 미래 과학한국의 비전을 또렷이 보여주며 나라의 발전을 이끌고 갈 메시아와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그는 가난한 농촌 출신이지만 복제와 줄기세포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업적을 나타낸 과학영웅일 뿐 아니라,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는 그의 발언이 표상하듯 진한 애국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더구나 여기에 전세계 난치병 환자의 치료를 위한 것이라는 인류애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위인’이 아니고 무엇이랴?

황우석 교수가 이렇게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그 자신의 업적과 자질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정부와 언론이 손을 맞잡고 이끌어 온 ‘황우석 영웅 만들기’의 결과다. 그는 원래 생명공학에서는 주변적 분야에 속하는 동물복제의 전문가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초기에 그는 복제소 ‘영롱이’의 성공으로 갑자기 생명공학의 스타로 떠올랐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복제한 백두산호랑이 새끼를 북측에 선물하는 계획(결국 실패하였지만)에 관여할 만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는 이른바 ‘황금박쥐(황우석 교수,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 박기영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체제로 표상되는 청와대와 정부의 막강한 특별지원, 그리고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의 전폭적 지지와 후원 아래 야심차게 배아줄기세포로 그의 영역을 확장하여 마침내 한국의 생명공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세계에 떠올랐던 것이다.

성장주의 애국주의 과학주의가 낳은 결과

그러나 어떤 과학자를 국민영웅으로 만들려고 국가가 기획하고 개입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불행한 결과만을 낳았다. 옛 소련의 스탈린 치하에서 기존의 유전학을 비판하고 획득형질 유전과 이를 이용한 농업증산을 주장하여 ‘사회주의과학’의 영웅으로 국가가 떠받들던 리센코, 그리고 북한에서 1960년대 초 원자물리학적 방법으로 경락의 존재를 증명했다고 주장하여 ‘주체과학’의 영웅으로 한 때 칭송 받았던 김봉한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이들은 모두 과학적 연구성과가 국가에 의해 부당하게 부풀려져 과학계에서 제대로 검증 받을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것이 치명적 문제였다. ‘영웅 만들기’는 과학계 안에서 학문적 실력보다는 정치권과의 연줄로 권위를 얻으려는 폐해를 낳을 뿐만 아니라, 특정한 과학자나 그의 분야에 국가의 연구자원이 집중되어 과학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큰 부작용을 초래한다.

황우석 교수를 ‘국민적 영웅’으로 띄우는 정책은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되었지만, 사실 그것은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박정희 정부 이래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책을 지배해 왔던 성장주의, 애국주의 그리고 과학주의(또는 전문가주의)의 소산이다. 즉 과학기술은 국가목표인 경제성장의 도구이고, 과학기술자들은 조국의 선진 근대화에 기여하는 핵심 역군이며,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과학기술자들은 오로지 전문지식과 기술만 열심히 추구하면 될 뿐 과학기술의 사회적 역할이나 영향은 몰라도 된다는 생각이 우리 과학기술정책의 지배적 패러다임이었던 것이다. 국가가 수십 년 간 조장한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마취되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자와 일반 국민은 과학기술을 사회적 가치나 권력과 무관한 순수한 전문지식으로 간주하였고, 그 결과 과학기술은 우리를 선진국으로 인도해줄 어떤 비법과 같은 것으로 신비화되어 왔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누구보다 잘 체화한 과학자가 황우석 교수이고 이 때문에 그는 대다수 국민에게 큰 매력을 지닐 수 있었다. 여기에 정부가 그를 생명공학의 스타로 밀고 언론이 그의 업적과 인물됨을 엄청나게 부풀림으로써 그에게는 마치 종교적 열광과도 비슷한 맹목적 환호와 추종 현상이 뒤따르게 되었다. 그 결과 황 교수의 연구에 대하여 생명윤리나 연구윤리의 측면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 그리고 배아줄기세포의 기술적 위험과 다양한 사회적 영향 등에 대하여 성찰하려는 노력들은 모두 황 교수의 연구나 생명공학을 ‘발목잡는 사람’ 또는 심지어 ‘매국노’라고 매도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에도 커다란 위협이 되는 상황이다. 황 교수의 연구와 생명공학 전체에 투명하고 객관적인 검증시스템이 작용하지 못하도록 하며, 특정 권력을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과학기술도 민주주의의 예외일 수 없다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요인들과 부단한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고 변화하는 현대사회의 중요한 일부이다. 좋건 싫건 과학기술에 점점 더 크게 의존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상황에서 과학기술에 관한 의사결정이 오로지 소수 과학자와 정책결정가 및 기업가 등에게만 맡겨진다면, 미래는 우리가 바라는 안전하고 민주적인 과학기술사회가 되리라 기대할 수 없다. 과학기술은 다른 사회부문과 마찬가지로 민주화에서 예외적인 성역이 아니다. 이번 사태에서 여실히 보았듯이 한 과학자를 영웅으로 숭배하며 비판을 허락하지 않는 것은, 소수 엘리트층이 독점하고 있는 과학기술에 관한 의사결정구조를 감추며 강화하기 때문에 과학을 위해서도,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번 사태는 과학과 민주주의 둘 다의 발전을 위하여 실험실의 민주화와 더불어 인문·사회과학자와 일반 공중도 참여하는 과학기술의 투명한 검증시스템과 민주적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김환석 국민대 교수, 시민과학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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