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1월 2006-01-01   1155

인터뷰-전은경 사회인권국 간사

“사람들이 좋아서요”

참여연대에는 상근자가 40여 명이다.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안내대에 앉은 내 앞을 지나다닌다.(난 일주일에 하루, 직접 방문이나 전화로 참여연대를 찾는 시민들을 응대하는 안내데스크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가끔 저 간사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주하고 이야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런 차에 2006년도 『참여사회』가 새로 기획한 ‘상근자 소개’ 코너를 맡아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얼른 승낙하였다. 그저 무심히 내 앞을 지나다니는 상근자를 다정다감한 한 사람으로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와 꽃이 되었다”는 시구처럼 누군가를 알고 가슴으로 품는 일은 기쁨이고 축복이 아니겠는가.

누구를 가장 먼저 인터뷰하게 될까하고 궁금해 하면서 상근자들을 떠 올릴 때 문득 사회인권국에서 일하는 전은경 간사의 모습이 뇌리에 스쳤다. 우연처럼 그가 첫 인터뷰 대상이 되었다.

“실례지만 몇 살이에요?”

하도 앳되어 보여서 물었다. 이제 막 고개를 넘는 나이라 믿어지지 않는다. 자그마한 키, 자그마한 몸매, 귀여운 얼굴, 밝은 표정, 편안한 모습 등. 새침하고 야무져 보인다는 첫인상을 건넸더니 천만의 말씀이란다. 덜렁대고 소탈하다나. 아무튼 학창시절 내내 책상머리에서 공부밖에 모르던 자신이 사회 한 복판에서 들뛰는(?) 참여연대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그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동북아 평화와 비핵지대를 위한 한일 공동회의’를 준비하게 되었고, 그 회의를 통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시민운동가들을 만나게 되면서 지적, 실천적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참여연대로 오게 되었다고.

이제 참여연대에 온지 3년 정도 되었는데 2005년에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 희망 UP 캠페인’을 펼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였다. 유난히 더웠던 7월에 산동네를 오르내리며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얼굴엔 기미가 다 생겼다. 그러면서도 보람 있었다고 여겨지는 것은 희망 UP 캠페인을 통해 우리나라의 최저생계비와 빈곤현실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작업이 이뤄졌고, 여전히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최저생계비가 상당 수준 인상되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났던 좋은 분들을 잊을 수 없어서이다. 그들과의 인연이 소중하며 그중에서도 놀이방에서 일하시던 수녀님은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 10명을 성심으로 돌보고 독거노인을 보살피며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도록 달동네와 참여연대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 주셨다고 한다.

수녀님과는 아직까지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는데, 그처럼 생활 속에 파고든 헌신과 봉사가 같은 운동가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으며 참여연대도 더 서민과 가까이하는 운동을 하면 좋겠다고 하였다. 인터뷰를 하던 다음날에 수녀님을 찾아뵙기로 하였단다. 더 미루다가는 힘들어 못 갈 것 같아서라는데 몸을 보니 아랫배가 두리두리한 임신 8개월이다. 내년 2월 말이 출산예정일이란다.

육아 걱정이 대단하다. 사회복지 일이 재미있고, 일에 한창 속도가 팍팍 붙는데 그만 두려니 정말 아쉽다고 하였다. 똑똑한 인재가 육아문제로 일의 공백기를 가져야하는 게 안타까워 만만한 친정어머니를 들먹였더니 속초에 계신단다. 교장선생님이신 아버지와 남동생이 있으니 딸만을 위해 서울로 오실 수 없고, 시어른들은 연로하신데다 부산에 사시니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다나. 새삼 육아로 인한 우리나라 여성들의 고충이 실감났다. 선진국처럼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으면 마음 놓고 일하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하며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텐데 말이다.

갑자기 예비 아빠가 궁금해졌다. 그는 남편을 기자라고 소개했다. 남편은 자신보다 더 오래된 참여연대 회원이며, 대학원 공부하면서 만나서 4년간이나 연애하며 알콩달콩 사랑을 키웠는데 결혼하고 나니 더 믿음이 간다고 하였다. 계속하라고 했더니 자랑이 끝이 없다. 착하고, 이해심 많고, 집안일도 많이 도와주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새댁이 좀 예뻐야지. 그리고 사랑과 관심이 온통 두 사람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꿈결같은 신혼 2년차가 아닌가. 그는 2005년 참여연대 후원의 밤 행사에서 머리에 종이 왕관을 쓰고 사부(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와 같이 피리 연주를 하였다.

음악 감상도 좋은 태교(胎敎)인데 직접 연주를 하느라 연습에 골몰했으니 휴일마다의 야구장 나들이와 더불어서, 태어날 아기는 분명 감성적이고 활달하고 강인할 것이라 여겨진다. 부모를 닮아 똑똑하고 예쁜 건 물론이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한마디가 자꾸만 들려온다. 수많은 일들과 직장 중에 어째서 참여연대냐고 물었더니 숨도 안 쉬고 답이 돌아왔었다.

“사람들이 좋아서요.”

이해숙 참여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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