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1월 2006-01-01   1094

농촌개발에서 종교화해까지, 인도는 넓고 NGO 할 일은 많다.

인도는 1991년 경제개혁 이후 IT 산업과 서비스 산업의 빠른 성장으로 연평균 7~8%의 경제 성장을 이루며 앞으로 세계 경제를 주도할 국가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고도성장 이면에는 아직도 수많은 영세 농민들과 도시 빈곤층이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착취와 억압을 받아왔던 하층 카스트들은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해 빈곤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업화와 서구화에 따른 환경파괴, 세계화와 자유화에 따른 지역·계층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풍양속은 약화되어 1986년 인도에서 처음으로 AIDS가 발견된 후, AIDS 감염자 수는 50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20개나 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활동중이다.

인도시민사회의 초기 발전과정

영국이 인도를 점령하기 시작한 1857년 이후 인도에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서양의 기독교 사상의 영향으로 전통적 악습을 타파하고 발전을 추구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종교사회개혁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을 이끌었던 단체들은 여권신장, 문맹퇴치, 종교전통 악습타파 등의 다각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이 단체들의 활동은 시민사회단체의 개념보다는 공동체의식에서 비롯된 봉사 활동에 가까웠다.

공동체봉사활동은 간디의 아쉬람(수행공동체)과 간디식 사회개혁 조직을 통해서 체계화되어 갔다. 간디는 영국 식민치하에서 인도민족의 자치와 자립을 위한 국가재건 프로그램에 나섰다. 간디식 사회봉사단체는 특히 농촌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며, 그 결과 많은 농촌개발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됐다. 타고르 역시 농촌 발전을 주장하며 1921년 서벵골 지역 주민 자치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인도가 1947년 영국으로 독립된 후부터 20여 년은 국가건설과정으로 보는데, 이 때 NGO가 담당해왔던 사회복지와 국가발전 프로그램이 정부로 옮겨졌다. 인도의 초대 총리 네루는 정부 프로그램에 NGO가 참여해 그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영향으로 인도의 시민사회나 NGO는 정부 지원을 받아 활동하는 경우가 많고, 정부와 협력하여 그들의 프로그램, 특히 빈곤퇴치와 같은 공공정책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1953년 사회복지와 국가발전을 목적으로 중앙사회복지위원회(CSWB)가 설립된 이후 NGO와 시민봉사단체들은 정부로부터 재정 보조를 받기 시작했다. CSWB는 발사디스와 같은 시민단체를 통해 여성과 아동 복지사업을 폈다.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 수가 급증하였고, 역할도 전문화되었다.

농촌 개발과 빈곤 퇴치 활동에서 다양화, 전문화되는 NGO

인도는 1960년대 들어와서 중국, 파키스탄과 전쟁을 치른 후 총체적인 경제침체에 직면했고 연이은 정치 불안과 가뭄, 홍수 등으로 기근과 빈곤이 확대되었다. 이후 1970년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재난 구호를 돕기 위한 NGO단체들이 증가했는데 학생들의 참여가 두드러져 시민사회활동에 새로운 피가 수혈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인도 동부 오리사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람 비까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1971년 사이클론이 오리사주를 강타했을 때 마드라스(현재 이름은 챈나이)의 사회단체 YSMD가 구호와 재건사업을 위해 오리사주로 들어왔다. 구호 작업이 끝난 이후에도 이 단체는 오리사에 계속 남아 농촌발전을 위해 봉사하다 주민들의 호응을 받아 그람 비까스라는 시민사회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산림 감소에 따라 대체연료 개발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사회산림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학교도 설립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조직은 현재 오리사주의 15개 지역에서 14만 명이 넘는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단체로 성장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까지 새로운 NGO들이 인도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함은 물론 많은 외국 NGO들이 구호 활동과 재건 사업을 위해 인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외국 NGO들의 출현은 인도 자생 NGO들에게 활동영역이나 방법 등의 면에서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들 새로운 NGO의 활동은 1970년대 중반 인도 중앙정부의 비상사태 선포 이후 잠시 위축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권이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NGO들은 국가 발전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농촌발전과 빈곤 퇴치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들어와서 세계화와 경제자유화의 물결, 정치인과 관리들의 부정부패 심화에 따라 NGO의 역할은 다양하게 변했으며 그 중요성 또한 과거보다 한층 강조되었다. 2001년 1월 인도 구자라트 지방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해 2만 명이 죽고 16만 7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인도 NGO들은 다시 한 번 성장할 수 있는 도약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외국의 많은 NGO들이 인도로 들어왔거나 현지 NGO들에게 재정 지원을 해주었다.

이렇게 성장한 인도 NGO들은 전통적으로 추구해왔던 농촌개발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면서 불가촉천민에 대한 지원, 여권신장, 환경문제, AIDS 퇴치운동 등도 펼쳐나가고 있다. 이들은 또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거나 정부의 정책을 감시하고 있다.

종교화해 사회통합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인도 자생 시민사회조직의 가장 큰 문제는 재정 기반이 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사회발전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결국 이들 조직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표적인 예가 간디식 시민사회라 할 수 있다. 이 단체는 사회문제 해결과 사회통합을 위해 힌두와 무슬림의 화합을 추진했으나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으면서 오히려 원래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신 힌두 근본주의 사회조직, 주류밀매업자들의 조직과 자선단체, 새로운 발전전략을 추구하는 NGO들이 기반을 넓혀 나갔다.

새로운 NGO들은 도시보다는 농촌의 토지를 갖지 못한 농업노동자, 소작인, 부족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토지소유권, 환경, 관개수로, 임금 등의 문제에 집중한 나머지, 종교 갈등과 같은 거시적인 문제에서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인도 구자라트 지역에서 간디식 시민조직의 쇠퇴는 아메다바드를 중심으로 힌두 근본주의 세력의 상승을 가져왔다. 일찍이 1968년 골왈까르가 아메다바드를 방문해 힌두 근본주의를 고취시켰고, 반 무슬림 단체인 힌두교수호협회도 이곳에서 처음 설립되었다. 힌두 근본주의 세력이 본격적으로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RSS, VHP 등 힌두 근본주의 단체들은 이들의 이념을 를 전파하기 위해서 청년, 여성, 지정 카스트(최하층민)들과 지정 부족민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직업훈련캠프를 조직하고, 자연재해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들을 자신들의 조직에 편입시켜나갔다.

힌두 근본주의 조직들은 구자라트에서 간디식 시민조직이 쇠퇴한 틈을 타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교육을 시켜주고 도와준다는 미명 아래 이들을 힌두화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추진했다. 이들의 힌두화 작업은 특히 부족민들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은 1990년대 중·후반‘힌두부족 대 기독교부족’의 대립구도를 형성하여 부족민들을 집중적으로 힌두화 시키는 사업을 추진했다.

인도에서는 교육, 건강, 빈곤, 환경, 남녀평등, 신분구조개선, 구호사업 등도 중요하지만 종교로 인한 사회갈등과 폭력을 치유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일 또한 중요하다. 따라서 시민사회가 단합해서 사회통합을 위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종교갈등과 폭력의 피해자는 그 누구보다 하층민과 소수민족이기 때문이다.

김찬완 한국외국어대학교 남아시아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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