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1월 2006-01-01   694

오페라하우스 VS 노래방

도시는 모여 사는 곳이다. 누구나 한 번 쯤 전원에서의 유유자적한 삶을 꿈꾸지만, 복작거리는 도시에서의 삶도 실은 즐거울 수 있다. 그 재미의 복판에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나눔이 있다.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때로 춤추는 것, 도시의 문화란 그런 일상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효리의 화려한 율동과 노래방에서 질러대는 내 악 소리, 하늘과 땅 차이라 할지라도 사실 이 몸이 즐겁기는 후자다. 여러분도 다들 그러하시리라.

도시와 공간으로 이야기를 확장하자. 내로라 하는 서울의 문화 공간들은 도시의 삶을 즐겁게 북돋우고 있는 것일까. 문화 시설이 지나치게 서울에 편중되어 있어 지역적 문화 불균형이 초래되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한데, 그렇다면 서울 특별시민들은 문화 공간이 주는 특별한 혜택을 과연 만끽하고 있는 것일까.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에 시민이 없다

우리나라 현대 미술의 요람이라 불리는 국립현대미술관은 경기도 과천 청계산 자락에 있다. 여기를 찾아가기는 정말 힘들다. 거대한 놀이공원(서울랜드)의 뒷전인데다 산길을 몇 구비 돌아가야 겨우 찾을 수 있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는 더욱 힘들다. 건물 외관이 수원성곽을 본뜬 것도 적절하지 않다. 전쟁, 방어용 성곽의 이미지는 시민들에게 활짝 개방되어야 할 미술관과는 상충하는 것이다. 산 속에 있으니 성곽의 이미지를 빌려왔다는 유추는 지나치게 척박하다.

서울 양재동 예술의 전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중교통의 연결이 쉽지 않을뿐더러 남부순환로에 가로막혀 보행자의 접근성도 매우 떨어진다. 건물의 외관을 보면, 오페라하우스의 지붕은 갓 모양이고 그 뒤쪽의 덩어리는 구식혼례에서 신랑이 쓰던 사모를 본떴다. 음악당의 외형은 반쯤 펼치다 만 부채의 모습이다. 민속주점의 온갖 소품이 망라되어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 문화를 연상시키는 이런 형상들은 이곳이 우리시대에도 소수를 위한 귀족적 문화공간을 지향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그렇다고 갓을 패랭이로 바꾸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예술의 전당과 나란히 서 있는 국립 국악당도 성곽 모습이다. 이 앞을 지나다보면 육중한 화강석의 기단과 벽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전쟁이라도 치르는 요새처럼 느껴진다. 시민과 함께 나누는 편안하고 쉬운 문화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남산에 위치한 국립극장도 접근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곳은 섬처럼 고립되어 있어 시민들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찾아가기 어렵다.

세종문화회관은 도심 한복판에 자리하여 접근성에 있어서는 한결 낫지만 여전히 외관은 딱딱하다. 기단이 높기 때문에 주출입구에 도달하려면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덕분에 인도를 지나는 시민들로부터 “문화”는 격리되어버렸다. 도심의 쉼터가 될 만한 세종문화회관의 뒷마당과 앞쪽의 세종로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면 공간의 활력은 한층 더하였을 것이다.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하겠다는 서울시의 발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여름철 홍수로 황톳물이 떠내려가는 한가운데서 오페라 공연이 펼쳐지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한강의 비극이다. 바라건대 섬 속에 문화를 가두지 말라. 귀족의 문화 공간은 예술의 전당, 현대미술관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사람이 문화의 주체가 되어야

앞에서 살펴 본 몇 개의 대형 문화 공간들은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찾아가기에는 입지 여건이 매우 불리할 뿐더러, 그 외형마저 권위를 과시하거나 귀족적인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러한 문화 공간으로부터 따돌려져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보다 일요일 오후에 걷는 인사동길의 난장이 훨씬 문화적이다. 종로 쪽의 남인사마당에서는 주말마다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고 시민들은 오가다 마음이 내키면 주저앉아 관객이 된다.

배우의 손길에 이끌려 엉거주춤 무대에 나서기도 한다. 석촌 호숫가의 서울놀이마당에서도 종종 전통 문화 공연이 벌어진다. 설날이면 어김없이 남사당패가 흥을 돋우는 이곳을 고향을 찾지 못하는 설에 때로 찾아가곤 한다. 공연이 끝나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한데 어울려 춤판을 펼친다. 바그너의 오페라가 아니라도 우리가 공연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은 유쾌하다.

브라질에 가면 어느 길목에서나 공을 차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한 저변이 호나우두와 호나우딩요를 낳았다. 대형 전용구장보다 동네 마당이 축구 꿈나무들에게 더 절실하듯, 번듯한 문화 시설보다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작은 문화공간이 더 많아져야 한다. 때로 이웃돕기 공연이 펼쳐지는 거리의 작은 쉼터나 구청 문화센터 수강생들의 시화전이 열리는 지하철역 한 귀퉁이가 더 반가운 것이다. 문화가 우리들에게 친숙한 것이 되기 위하여 문화 공간은 훨씬 흔해져야 한다. 정장 차림에 차를 타고 어렵게 찾아가는 오페라하우스보다 우리 동네의 지하 노래방에서 나는 더 즐겁게 음악에 몰두한다. 음악 한 곡 하자. 몇 번?

양상현 순천향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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