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1월 2006-01-01   490

정의로운 법이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

회원마당

인터뷰

최중영 회원

참여연대 간사들끼리 자주 하는 말 가운데 “잘 키운 자원활동가는 회원이 되어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회원활동의 꽃이라 말할 수 있는 자원활동으로 돌아오는 회원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굳이 잘 키우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상당수의 자원활동가와 방문교육차 찾아왔던 학생들은 밥벌이를 하게 되면 회원으로 돌아온다. 가끔 궁금하다. 이들은 왜 참여연대로 돌아올까.

최중영 회원을 처음 만난 것은 사법감시센터 간사로 활동하던 2004년 여름이다. 사법연수원에 다니며 법률봉사활동을 하러 온 그의 눈매는 여느 사법연수원생 같지 않게 선했다. 만난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누나, 누나”하며 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물정 모르고 곱게 큰 도련님 같은 첫 인상이 맞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인권법학회 공익소송팀 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에 “어, 그래”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여러 가지 행사와 모임으로 연수원 1학기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학회 활동을, 특히 공익소송의 제도화를 통한 사법서비스 확대와 사법개혁을 고민하는 공익소송 학회 활동을 하는 것은 웬만한 결의 없이는 힘들다. 그는 2주간의 짧은 연수가 끝나고 나서도 그 해 여름이 다 가기까지 매일같이 참여연대 사무실을 나왔다. 각종 법률문제를 안고 찾아온 시민들과 면담하고 늦은 시간까지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모습에서 첫 인상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겉모습만으로 ‘그는 이런 사람일 것’이라고 재단한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아야 했다.

2006년 1월이면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곧이어 3년 동안 공익법무관으로 군복무를 할 예정이라던 그는, 연수원 2년차 4학기 시험을 마치자마자 다시 자원활동을 하러 참여연대로 돌아왔다. 일거리를 한아름 안고 복도를 지나가는 그를 붙들었다.

법을 통한 사회변혁 꿈꾼 ‘ 틀’

박원순 변호사가 쓴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2003, 두레)란 책에는 법률을 사회변화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사회 변혁을 위해 법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투신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박 변호사가 주목한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률운동학회 ‘ 틀’은 1996년 당시 2학년이었던 최중영 회원이 몇 명의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결성한 조직이다. 법학도로서 배운 지식을 사회운동으로 이어가기 위해 출발한 ‘ 틀’은 법률과 시민운동의 접목을 주제로 각종 세미나를 개최하고, 판례비평 활동과 그 결과를 담은 ‘ 틀’지(誌)를 발행했다. 또한 이 단체는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등의 법학과 학회와 법률운동론을 실천적으로 담보하기 위한 서울지역 법과대학 법률운동모임 연합체(서법련) 건설을 준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비록 2001년 하반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발전적 해체를 결의하게 되었으나 ‘ 틀’이 정해진 길대로 갔을 경우 보장돼 있는 장밋빛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법학의 사회참여를 통한 변혁을 꿈꾸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1997년 소액주주운동에 대한 홍보물을 얻기 위해 참여연대 사무실을 처음 방문한 이래 참여연대에 대한 관심과 지지의 마음을 잃어본 적이 없다는 그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 참여연대 회원으로 가입했다.

공익소송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

사법시험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5년 만인 2003년 합격 소식을 들은 후 그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 틀’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사법연수원 35기 인권법학회 내 공익소송팀이다. 구체적인 구상을 완전히 혼자서 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연수생 1학기 초 “나 이거 할텐데 할 사람 붙어라” 했다. 공익소송팀은 변호사의 공익활동, 경험 부족에서 비롯되는 오류를 줄이기 위해 일정 기간 변호사 검사 교수 등 실무경험을 쌓은 후 판사로 임용되도록 하는 법조일원화, 사법연수원 교육 시스템의 개선 등을 주요 과제로 잡았다. 물론, 이는 법률실무에 즉각 투입하기 위한 인력 생산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사법연수시스템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오로지 ‘버티기’로 연수기간 2년을 채웠다는 최중영 회원, 공익법무관 3년 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법이 곧 정의가 아니더라고요.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법이 없는 경우도 있고, 없어져야 할 법이 버젓이 활개치고 있는 경우도 있고……. 3년 후에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있을지 모르겠지만, 자기 권리 찾아야 하는 사람들이 돈이 없어 소송을 하지 못하거나 돈이 있어도 사건을 맡으려는 사람이 없어 소송을 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어요.

또 개인 사건이긴 하지만, 그 사건 하나로 사회모순이나 문제가 드러나는 것이라면 결코 개인만의 사건이라 할 수 없죠. 그런 사건들을 전담해서 소송을 맡아주는 공익소송 전담 변호사가 많아져야 사회가 달라질 것이라 여겨요. 직접 그런 활동을 하거나 그런 활동을 지원하고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주변에 제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는 참 예뻤다(사실 잘 생겼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를 통해 새로이 알게 된 그는 멋있었고, 앞으로 만나게 될 그 또한 내겐 변함 없이 아름다운 사람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아직 많지 않은 나이에 이미 10년이라는 세월을 참여연대와 인연 맺고 살아온 최중영 회원, 10년 후 그를 꼭 다시 만나보리라.


이송희 참여연대 시민참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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