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1월 2006-01-04   1303

빨리 달리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참여사회 1월호] 특집 길

지난 시절 길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딛고 간 흔적이 쌓인 것이었다. 동서교역로였던 실크로드나 보부상들이 봇짐 메고 걸었던 길이 그러하다. 그 길에는 사람이 있고, 사연이 있고, 자연과의 어울림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다니고 있는 길은 어떤가?

넓어지는 도로, 좁아지는 대인관계

고속도로는 말할 것도 없고, 고속도로 못지 않게 시원스레 뚫린 국도에는 자연과의 어울림이나 사람은 찾아볼 수 없으며, 오직 속도만이 남아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목적지까지 충실하게 이어주는 길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내 주위의 모습이나 다른 삶에 대한 관심을 접어둔 채 목표만을 향해 내달리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기 위해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와 오버랩 된다. 목적지만을 향해 내달리는 도로,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도록 계속 넓혀져만 가는 도로는 그 속도만큼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있을까?

도로와 관련해 재미난 연구가 1970년 미국에서 진행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도널드 애플야드라는 연구자는 도로에 다니는 차량 수와 그 도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대인관계를 조사했다. 그는 하루 2,000대의 차가 다니는 동네 안에서 한 사람이 평균 3명의 친구를 가지며 6.3명의 아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하루 1만 6,000대의 차가 다니는 동네 안에서는 한 사람이 평균 0.9명의 친구와 3.1명 만을 알고 지낸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길이 오히려 사람 사이를 소원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국민복지 발목 잡는 불필요한 도로 건설

그렇다면 사람을 이동시키는 도로는 제대로 만들어지고 있는 걸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가장 큰 문제가 불필요하게 만들어지는 도로다. 녹색연합이 조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걸쳐 불필요하게 도로가 만들어지고 있는 구간은 13곳으로 총연장 597km, 총 공사비는 무려 9조 559억 원에 이른다. 대표적 사례가 경북 문경에서 이화령을 지나 충북 수안보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이 구간은 이화령을 지나는 4차선의 3번 국도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병행하며, 옛 3번 국도도 그대로 있다. 도로들 사이의 거리는 500m도 채 안 된다. 특히 국도인 이화령터널 구간은 민자사업자인 새재개발(두산건설 자회사)이 1998년 완공했으나, 교통량이 예상치에 턱없이 못 미쳐 계속 적자를 보고 있다. 이에 새재개발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2004년 12월 법원은 새재개발에 704억 여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잘못된 수요예측으로 쓸데없이 도로를 넓히고, 거액의 보상금까지 물어주게 된 것이다.

이처럼 불필요하게 지어지는 도로는 환경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도로 건설에 불필요하게 들어가는 공사비가 9조 559억 원에 이르는 반면, 저출산 현상이 심각한 현실에서 1년 보육예산은 6,000억 원에 불과하다. 만약 도로건설에 불필요하게 투자되는 비용을 보육 등 복지 분야로 돌린다면 국민들이 느끼는 삶의 질은 월등히 개선될 것이다.

사람을 이어주고 자연과 어울리는 도로를 꿈꾸며

도로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문제는 자연재해를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녹색연합이 2002년 태풍 루사로 발생한 피해를 조사한 결과 많은 경우 도로가 피해를 일으켰거나 키웠다. 도로 공사로 생긴 가파른 절개지와 경사면에 대한 허술한 관리가 자연재해를 가중시키는 주요 인재 요소였다. 영동고속도로 구간, 동해고속도로 구간, 35번 국도, 59번 국도, 424번 지방도 등 모든 도로에서 도로 길 옆 절개면과 사면 붕괴가 확인됐으며, 이때 발생한 토사가 농경지와 가옥을 덮치며 피해를 키운 것이 확인됐다.

도로를 만들 때 지질층을 고려하지 않고 절개면 각도를 획일적으로 적용한 점, 유량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산간도로의 배수구를 묻은 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도로 설계 과정에서 지질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무리하게 절개사면을 발생시킴으로써 비만 오면 무너지는 구조적인 인재를 낳고 있다. 이로 인해 낙석, 산사태와 같은 재해가 일어남은 물론 야생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다.

물길을 바꾸며 건설한 하천변 도로나 유속, 유량, 지형을 고려하지 않고 세운 교각도 자연재해를 가중시켰다. 2002년 양양 남대천이 대표적 사례다. 양양 남대천을 따라 세워진 10개의 다리 중 어성전교와 양양대교를 제외한 8개의 다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물은 제 길을 찾아간다는 옛말이 있다. 도로를 만들 때 아무 생각 없이 약간 바꾼 물길이 호우로 불어나자 제 길을 찾아가며 도로를 흔적도 없이 쓸어가버린 것이다.

이외에 사람의 통행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든 도로도 문제다. 초등학교 앞 국도에 과속방지턱도, 인도도 없어, 아이들이 등하교 길에 무방비로 사고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도로는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다. 그러나 도로를 새로 놓고 넓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크기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자연과 어울리는 도로를 꿈꾸어 본다.

도로가 일으키는 환경 문제

녹색연합 핵심 사업의 하나인 백두대간보전운동을 위해 현장을 다니다 보면, 도로가 다른 어떤 국책사업 못지 않게 환경을 파괴하는 요소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한반도 생태축의 핵심인 백두대간을 비롯해 낙동정맥 등 주요 산줄기의 생태축을 단절시키는 것이 바로 도로다. 현재 백두대간 주능선 고갯마루를 지나는 도로만 77개에 이른다. 여기에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정맥들을 지나는 도로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생태축 단절로 야생동물들의 서식처는 파괴되고 곰, 호랑이, 표범 등 넓은 서식 공간을 필요로 하는 대형 포유동물들은 개체수가 줄어들어 끝내 멸종되었거나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차에 치여 죽는 야생동물도 적지 않다. 도로 건설은 산림과 농지를 감소시키며 차량이 내뿜는 배기가스는 대기오염과 기후온난화를 일으킨다.

윤기돈 녹색연합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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