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1월 2006-01-04   955

옛길을 가다

[참여사회 1월호] 특집 길

김재홍 송연 부부는 인도 배낭여행을 위해 체력훈련 삼아 한국땅을 걷는 보도여행을 시작했다. 우리 옛길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경험한 ‘길’을 주제로 책을 펴내기도 했다. 편집자 주

“왜 걸어다녀요? 그래서 무엇을 얻는데?” 도보여행, 그것도 옛길을 찾아 걷는 부부에게 이런 질문이 종종 날아온다. 고속철이 뚫려 서울에서 부산까지 세 시간 만에 내달리고, 위성이 길을 가르쳐주고, 앉아만 있어도 어떤 곳이든 편하게 옮겨갈 수 있는 시대이다. 이런 때에 걷겠다고 나섰으니 생각건대 당연한 질문이긴 하다. 그런데 정작 대꾸하려면 어쩐 일인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다.

길의 주인이 된 자동차

영남대로 옛길인 경북 문경과 유곡 사이의 진남교반(鎭南橋畔)에는 관갑천(串岬遷)이라고도 불리는 ‘토끼벼루’ 벼랑길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태조(왕건)가 남하하여 이곳에 이르렀을 때 길이 없었는데, 토끼 한 마리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주어 갈 수 있었으므로 토천(兎遷)이라 부른다‘고 적혀 있다. 길이 동물에 의해 생겼음을 비추는 내용이다. 인간도 그 길을 따라 천년의 걸음을 이어가게 된다. 이렇게 열린 길은 몸에 흐르는 핏줄처럼 퍼져 정치, 군사, 경제, 외교 등 나라를 경영하는 교통로로 발전해 간다.

조선 후기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집필한 대동지지는 나라의 큰길을 모두 열 개로 정리했고, 거미줄 같은 간로(間路)인 샛길도 상세히 적어 놓았다. 왕의 명령이나 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말이 달리던 역로(驛路), 적의 침입을 알리기 위한 파발로, 보부상의 발자국을 따라 만들어진 상업의 길이 그것이며 문화의 전파 또한 이 길이 담당했을 것이다. 이때의 주요 교통수단이 걷기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다 근대화를 거치며 획기적인 교통수단이 등장하면서 단순했던 걸음도 커다란 전환점을 맞는다.

탈것의 본격적 시작은 개항과 함께 1899년 놓인 경인철도다. 길 모습을 바꾼 ‘신작로(新作路)’도 일제강점기 때이니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천년의 걸음을 단숨에 뒤바꾸고 삶의 틀마저 변화케 한 위력은 대단했다.

철길을 놓는 현장에는 최초의 노동자가 등장했고, 기차역을 따라 주막거리를 이루며 자본의 유통이 생겨났다. 그뿐 아니라 철도와 신작로를 따라 삶의 터전 또한 재편되니 전쟁이 아닌 상태임에도 가히 민족과 경제의 대이동이랄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한 근대화의 길은 신작로이래 한 세기가 지나며 모든 길의 포장이라는 목적을 이루었고, 역사적인 고속도로를 열어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며 바야흐로 탈것의 전성시대로 진입한다. 그리고 길의 주인도 자연스럽게 걷는 사람에서 자동차로 바뀐다.

길을 통해 시간과 역사를 돌아본다

진남교반에는 여러 개의 길이 지나고 있다. 옛길인 토끼벼루가 첫째요, 맞은편에는 자동차가 다니도록 만든 신작로와 석탄을 실어 나르던 문경선 철길이 나란히 놓여있다. 여기에 태고부터 흘러온 영강의 뱃길이 있고 그 위로는 빠르게, 더 빠르게 가라는 찻길과 고속도로가 그어져 있다. 모두 여섯 개의 길이 어우러져 동무하며 길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곳은 또한 길의 생명력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탈것에 의해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토끼벼루는 고모산성과 이어진 역사유적지가 되었고, 석탄이 끊긴 철길에선 자전거철도가 관광객을 맞고 있다. 반듯하지 못한 굽이길인 신작로는 연인의 산책길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또 얼마 전에 한강과 낙동강을 잇자는 이야기가 나왔듯이 영강의 뱃길도 영원히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이렇듯 한번 생겨난 길은 새로운 길이 만들어져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길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길은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모든 길에는 역사가 배어 있다. 현대의 길 또한 포장하여 곧게 넓혀놓았을 뿐 대부분 오래 전부터 이어오던 길이기에 살아있는 유물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시간과 역사, 이것이 바로 길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길은 주인을 자처하는 자동차에게 이러한 속살을 보여주질 않는다.

작은 정이 마을을 이루고, 이웃을 이어 마침내 ‘길’

지금의 곧은 길은 한 방향으로 달리기만 한다. 주변의 아름다움에 눈길이 머무는 것도 잠깐 동안이다. 문경 8경의 하나인 진남교반을 지나는 고속도로는 영강의 빼어난 풍경이 발 아래에 펼쳐져 있음을 알지 못한 채 달리는 데 급급하다. 자동차 또한 앞에 그어진 차선만 바라보며 목적지라는 결론에만 충실한 채 볼거리와 빠르기를 맞바꾸었다. 어쩌면 지금의 길에는 처음과 끝만 필요로 하고, 속도에 중독된 자동차만 있는 것은 아닐까?

여암 신경준 선생은 “길이란 주인이 없고 오로지 그 위에 있는 사람이 주인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자동차를 세워보자. 차에서 내리면 눈에 없던 마을이 나타나 노부부의 정겨운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개울가의 이름 모를 들꽃도 보게 된다. 그러다가 아름다운 길을 만나면 시인이 되고 강바람 앞에 서면 화가가 된다. 철길의 레일 위에 귀를 올려놓고 조약돌을 두드리며 고향 떠난 누이 소식을 기다리기도 한다.

이렇게 길이 이끄는 대로 걷다 보면 모퉁이에 무엇이 있는지, 저 험한 고개를 나그네는 어떤 사연으로 넘었는지 알게 된다. 옛사람을 만나 탄식과 희망의 숨소리도 듣는다. 그러다가 불쑥 나타난 낯선 삶과 애틋함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하나 둘, 잊고 지내던 풍경이 목마른 대지에 꽂히는 빗방울처럼 차곡차곡 쌓이며 비로소 길은 참모습을 드러낸다.

길은 작은 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람이라는 정이 모여 마을이 되고, 살아 움직이는 세포처럼 이웃을 이어 마침내 길이 된다. 이런 길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기에 떠남과 돌아옴이 있는 인생과도 같다. 그러기에 그냥 지나치면 안 될, 머물다 가지 않으면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길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왜 걷느냐 물으면 여전히 대꾸하질 못한다.

김재홍 송연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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