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2월 2006-02-01   1575

타인의‘삶’을 공간으로 조직하는 건축가

건축가 정기용 선생

우리는 건물로 안과 밖이 구획된 공간을 넘나들며 산다. 허나, 우리의 삶을 그렇게 배치한 건축가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10여 개의 건설사가 전국적으로 아파트 ‘복제’를 장악한 토건국가에서 그저 건축은 부동산 가치로 환산될 뿐이고, 건축가는 ‘면적을 잘 뽑아내야’ 명성을 얻는다. 그런데, 여기 그런 실용적 대세를 좇지 않고, 자기만의 건축 철학으로 건축의 공공성을 몸소 실현하여 더욱 값진 의미의 명성을 쌓은 건축가 정기용이 있다.


누워있는 대동여지도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 입구에서는 옆으로 누워 있는 <대동여지도>가 손님을 맞는다.

“우리나라 땅을 보면 늘 북쪽은 위로 가 있고, 남쪽은 아래로 가 있죠. 그게 아니라 평평하게 동일선상에서 봐야죠. 토끼도 맨 날 뛰려고만 하지 말고 좀 쉬어야 한다 이거죠.”

그 지도에는 정기용과 그의 사무실 식구들이 설계한 건축물들이 표시되어 있다. 우리가 아름다운 한반도를 얼마나 생채기를 내고 있는가를 상징하는 거란다. “건축가가 집을 지으면 그 땅은 불모가 되는데, 모든 땅은 지구상에 하나 밖에 없으니, 건축가는 땅의 역사와 잠재력을 읽으며 윤리적이고 생태적인 문제를 누구보다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그의 건축철학이 누워있는 〈대동여지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남의 삶, 변화하는 삶을 다루는 건축가의 고민

그에게 있어 건축가란 무엇인가.

“인간이 어느 장소에서 태어나고 이동하고 결국 죽는 것을 삶이라고 할 때, 그걸 조직하는 것이 건축가지요.”

이렇게 사람의 삶을 조직하고 또 그 삶을 위해 물질을 조직해야 하는 건축가에게는 세 가지 덕목이 필요한데, 첫째로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

“굉장히 많이 알아야 하는 이유는 건축가는 학교, 납골당, 공장, 주택, 비행장 등등 다양한 것들을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죠. 또 사람의 삶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삶들인지 알아야 되잖아요.”

둘째, 건축가는 시대정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역사적 정신 내지는 시대적 정신을 갖고 있어야 그 시대가 뭘 요구하는지 알고 제대로 그 시대가 원하는 삶을 조직할 수 있겠죠.”

셋째, 건축도 창작활동인 만큼 건축가는 창의적이어야 한다.

“창작행위의 바탕은 상상력이니, 그 힘을 키우려면 여러 분야를 횡단할 줄 알아야 돼요. 그림도 기웃거리고 영화, 사진, 문학, 철학, 정치도 보고….”

이야기는 건축가의 ‘모순’으로 넘어간다. 건축가의 모순은 근본적으로 타인의 삶을 다룬다는 것, 미래의 삶을 설계하면서 지금 모든 것을 결정해야 된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건축가가 설계해서 건설회사가 집을 짓지만 건축가가 거기 사는 게 아니거든요. 자기가 설계한 걸 남한테 주고 ‘잘살아 봐라’ 하는 거지요. 게다가 삶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그 변화를 모두 예측해서 지금 결정을 해야 해요.”

이 두 가지 모순으로 인해 건축가가 결정한 것이 항상 선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여기에 윤리 문제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건축가는 어디까지 남의 삶에 개입해야 되는가 정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김수근과 모리스에 이끌려 건축에 눈뜨다

정기용은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나왔다. 중학교 시절부터 미술부 활동을 했던 그가 응용미술을 택한 것은 ‘가난하기 때문에 돈을 벌려면 응용미술과를 가라’는 권유 때문이었다. 약제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그는 큰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한일회담 반대 데모가 한창이던 196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닌 그에게 미술은 한국사회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죽은 예술이었다.

그 때 건축가 김수근의 강의를 듣고 건축을 알게 되었다. 근대 디자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모리스의 저서는 그가 건축가의 길로 들어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노동에 만족하고 부(물질적, 정신적)의 분배와 환경에 이바지하는 예술을 역설한 그의 논리에 가슴이 뛰었다. 그의 사상에 매료된 정기용은 토지와 건축의 공공성에 대해 나름의 신념을 갖게 된다. 지금도 그는 등기부상의 31평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내 의지에 따라 이동하고 머무는 곳이 나의 집이고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며 그 영역이 대체로 50~100만 평 정도이니 너무 과다한 영토 사용은 아닌지 되묻기도 한다.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한 정기용은 주한프랑스대사관이 실시한 유학생 시험에 합격해 프랑스로 건너가 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한다.

‘건축계의 공익요원’이 되기까지

86년 귀국한 정기용은 건축가로서의 직업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건설비리를 묵인할 수 없었던 그의 반골 기질은 이러한 건축계의 관행에 반기를 들게 만든다. 그의 아웃사이더 성향은 사촌들 틈에서 10여 년을 살면서 늘 대가족의 주변을 맴돌았던 어린 시절부터 데모를 하다가 무술경관들에 잡히자 버스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고 탈출하던 대학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줄곧 반복됐던 내적 갈등과 회의, 그리고 투쟁의 산물이다.

90년대 초 그는 건축계의 ‘혁신’을 꿈꾸며 결성된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에 참여한다. 이 모임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서울건축학교에서는 문학가, 인문학자, 시민운동가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을 초대해 강의를 들었고 세대를 넘나드는 건축가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건축과 학생들과 함께 8박 9일간 전국의 도시와 농촌을 찾아다니는 워크숍도 열었다. 이 새로운 공부방식이 기존의 건축학계에 얼마나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민예총 민족건축협의회(민건협)의 회장도 지냈다. 오랜 친구인 성완경과 함께 민중미술인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자리다. 민건협에서도 그는 건축아카데미 프로그램을 3년 간 운영했다. 건축과 도시에 관한 제도권 교육을 부정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보고 비평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그는 문화연대 공동대표다. 그 전에 그는 “건축과 도시를 집중적으로 다루어서 낭비를 고발하고 대안을 개발하고, 주택정책을 올바르게 하여 점차 확산돼 가는 전국의 아파트 건설을 감시하며 공간을 정의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민단체”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99년 문화연대가 결성될 움직임을 보이자 그 산하에 공간환경위원회를 만들어 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렇게 꾸준히 전개된 그의 운동적 삶은 녹색대학과 평화박물관을 통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기적의 도서관의 코디네이터 정기용

정기용은 한국의 코디네이터 건축가로도 손꼽힌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전북 무주에 펼쳐져 있는 30여 점의 작업과 순천, 진해, 제주 등지에 세운 기적의 도서관을 들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인구 3만의 무주에서 그는 삶을 조직한다는 철학을 담아 군청, 면사무소, 마을회관, 공설운동장, 재래시장을 새롭게 짓거나 고쳤다.

그는 면사무소에서 작업을 할 때 노인만 사는 농촌인지라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노인들은 봉고차 빌려 타고 대전까지 가서 목욕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목욕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공설운동장의 관람석 위를 등나무 덩굴로 덮어 땡볕을 피할 수 있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봄에 등꽃이 피는 명소로 만들었다.

기적의 도서관 역시 그의 역작들이다. 그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시민단체가 주축이 되어 관을 움직이고 건축가라는 전문가, 도서관을 운영하는 전문가들이 함께 건축하고 운영하여 성공한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시민운동의 귀감이 된 기적의 도서관을 건축할 때도, 어린이들이 책을 만나는 삶을 어떻게 조직해야 좋아할 것인지를 고민했고, 아기를 업고 오는 엄마들까지 고려했다.

걷기, 나대로 요가, 춤으로 몸을 재조직하는 중

지금 정기용은 암과 싸우고 있다.

“제가 작년에 환갑이었거든요. 60년 동안 몸을 썼으니까 앞으로 계속 쓰려면 개조사업을 하라는 것 같아요. 몸 따로, 정신 따로 있는 것처럼 살아오다가 몸이 반란을 일으켜 하루의 반 이상을 고스란히 몸에 신경 쓰고 있어요. 그래서 평생 안 하던 운동을 4개월 째 하고 있어요.”

병에 대한 독특한 해석만큼 그가 하는 운동도 개성이 넘친다. “60년 동안 걸었어야 됐는데 못 걸었던 양만큼 걷고, 스스로를 돌봐준다는 생각에서 몸뚱어리와 대화”하며 자신이 개발한 요가를 한다. 또, 프랑스 유학시절 루마니아 무용수가 가르쳐준 스트레칭, 춤꾼 무세중에게 배운 기천문, 해인사 스님이 가르쳐 준 가만히 서서하는 운동 등을 원용하여 몸이 원하는 ‘춤’을 즐겁게 춘다.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골든베르그 변주곡에 맞춰서.

※ 필자 김정인님은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고 현재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밖에 참여사회 편집위원,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집행위원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2006년 1월호부터 본지 ‘김정인이 만난 사람’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김정인 「참여사회」 편집위원,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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