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2월 2006-02-01   1533

은평 뉴타운을 한양주택처럼

서울 은평구 한양주택 주민들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된 그들의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시청 앞 일인시위를 지난 여름부터 계속하고 있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이곳저곳이 늘 파헤쳐지고, 그 파헤침에 맞서는 주민들의 저항이 도시의 일상이지만, 한양주택의 사연은 우리에게 각별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 사라진다

통일로가의 이 마을은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생겨났다. 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 따라 분단 후 처음으로 북쪽 방문단을 맞게 된 박 정권은 발전된 서울을 자랑하기 위해 서울 관문인 이곳을 시범마을로 조성하고자 했다. 서울시는 당시 개발제한구역에다 군사보호구역인 이곳에 50평 짜리 획일적인 단층주택을 지어 인근 주민들을 이주시켰다.

원주민들은 일시에 땅과 집을 빼앗긴 뒤 ‘개발딱지’만 얻어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했고 융자를 얻어 재입주했지만 빚 때문에 3년 안에 거의 떠났다. 그 때 진 빚을 30년이 지난 최근에야 겨우 다 갚은 주민이 있을 정도로 개발독재 하에서 주민들이 겪었던 고통은 컸다.

정착한 214가구는 오갈 데 없었던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웃 간에 정이 두터웠던 주민들은 가족처럼 오손도손 모여 살면서 그들의 삶터를 가꾸고 다듬어 서울에서 보기 드문 인정 넘치는 마을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로 둘러싸인 마을의 풍경은 이들의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96년 서울시가 이곳을 사람과 자연이 잘 어우러진 최우수 마을로 선정했던 것은 우연한 게 아니다.

그러나 살기 좋은 곳이란 이유로 상을 받은 지 6년 만에 이 마을은 유사한 이유로 해체될 운명을 맞게 되었다. 이명박 시장의 ‘살기 좋은 뉴타운 건설’ 공약에 따라 서울시는 2002년 10월 은평구 뉴타운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곳을 포함시켰다. 발표 당시 자료에는 ‘기자촌 및 한양주택 등 양호한 주택지는 원칙적으로 계획구역에는 포함되지만 그대로 존속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침수 우려’ 등의 이유를 내세워 서울시는 이곳을 재개발에 일방적으로 편입시켰다.

박 정권 하에서 강제 수용이란 국가폭력에 의해 삶터를 빼앗겼던 주민들은 30년 뒤 박정희 식 개발주의를 승계한 이명박 시장에 의해 삶터를 다시 빼앗기는 아픔을 겪고 있다. 한국적 근대의 비극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한양주택 사람들의 아픔은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의 아픔이고, 이의 극복엔 우리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

한양주택의 사회적 가치

한양주택과 같은 곳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야말로 뉴타운 사업의 진정한 본분이다. 그러나 뉴타운 사업이란 이름으로 한양주택을 허무는 모순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지금도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은 개발주의의 추억을 좇고 있다는 이유 외엔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역설적으로 이런 이유로 한양주택의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음미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과정으로서 가치’다. 한양주택은 꽃, 나무, 사람의 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마을이지만 그 내면은 개발독재가 남긴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이 마을이 진정 아름다운 것은 외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아픔을 극복한 내면적 과정에 있다. 집과 땅을 빼앗기고 건설비를 강제로 떠맡았으며 개발제한이란 제도적 억압 아래서도 주민들은 거친 삶터를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가는 ‘장소적 삶의 과정’을 성실히 꾸렸다. 이곳이 아름답다는 것은 서울에서 이러한 과정을 간직한 곳이 드물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기록과 기억의 가치’다. 이 마을은 개발주의 시대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공간이다. 1970년대 ‘관제마을’로 조성되어 남아 있는 결과, 한양주택은 개발독재의 개발방식, 건축형태, 단지구성 방식 등을 온전히 담고 있고, 또한 그 때부터 주민들이 꾸려온 공동체적 인간관계를 간직하고 있다. 한양주택은 우리의 근대적 삶의 기억과 기록 그 자체인 셈이다. 실제 이 마을은 7O년대 동네 풍경을 담아내려는 영화나 TV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자주 활용된다고 한다. 서울의 600년 역사에 근대를 포함시켜야 한다면, 서울의 다른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한양주택이란 공간기록은 마땅히 보전되어야 한다.

셋째는 ‘모델로서 가치’다. 96년 서울시가 이 마을에 준 상장에는 ‘주민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생활주변을 녹화해온 우수 마을로서 주민과 함께 푸른 서울을 만들어 나가는 모범’을 보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서울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한양주택과 같은 모범 마을이 이곳저곳에서 많이 생겨나야 한다. 한양주택은 이런 점에서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미래의 공간’을 위한 모델이다.

넷째는 ‘공동체성의 가치’다. 한양주택 사람들은 ‘집안에 가풍(家風)이란 것이 있다면 이 동네엔 동풍(洞風)이란 것이 있다’고 자랑한다. ‘대문이 열려 있더라도 이웃집이 봐주고, 김치를 담글 때면 동네사람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함께 담그며, 비가 오면 앞집 빨래를 걷어 주고, 마당에서 가꾼 채소를 나누어 먹는’ 끈끈한 정과 믿음의 공동체성이 곧 동풍이다. 인구 천만이 살지만 서울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가 없다. 공동체의 결핍은 서울을 삭막한 도시로 만드는 이유이면서 우리사회가 더욱 경쟁적이고 분열적인 사회로 변해가는 까닭이기도 하다. 한양주택이 가지는 공동체성은 서울의 모든 지역으로, 우리사회 전역으로 확산시켜야 할 가치다.

다섯째는 ‘뉴타운 속에서 녹아내야 할 가치’다. 한양주택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사회적 가치는 서울시의 뉴타운 사업에 의해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구현하고 지켜야 할 핵심가치다. 한양주택을 중심으로 주변단지를 조화롭게 배치시키고 연결하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한양주택도 미래지향적 단지로 재편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은평 뉴타운 전체가 ‘한양주택화’ 해야 한다. 은평 뉴타운의 성공은 한양주택의 가치를 어떻게 뉴타운 전체의 가치로 녹아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명래 단국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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