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2월 2006-02-01   1019

아름다운마을 ‘한양주택’

그곳엔 두 번 다녀왔다. 첫 번째 방문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던 지난해 7월 어느 일요일이었다. 며칠 전부터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삿갓을 쓰고 커다란 알림판을 든 사람들이 교대로 돌아가며 ‘개발을 반대한다’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던 터였다.

시청 출입기자로서 매일 그곳을 드나들어야 하는 나로서는, 머리 꼭지가 뱅뱅 돌아갈 만큼 더운 여름날 저렇게 서 있다 쓰러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마음이 쓰여 한양주택 시위 주민들에게 말을 붙이게 됐고 사정을 듣게 됐다. 일요일의 방문은 기사 쓰기를 위한 취재라기 보다는 ‘과연 그곳이 그들이 묘사하던 대로, 그들이 보여주던 사진처럼 아름다운 마을일까’하는 궁금증에서 비롯됐다.

구파발역에서 내려 10여 분 걸어 이르른 마을 어귀에는 1996년 서울시로부터 받은 ‘아름다운 마을상’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마을로 걸어 들어가 동네를 기웃거려보았다. 격자형으로 널찍널찍하게 잘라진 도로는 여유로웠고 집집마다 낮은 울타리 위로 정성 들여 가꾼 나무와 화초가 손님을 맞고 있었다. 나른한 오후 푸른 정원에서 할아버지가 졸고 계셨다. 몇몇 집에선 간간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모처럼 ‘마을’에 오니 쉬지 않고 재깍이던 머릿속 시계가 멈춘 느낌이었다.

이곳이 ‘아름다운 마을’이 된 것은 전적으로 주민들의 노력 때문이었다. 초창기 입주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집 한 채에 1250만원을 주고 이사와 당시로선 꽤 비싼 가격이었으나 부실 공사가 도처에서 발견됐고 불만도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상황은 변했다. 누군가 사철나무로 생울타리를 만들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따라하기 시작했다. 초여름이면 장미덩굴에서 진한 향기가 흘렀고, 가을엔 따가운 햇볕을 안고 빨갛게 감이 익어갔다. 함박눈이 내리면 아이들은 집밖으로 나와 강아지처럼 뛰놀았다.

집을 짓고 나무를 심는 것은 사람의 손이지만, 거꾸로 공간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낮아진 울타리 만큼 이웃 간의 벽도 낮아졌다. 동네 가운데 건물, 마을회관처럼 쓰고 있는 방에 들어갔더니 주민들이 들며 나며 시끌벅적하다.

“누군가 배추를 절이고 있으면 너나 할 것 없이 지나던 동네 사람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함께 김치를 담그는 동네에요.”

동네 자랑은 걱정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앞으로 뉴타운개발이 시작되면, 동네가 없어져 이렇게 알뜰살뜰 지내던 사람들이 흩어지는 게 두렵다고 했다. 아파트는 정말 살기 싫다고, 지금처럼 땅을 밟고 사는 생활을 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두 번째 방문은 한양주택 사람들의 시청 앞 1인 시위가 100일을 맞은 날, ‘백일잔치’에 초대받은 것이었다. 아무개 씨 집에서 가져온 삼 년 묵은 신 김치에 돼지고기를 한 입 가득 싸먹는데, 주민 두보옥(47)씨가 가슴 짠한 말을 했다.

“옛날부터 갓난아기가 백일을 넘기면 ‘이제 한 생명이 진짜 사는구나’ 하면서 축하했잖아요. 한양주택도 백일을 넘겼으니 진짜 살아남는 거 아닐까요?”

그러나 마을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양주택 얘기가 나오면 서울시 공무원들은 고개부터 흔든다.

“아, 거기요? 그렇게 버틴다고 보상금 더 못 줘요. 시도 원칙이 있는 거니까. ”

‘이대로 살고 싶다’는 주민들의 외침은 즉시 ‘더 많이 받고 떠나고 싶다’는 말로 옮겨지는 현실이다. 주택을 정주 공간이 아니라 사고 팔아 이문을 남기는 상품으로 바라보는 탓이다. 집으로 돈 버는 일에 우리 모두 너무나 익숙해졌다.

나는 한양주택 사람들을 계속 믿고 싶다. 부동산 가치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사는 곳을 가꾸는 재미로, 이웃이 좋아서 눌러 앉아 사는 사람들이 진짜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 아니, 증명하고 싶다.

이유주현 한겨레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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