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8월 2006-08-01   965

[참여사회] 인터뷰_나와 우리가 평화롭게 함께 사는 세상

김정우 나와우리 사무국장

경계 없애기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기존의 단체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 평범한 사람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보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 그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모순, 부조리와 불합리를 우리 방식으로, 우리 색깔로 풀어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이 되리라.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주노동자와 토착민,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여자와 남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자 혹은 또 다른 이념의 소유자, 남과 북……. 그렇게 소수자의 삶 꿈 희망 절망을 만날 수 있는 마당,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마당, 차별과 고정 관념과 인습을 없애고 나와 너의 경계에 꽃을 심고 나무를 심으러 모이자!”

이런 바람으로 만들어진 단체가 바로 ‘나와 우리’다. 1997년, 그들의 출발은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다. 장애우, 소년소녀 가장, 위안부 할머니 그리고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주말마다 소풍을 갔고 캠프를 열었다. 모두 무급(無給) 대표들의 열성과 회원의 회비만으로 이루어낸 일들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김정우 사무국장은 말한다.

“소년소녀가장들은 롯데월드에 가고 싶어 하는데 저희는 별보기 캠프를 열었고, 이주노동자들이 쉬고 싶어 하는 주말에 답사 가자고 불러내고, 할머니들은 곧 연로하셔서 나들이가 어려워졌죠.”

2003년부터는 아시아 유학생 네크워크를 만들었다. 한국을 찾은 일본, 중국, 인도, 몽골 등의 유학생들과 전통놀이를 하고 영화도 보고 공부도 했다. 그러다가 한국인 친구를 찾던 버마 민족민주동맹(NLD) 회원들을 만나 ‘프렌즈 오브 버마(버마의 친구들)’ 분과를 만들었다. 버마인 샤린이 추방당할 처지에 놓이자 다른 시민단체와 함께 그를 위해 난민신청을 하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베트남과의 인연

170여 회원의 회비로 운영되는 ‘나와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살림꾼이 바로 김정우 사무국장이다. 2002년부터 상근하게 된 그녀와 이 단체를 묶어준 인연은 베트남이다. 그는 베트남 관련 NGO에서 활동하다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일원으로 2년 간 베트남에서 일했다. ‘나와 우리’와 베트남의 인연은 1999년 세계 평화와 인권, 환경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일본의 시민단체 피스보트와 함께 항해하던 중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알릴 필요성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장 베트남 답사 계획이 세워졌고 99년부터 4년에 걸쳐 답사가 이루어졌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30여 년, 극적으로 살아남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증언하는 이들은 그 사건들을 어제의 일처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베트남에도 노근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 진상조사와 사죄의 행렬에 위안부 할머니들도 동참했다.

“99년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알게 된 단체들이 모여 베트남전 진실위원회를 만들었죠. 지금은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로 바뀌었는데요. ‘나와 우리’와 인연을 맺었던 위안부 할머니들께서 베트남전 진실위원회에 유산을 남기고 돌아가셨어요.”

베트남과 친구 되기

‘나와 우리’는 베트남에서 만난 생존자 중 홀로 사는 노인 10명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우리 돈으로 1만 5,000원 정도를 매달 보내고 있다. 그 중 4명이 세상을 떴다. 그 때마다 꽃과 향을 보냈고 그 마을에 가면 성묘도 한다. 그 과정에서 현지 도우미가 필요했다. 궁리 끝에 2001년 베트남 청년 한 명을 초청해 NGO 활동가 교육을 실시했다. 그가 돌아가 굿 윌(GOOD WILL)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2002년부터는 굿 윌의 제안으로 한국인과 베트남인이 함께 하는 평화캠프를 열고 있다. 첫 해는 허가절차가 복잡해 4명 정도의 한국인을 포함해 10여 명 밖에 참여하지 못했다.

“전쟁 기억이 없는 베트남의 젊은 세대와 한국 시민들이 함께 민간인 학살 지역의 마을에서 민박하면서 턱이 날아가버려 누워 유동식만 드시는 할머니의 집을 지어드렸어요. 그 다음 해에는 사막같이 황폐한 마을에서 학살 때 남겨진 시체들이 무덤도 없이 바람에 날려갈 것 같다고 알려와 2년 동안 돈을 모아 공동묘지를 만들었어요.”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위령비를 세우기 위해 마을을 찾아갔다가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이렇게 베트남에 푹 빠진 ‘나와 우리’는 2004년부터 “분식집 하지 말고 아예 냉면집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베트남 관련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2004년에는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관련 사진자료가 유일하게 남아 있는 퐁니라는 마을에서 위령비 짓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밝고 희망찬 일도 하고 싶어 지난해에는 마을 보건소에 병실을 지었고, 올해는 답사할 때 한국인이 처음 들어가는 마을에서 유치원 짓는 일을 하고 왔어요.”

그 고된 일을 하고 돌아온 직후였지만, 그녀의 표정은 밝았다.

정 많고 자존심 강한 베트남 사람들

그녀가 보기에, 베트남 사람들은 자력으로 불가능한 일에 한해 도움을 청하고 또한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사람들이다. 위령비도 언젠가 자신들이 해야 할 숙원사업이지만, 자금이 부족하니 도와달라고 했다. 유치원은 비용의 2/3만 ‘나와 우리’가 맡고 나머지는 주민들이 힘을 모았다. 그녀가 늘 “돈이 없어서요.”라고 하니까 베트남 관리들이 “‘나와 우리’는 노동자의 돈을 모으는 곳이니 한꺼번에 많은 걸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배려해 준다고 한다. 민간인 학살을 사죄하고 화해를 청하는 이들을 친구로 맞아주는 사람들.

“저희가 생존자 분들을 만나러 가는 일도 방학 때 시골에 할머니 뵈러 가는 것과 같은 거지요.”

하지만, 그녀는 갚아야 할 빚이 있다는 채무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70~80년대에 세운 베트남의 위령비 중에는 ‘어느 날 미군의 용병 남조선 군사들이 와서 누구 누구 몇 명을 무참히 죽였다. 만대를 기억하리라’ 하는 내용의 죄악증거비들이 많아요. 죽은 사람 이름을 하나하나 새기고 이름이 없는 경우 무명씨 ○○을 반복해 놓았어요. 이걸 보면 우리가 하는 일 정도로는 전쟁의 상처가 극복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정부가 초등학교와 병원을 지어주고, 베트남 사람들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사업을 하지만, 이보다는 진심어린 사과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닌지. 할머니들이 말씀하세요. 한국 드라마 보면 다 착하고 우리랑 똑같은 거 같은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닫힌 한국에서 고통 겪는 베트남 여성들

베트남인과 친구가 된 그녀는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들의 고단한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여력이 없어 실태 조사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4월 21일 자 조선일보에 <베트남 처녀들, 희망의 땅 코리아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베트남 여성을 상품으로 취급한 이 기사는 재한 베트남인들의 사이트인 VNKR을 통해 신속히 알려졌고 굿 윌 등을 통해 베트남에도 전해졌다. 베트남인들과 ‘나와 우리’ 회원들이 모여 4월 25일 조선일보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평소에 ‘준비된 베트남 아가씨, 마음만 먹으면 가능합니다’ 등의 국제결혼 광고와 시집온 베트남 여성들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에 대해 서운한 감정이 쌓여있던 베트남 친구들의 분노가 이 기사를 계기로 폭발한 거죠. 유례에 없던 해외에서의 정치행동을 용인할 만큼 베트남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는데, 베트남 여성동맹에서는 우리나라 여성가족부에 항의공문을 보내기도 했죠. 조선일보는 대사관을 통해 몰래 사과했다고 합니다. 베트남 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고 하구요.”

이들은 7월 21일 ‘차별적 국제결혼 광고 대응을 위한 공동행동’의 명의로 국가인권위원회에 광고 규제와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냈다.

“많이 배우지 못한 베트남의 젊은 여성들이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한국에 오지만 오히려 다시 가난에 빠지고 어렵게 생활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녀는 지금 한국에 시집 온 80% 이상의 베트남 여성이 남편과 20살 이상 차이가 나고 성도구로 이용만 당하다가 남편이 먼저 죽는 막막한 현실 앞에서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한국인 며느리 되기’와 같은 프로그램은 많지만 반대로 베트남과 베트남인에 대해 배우려는 자세는 부족하고 프로그램도 미비한 상황이 자꾸 맘에 걸린다.

아시아의 친구로서 함께 가는 길

“평화캠프를 통해 나와 우리, 그리고 베트남 친구들이 마을 청년단과 어울려 즐겁게 일하고 놀다 오는데, 다시 가면 서로 울고불고 좋아해요. 꼬맹이들도 기억하고. 우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것이라 아니라 아시아의 이웃으로, 친구로 함께 걸어가는 것뿐이죠. 그냥 바라보는 것이랑 친구가 되어 보는 것은 참 다른 것 같아요.”

그녀의 소망은 두 가지다. 베트남 여성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 베트남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베트남 친구들이 던진 “한국 교과서에 베트남이 어떻게 적혀 있는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준비하고 싶다.

자신들이 가진 역량만큼 내실 있게 베트남과 친구가 되고 베트남 여성을 돌보면서 베트남을 올바르게 알리는 활동을 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조선일보 기사에 대응한 솜씨는 일류였다. 작지만 강한 ‘나와 우리’, 그리고 그녀가 있기에 가능했던 ‘작품’이었다.

김정인 「참여사회」 편집위원,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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