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8월 2006-08-01   845

삶틀을 바꾸는 에너지전환운동

사람은 모두 어느 정도 평등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사람들이 맨 몸으로 부릴 수 있는 힘의 크기는 대개 비슷하다. 도구를 만들어 이용하면서 사람은 천부적으로 주어진 것보다 더 큰 힘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지혜는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내었다. 도구는 저마다 주어진 척박한 자연 속에서 서로서로 어울리고 보살피며 살아가고 하늘에 감사의 제의를 올리는 정도의 문명을 가능하게 했다. 다른 동물처럼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종교와 그로부터 파생된 학문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문명은 주어진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만든 도구와 함께 다채롭게 전개되어왔다.

그러나 인간의 도구가 근대의 첨단과학기술로 거듭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도구가 간단하면 누구나 그것을 흉내 내거나 혹은 다른 독창적인 방식으로 만들어 낼 수 있으므로 천부적으로 공평한 정도가 유지되는 데 무리가 없다. 하지만 도구의 발달이 어느 수준을 넘어 지금의 화석·원자력으로 구동되는 첨단과학기술로 발전하면서 아주 희소하고 막강한 도구가 만들어졌다. 이를 가진 소수는 다른 다수들보다 천부적 신체 조건의 차이를 훨씬 뛰어넘는 큰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한 도구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함께 사는 이들과 공생공락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을 억압하는 것으로 타락하여 온갖 불평등의 문제를 낳았다.

공평하게 주어지는 재생가능에너지

에너지전환운동은 현 산업사회를 구동하는 화석·원자력자원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햇빛과 바람으로 주어지는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는 운동이다. 화석·원자력은 그 속성상 정치·경제 권력에 독점이 되기 쉽고, 그래서 거의 모두 정부나 기업에 독점되어 있다. 이는 인류역사상 그 어떤 시기보다 힘이 집중되게 하였고, 그에 따라 가장 강력한 국가와 기업이 탄생하였으며, 지금의 전례 없는 규모의 불평등 문제가 생겨나게 되었다. 에너지전환운동은 이러한 불평등의 근간인 에너지체제를 독점되기 어려운 것으로 전환하여 불평등 문제의 뿌리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너지전환운동은 단순히 현 체제를 지탱하는 ‘오염을 유발하는’ 화석·원자력에너지를 ‘깨끗한’ 재생가능에너지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이는 지금의 막강한 정치·경제 권력이 독점관리하고 있는 에너지시스템을 풀뿌리 민중의 영역으로 가져오면서, 자의건 타의건 그들에게 위임한 권력을 풀뿌리 민중이 되찾아 오고 그에 맞게 사회를 다시 만들어가는 정치운동이다.

흔히 에너지전환운동은 생태적 파국을 경고하는 기후변화나 석유수급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하는 석유정점에 대처하는 움직임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깨달아야 할 것은, 지금의 에너지체제 아래에서 극소수의 권력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지금까지 감당한 굴욕과 좌절의 크기는 기후변화나 석유정점이 가져올 수난의 크기에 못지않다는 것이다. 화석·원자력자원 이용으로 환경문제가 일어나기 훨씬 이전에 품위 있는 인간의 삶은 불가능해졌다. 기후변화나 석유정점은 단지 우리가 더 빨리 화석·원자력 자원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기후변화와 석유정점의 임박한 위기 상황은 우리에게 에너지전환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들 위기에 대한 ‘과학적’ 경고는 우리가 화석·원자력에너지 이용을 줄여가야 하는 상황을 예견한다. 특히 석유정점으로 2010년 이후 세계 석유 공급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되고, 산업사회는 어쩔 수 없이 산업혁명 이래 최초로 에너지 소비를 줄여가는 ‘역사적’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화석·원자력에 의존하는 사회

화석·원자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임박한 위기를 인식조차 못하고 있으며, 변화의 기운조차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라늄 매장량의 한계를 논하지 않더라도 화석자원 없이 불가능한 원자력은 핵폐기장 부지 선정과 함께 더욱 사회적으로 제어하기 어려워지고 있고, 비효율적인 에너지 이용 기술에 불과한 수소 기술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관심과 국가적 지원은 세계적으로 우스꽝스러우며,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의 경우 분산적인 지역 에너지시스템에 대한 전망 없이 대개 지자체의 ‘투자유치’ 부서가 앞 다투어 외자를 끌어와 거대한 규모로 도입하고 있다. 에너지전환과 같은 단체에서 시도하고 있는 소규모 재생가능에너지 설비의 확대 보급은 여전히 첫발을 겨우 뗀 수준이며, 이에 대한 사회적·국가적 관심과 지원은 매우 미흡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저(底)에너지체제에 대한 상상력이다. 사람들은 에너지 소비 감소를 산업화 시작 이래 경험해본 적이 없고 또 막연히 그런 상황을 암울하게 여김으로써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그에 대한 고민을 회피한다.

저에너지체제는 사회적 약자에게 희망적

우려와는 달리 저(底)에너지체제는 ─ 특히 사회적·생태적 약자들에게 ─ 매우 희망적이다. 대도시의 교통 문제는 저(底)에너지체제 해법을 상상해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만약 서울의 모든 교통수단을 자전거의 속도로 제한한다면 ─ 자동차 속도에 마비된 사람에게는 당황스럽겠지만 ─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수도권 사람들은 산업적으로 디자인된 도로에 갇혀 어떤 지역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매일 이동하는데 허비한다. 누구도 이를 즐거운 여행으로 여기지 않는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피곤하게 이동한다. 더 빠른 대중교통 수단이 도입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더 먼 거리를 더 자주 이동하게 될 뿐이다. 자전거는 자동차를 가능하게 하는 동일한 근대과학기술의 성과이지만 누구나 소유할 수 있을 정도의 도구이다. 건강한 사람은 누구나 자전거를 타고 천부적으로 주어진 두 다리의 이동 반경을 크게 초월하여 원하는 대로 이동할 수 있으며, 노약자나 혹은 피곤하거나 게으른 사람은 평등하게 자전거 속도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전거 이동반경 안에서 생활하게 되고, 거대한 서울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전거 이동반경을 단위로 재구성될 것이다. 만성적인 운동부족 걱정할 필요도 없어지고, 환경문제는 덤으로 해결될 것이다. 자전거 속도 사회에서는 이웃의 얼굴도 알아가게 마련이며 진정한 지역자치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유쾌한 상상력을 함께 나누고 풍성하게 한다면 에너지전환은 희망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56년에 미국 석유생산이 70년에 최대가 되고 그 이후 감소하기 시작하리라 예측했던, 존경받던 지질학자 킹 허버트는 그 뒤로도 계속 세계 석유생산 한계를 경고하는 외로운 길을 걸었다. 그는 말년에 자신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산업사회에 필요한 것은 위기를 직접 경험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낙담했다. 나도 아마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 사회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침착하게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지속가능한 에너지체제를 향한 큰 전환의 길에 무리 없이 들어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에너지전환운동 역량이 그럴 만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허진혁풀뿌리시민운동 에너지전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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