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2월 2006-12-01   888

노래하는 베를린

독일에 머무는 동안 나는 노래하기를 즐기는 남편 덕분에 베를린 시민들의 삶의 또 다른 한 면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합창과 같은 취미를 위해서 퇴근 후 각처에서 어딘가로 모여드는 베를린 사람들의 밤생활이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세계 어디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터에서의 꽉 짜인 일과를 마친 후 저녁 또는 밤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각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그리고 그가 속한 사회와 문화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독일 사회와 그 사회의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독일 시민들이 저녁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노래 부르기를 유독 좋아했던 남편은 우연한 기회에 베를리너 콘체르트 코어라는 베를린의 한 아마추어 합창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저 단조로운 독일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보겠다는 생각으로 합창단 활동을 시작한 남편은 거기에서 칠 년 간의 독일 유학생활을 통틀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마추어 합창단의 100년 역사 비결

독일 아마추어 합창단의 역사는 매우 길다. 지역별로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베를린의 경우에는 1901년에 이미 십 여 개의 민간 아마추어 합창단이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이들 중 여덟 개의 합창단이 모여서 지역 합창단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인 베를린 합창단 협회를 설립했다.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마추어 합창단들이 공식적인 조직을 구성해 활동한 것이 어느덧 백 년을 훌쩍 넘었다는 이야기이다. 독일인들은 사람들의 모임을 공식화하는 것에 익숙한 편이다. 조직을 공식화한다는 것은 조직의 운영에서 임의성과 우연성을 최대한 배제해 가는 과정이다. 독일에서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개인적인 취미를 위해서 모였더라도 일단 사람들이 모여서 조직을 이루게 되면 내규를 만들고 협회로 등록을 해서 행정기관과 공식적인 협조와 지원의 관계를 맺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공식화의 과정에서 사람들은 조직의 목적, 운영의 원칙, 사회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 보다 체계적이고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몇몇의 주도적인 창단멤버에게 의존하기 쉬운 동호회 역시 이 과정을 거치면서 특정 회원들의 모임에서 모임의 취지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의 모임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러한 특성이 바로 백 년을 거뜬히 넘기고 있는 베를린 아마추어 합창단의 장수비결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되는 역할, 음악

남편은 합창단에서 활동하면서 학교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직업, 연령, 문화와 국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전자계산학과 교수직에서 은퇴한 후 다시 철학과에 학부생으로 입학한 할아버지 학생, 에콰도르에서 독일로 일자리를 찾아서 온 외국인 노동자,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한국인 유학생, 도자기 화가, 호텔 매니저, 초등학교 선생님, 미용사, 변호사, 백화점 직원, 어머니와 헤어진 아버지를 일주일에 한 번씩 합창단에서 만나는 두 딸, 푸에르토리코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합창경력 10년의 엘리트 고등학생 등 다양한 문화와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합창을 좋아한다는 공통의 이유로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독일의 합창단은 그들의 정관에서부터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공동체의식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실제로도 남편의 합창단 내에는 직업, 소득수준, 피부색, 학력, 외모만을 기준으로 해서 볼 때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고 어울릴 기회조차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합창을 매개로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은 서로가 가진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더 쉽게 발견하게 된다. 외국인 학생으로서 독일 사회에서 나름의 서러움을 느끼고 있었던 남편 역시 이 합창단에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훨씬 빠르고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긍정적인 경험은 낮에 이루어지는 남편의 공식적인 사회생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단절된 역사도 이겨낸 한 목소리

합창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베를린 합창단의 변천사에는 독일 역사의 굴곡이 잘 드러나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와 함께 시작된 독일의 분단은 대학이나 방송국과 같은 기관의 역사에서와 마찬가지로 합창단의 역사에서도 동서의 분단을 가져왔다. 분단 이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오던 동과 서의 합창단들은 1989년 장벽의 붕괴와 함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통일과 동시에 동베를린 합창단연합과 서베를린 합창단연합이 서로 다른 관점과 체계들을 조화시키는 일에 성공하여 하나의 통일된 베를린 합창단 협회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오늘날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는 238개의 아마추어 합창단이 있으며,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원의 수는 1만 명을 넘는다. 이러한 시민들의 활동은 동독출신 시민과 서독출신 시민들이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하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갈등을 해소하는 데 일조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해마다 12월이면 수많은 베를린의 합창단들은 연말행사와 성탄절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이들이 정성껏 준비한 공연에는 자신들이 초대한 가족과 친구들뿐 아니라 우연히 그곳을 지나는 관광객이나 동네 주민들이 관객으로 찾아온다. 이러한 문화를 가진 베를린 시민들에게 합창이 특별한 사람들만, 특별한 날에,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히 비싼 가격에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강현선 희망제작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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