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2월 2006-12-01   843

개혁, 성장 다 했는데 일자리는 어디 갔나

중남미의 신자유주의 개혁과 빈곤의 함수관계


2000년 9월 유엔에서 열린 밀레니엄 정상회담에서 각국은 ‘새천년 발전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에 합의하였는데, 이는 극빈과 기아 퇴치, 초등교육의 보편화, 양성평등 증진 등 인간의 기본권에 관한 8개항을 2015년까지 달성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5년 유엔중남미경제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MDG의 8개 항목 중에서 중남미는 기아와 영양결핍, 유아사망률, 식수보급, 여성교육 등의 분야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했으나 극빈 퇴치, 산모 사망, 초등교육, 공중위생, 지속가능한 환경보호 등의 분야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칠레를 비롯하여 브라질, 코스타리카, 멕시코, 파나마, 우루과이 등은 MDG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나 다른 국가들은 목표달성이 여의치 않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1980년대 외채 위기 이후 중남미에 뿌리내린 신자유주의 개혁의 공과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학자에 따라 ‘자유주의와 중남미의 빈곤 및 사회문제는 명백한 관련이 있다’는 견해에서부터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는 신중한 입장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스펙트럼의 주장이 존재한다. 나라에 따라서도 성공과 실패의 상반된 경험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를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잣대로만 평가하기는 매우 어렵다. 칠레와 같이 상대적으로 긍정적 성과를 보여주는 국가가 있는 반면, 아르헨티나, 페루 등은 경제안정과 위기의 악순환을 반복하기도 하였다. 한편 멕시코나 브라질은 칠레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하지만 그런 대로 경제안정을 지속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 불구 44%가 빈곤층

1980년에서 200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중남미의 전체 GDP는 52%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업, 빈곤, 양극화 현상이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농촌이 피폐해지자 도시로 밀려온 사람들은 도시빈민으로 전락하여 각종 어려움에 직면해 있지만 지금까지의 주류적 시각은 이를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단정하고 한번은 지나가야 할 “눈물의 계곡”이라고 묘사해왔다. 그러나 경제개혁의 긍정적인 성과가 있다고 할지라도 이 계곡을 지나면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은 시장경제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다.

중남미의 빈곤 계층은 2000년 잠시 감소한 것을 제외하고는 1997년 이후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 증가세는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보다 절대 수에 있어서 더 두드러지는데 1980년 1억 3,000만 명, 1990년 2억 명이었던 빈곤층이 2003년 2억 2,000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영위하기 힘든 상태인 극빈층도 6,200만 명, 9,300만 명에서 1억 명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오늘날 이와 같은 빈곤층은 전체 중남미 인구의 44%에 달한다.

나라마다 다른 빈곤층 변화 추이

그런데 이와 같은 빈곤층 변화 추이는 모든 국가에 공통적으로 일어난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나라 별로 좀 더 자세히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1980년과 1999년을 비교하면 브라질, 칠레, 파나마가 10%이상 빈곤을 감소시킨 국가들이고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우루과이가 5~10% 빈곤을 줄인 국가들이다. 반면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은 빈곤이 증가했거나 정체상태에 있는 국가들이다. 아르헨티나는 경제위기의 여파로 1999년부터 2002년 사이에 빈곤층은 약 2배, 극빈계층은 약 4배 증가했다. 반면 멕시코의 경우 2001~2002년 2.6%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지만 2000년도와 비교하여 빈곤은 1.7%, 극빈은 2.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최근의 빈곤층 증가는 지역 전반에 신자유주의가 공고하게 자리 잡은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 중남미가 경험했던 빈곤, 극빈층 증가의 구조적 영향보다는 아르헨티나와 같은 특정국가의 경제위기라는 상황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약간이나마 빈곤이 줄어드는 추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농촌에서 도시로, 부모에서 자녀로

그렇다고 해서 신자유주의가 빈곤퇴치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아니다. 중남미형 빈곤의 특징과 질적인 측면을 정리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중남미의 빈곤은 심화되고 있는 실업과 무관하지 않고, 실업의 증가는 노동효율성의 문제와 상관없이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의 산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 1990년대 이후 중남미의 실질임금은 대부분 1980년대 초 경제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었으나 실업문제는 쉽게 해결되고 있지 못하다. 2001년의 경우 실업률은 8.4%에 달한다. 물론 비공식부문과 불완전고용이 제외된 통계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개혁도 잘 되었고, 성장도 이룩했는데 일자리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이를 풍자한 바 있다.

둘째, 중남미에서의 빈곤은 전통적으로 도시가 아닌 농촌의 현상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결과 빈곤이 도시에까지 확산되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통계에 따르면 지역내 2억 1,000만 명의 빈민중 1억 3,000만 명이 도시에 거주하며 농촌 거주자는 8,000만 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난한 계층인 극빈층은 도시보다는 농촌에 더 많은 비율로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정적인 이유는 도시로의 이주가 많이 일어났고 여전히 그들은 가난하게 살며, 노동력의 대부분을 도시에 빼앗긴 농촌에서는 남겨진 가족이 전보다 더 어려운 극빈층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사회부문에 대한 국가지출의 축소는 특정국가나 특정계층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볼리비아, 에콰도르, 파라과이, 브라질 등의 빈곤이 심화됨을 알 수 있고 일부 국가에서는 공직자들도 빈곤계층으로 전락한 경우도 있다.

넷째, 가난한 계층은 더 많은 아이를 낳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중남미의 전체 아동이나 청소년 중 반 이상이 빈곤한 상태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학생의 76%는 빈곤 상태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6~12세 아동의 경우 미취학률이 7.9%에 불과하여 초등교육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15세 미만 아동의 경우 부모의 교육연한이 6년 미만인 경우 56%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와 같이 교육의 불평등은 중남미에서 빈곤이 세습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다섯째, 중남미의 4,000만 인디오들은 사회계층구조의 가장 밑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 차원의 정책적 배려나 민간의 관심도 부재한 실정이다.

빈곤퇴치 핵심정책은 사회지출 증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빈곤은 경제성장이나 노동시장의 변화 등의 요인에 의해 감소시킬 수 있고 그 현황은 국가와 지역에 따라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중남미의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빈곤 퇴치정책의 핵심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사회지출을 증가시키는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온두라스와 베네수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은 경제가 살아나고 정책적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자 1990년대를 통해 사회부문의 지출을 대폭 늘렸다. 역내 17개 국가를 대상으로 한 통계에 따르면 1990~91년과 1998~99년의 지출은 평균 50%를 기록하였다. 이를 국민 일인당 액수로 환산하면 360달러에서 540달러로 증가한 셈이다.

빈곤퇴치에 있어 무엇보다 칠레의 경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칠레의 빈곤층 비율은 1990년 38.6%에서 2003년 18%로, 극빈층은 같은 기간 12.9%에서 4.7%로 감소하였다. 빈곤계층의 숫자로만 보면 1987년에 550만 명에서 1992년 430만 명, 1996년에는 330만 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칠레는 중남미에서 1990년 이후 극빈층을 절반 이하로 감소시킨 유일한 국가이다. 그 원인은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화이후 칠레연대라는 통합 사회정책을 가동시킨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곽재성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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