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2월 2006-12-01   523

세상의 아픔과 갈등을 함께 껴안고 흐르는 긴 내

– 권영환 회원


가을의 잔영은 비감하리만큼 아름답기에 우리 곁에 잠시 머무르는 것일까.

긴냇 권영환(57세) 회원을 만나려 가평(경기도 가평읍 개곡2리)으로 가던 날은 소멸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한 날이었다. 가을 금관에 비유되는 은행잎은 햇살 속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고, 어쩌다 바람이라도 불어대면 황금가루를 천지사방으로 날리며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하지만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는 수확의 기쁨보다는 개방을 서두르는 외세의 바람이 도도히 휘몰아치고 있는 듯했다.

가평 마장초등학교(분교장)터에 둥지를 튼 ‘아름다움 만들기’ 장애우예술공동체 마을의 권영환 회원. 시인, 서예가, 통일운동가, 도시빈민운동가, 장애우권익운동가……. 그의 이름 앞에 수식되는 수많은 호칭보다는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기를 좋아하는 분. 그야말로 시골 학교의 선생님처럼 순박하고 소박하게 우리를 맞았다.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가장 아픈곳, 농촌

아침 일찍 모란공원에서 전태열 열사 추모집회가 있어 다녀왔다면서 상기된 표정으로 차를 권한다. 다상, 다기, 다관 모두가 예사롭지 않다. 차 또한 향긋하면서도 달차근한 맛이 입안에 가득 괸다. 산사의 바람 한 줌도 따라온 듯하다. 자연 환경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말문을 열자, 지그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듯 하다 무겁게 입을 연다.

“대한민국 현실의 가장 아픈 곳을 오신 것입니다. 산천은 아름다운데 그 기반을 못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 정책의 실패 원인이지요. 미국의 메이저 식량회사, 사료회사에 우리 정부는 대안도 없이 끌려 다니고 있는 실정이지요. 농민들은 한미 FTA가 뭔지도 몰라요. 농민들이 빠지고 한 협상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오늘의 농촌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 곳일 뿐입니다.”

비장한 각오가 필요할 인터뷰 일 것 같아 긴장했다. 더구나 오른팔이 없고 왼손마저 부자유스런 그를 보면 신산하게 살아왔을 삶이 짐작되어 더욱 숙연했다.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여 광주, 성남, 안산, 상계동, 목동, 동두천……. 도시 빈민이 사는 곳이면 어디라도 몸을 아끼지 않고 전력질주를 하며 70-80년대를 살아온 청년이 초로에 가평으로 들어온 것이 못내 궁금했다.

세상은 절대 혼자서 사는게 아니다

“미국의 원조 문화가 장애인을 빌어먹게 만들었지요. 장애인에게 자활할 수 있는 교육을 시켜서 함께 세상을 살아가게 만들어야지 수용의 의미로만 보아왔기에, 이들이 세상에 나와서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어요. 질 나쁜 휴지나 들고 다니면서 팔고, 그들이 전시회를 하려고 해도 전시관을 대여해 주지를 않아요. 재수 없고 썰렁하다고. 우리 장애인들의 꿈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팔당 생활협동조합, 신부님, 가평 전교조, 도시빈민운동가, 성인자폐시설을 운영하시는 분, 주변에서 참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세상은 절대 혼자서 사는 게 아닙니다.”

2001년 막상 짐을 꾸려 들어오니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고 했다. 한 3-4년을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뒹굴고 때론 술자리도 마다않고 나서며, 허물없이 지내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빨리 화합을 못한 이유는 내가 책과 작품을 너무 많이 가지고 들어온 것이더군요. 그냥 아무 것도 없이 들어왔더라면 순박한 농촌사람들이 불쌍한 사람 하나 들어왔다고 이래저래 거두어주고 살펴주었을 텐데. 처음부터 그들은 벽을 쌓더군요. 이제는 한 식구가 되어 ‘우리들의 꿈 바램전’도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지요. 농촌, 참 부가가치가 많은 곳이죠.”

이어 서울 중심, 권력 중심의 문화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을 했다.

“70-80년대는 모든 단체들이 민주화운동에 매몰되었다가 그 길을 다시 찾지 못했어요.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모두가 서울에서 머물면서 권력이나 조직 주변에서만 알짱거렸죠. 정치하고 국회의원 되고 공기업에 낙하산 타고 들어가고……. 현장에서 함께 투쟁했던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쫓겨나고 감옥 가고 라면도 못 먹을 처지가 되었는데 그들은 금의환향하더군요. 이거, 참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거죠. 왜 그들은 현장으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을 이끌어가는 방법이 잘못 된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착취당하고 착취해 먹는 방법으로 세상이 돌아가니 그 매듭을 풀 수가 없다며, 삶의 중심이 서울이 아니고 자신이 몸담아 살고 있는 지역이 중심이 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들의 꿈바램전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돌아가신 장일순 선생님입니다. 서울에서 같이 일을 하자고 아무리 권해도 지역인 원주를 떠나지 않은 분이잖아요. 천지만물을 한 생명으로 보는 한살림의 세계관을 전국으로 태동시켰잖아요. 이렇게 지역을 지켜주며 그들을 보듬고 함께 가야하는 게 사람답게 사는 길이죠. 지역 유지, 기관장이라는 사람들은 선거철에만 입 나불대며 지역 다 망쳐놓지요.”

‘우리들의 꿈바램전’을 열던 첫 해에도 군청에서 나온 비서관들이 군림(?)하려다가 꼬리를 내리더라고 익살스럽게 표현을 했다. 문화·예술이라는 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가교 역할을 한다며 함께 꿈꿀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아름다움 만들기」라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이 시대의 화두인 농촌과 장애인 문제를 온 몸으로 껴안고 흐르는 긴냇(‘긴 내’가 힘차게 흐른다는 뜻)이라는 호를 가진 권영환 회원. 그와 함께 친환경농업을 시작한 농가는 덕분에 내년부터는 슬로건도 달리 하겠다고 한다. ‘메뚜기 잡으러 오셔요’ ‘미꾸라지 잡아 가셔요’라고. 물론 천연염색과 두부만들기 체험학습은 두말 할 필요도 없고.

바깥으로 나오니 어둠이 어디선가 매복되어있다 순간 나타난 듯하다. 마당 한 모퉁이에는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며 어둠을 쫓아내고 있었다. 구수한 군고구마 냄새와 함께 전시실에 서각 되어 있는 그의 작품이 불빛에 어른거렸다.

안 얼어 죽고/ 살라믄/ 불씨를 나눠/ 가슴 속에/ 묻어야제

이경휴 참여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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