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1월 2007-01-01   1251

인간과 자연의 어울림이 곧 지속 가능한 삶

(사)한살림 박재일 회장

사람들은 제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 들이댄다.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의 반응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내 잣대는 엉뚱하다. 하지만 때로 내 잣대가 자랑스러울 때도 있다. 사단법인 한살림 박재일 회장은 내 잣대의 자부심을 세워준 사람이다.

자연의 웃음을 지닌 사람

2006년 5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12주기 추모제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워낙 이름이 귀에 익었던 터라 나도 모르게 느티나무 아래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라도 나누어 본 사이인 양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도 환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그도 나와 같은 착각을 한 것일까? 천만의 말씀. 나는 그의 웃음을 마음에 새기며 내가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안다는 희열을 느꼈다.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밝은 미소로 화답할 줄 아는 사람, 땅과 사람이 평화로이 공생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사람.

하지만, 그는 편한 사람은 아니다. 아무리 낫낫하다 해도 물씬한 지사적 풍모를 지울 수 없다. 풍모만은 아니다. 그가 한살림을 통해 펼치고 있는 생명운동은 올곧게 뜻을 갖지 않으면, 그리고 한뉘를 바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운동의 새 화두, ‘생명’을 만들어내다

그의 한살림 인생은 1986년 서울 제기동의 허름한 쌀가게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서울대 문리대 출신으로 6·3학생운동의 주역이었고, 시국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출소 후에는 농민운동에 투신, 가톨릭농민회 회장을 맡았고 지학순 주교, 장일순 선생 등과 함께 원주에서 지역사회개발운동을 주도했다. 스스로 ‘장사하는 것에는 소양도, 능력도 없다’고 말하는 그가 난데없이 쌀가게 대표를 맡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고추 농사짓는 사람이 자기 가족이 먹을 고추에만 농약을 안 치고 주요 수입원인 고추농사에는 농약을 치고 그래요. 그러다가 쓰러지지요.”

그의 기억에 따르면 70년대 중반에 이미 농약중독은 농민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상황이었다. 80년대 중반에는 농약중독에 걸린 농민들이 8할을 넘을 정도였고 85년에는 1,560명의 농민이 귀한 목숨을 잃었다. 한살림은 농약중독으로 죽다 살아난 최 씨 형제가 생산한 무농약 쌀과‘흙을 파헤치고 활개를 치며’자란 닭이 낳은 유정란을 가지고 세상에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런 한살림이 이제 어엿한 스무 살 청년이 되어 세상을 껴안는 꿈을 꾸고 있다. 현재 한살림에는 13만 명의 조합원이 가입해 있으며 또한 19개 지역 한살림본부와 햇살모임(지역모임), 100여 개의 이웃공동체가 조직되어 지역생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생산자들도 60여 개의 생산자모임을 결성하여 생태적 지역농업운동을 확산하는 데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밥상 살림에서 시작한 한살림 운동이 바야흐로 농업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생명운동으로 크고 넓게 펼쳐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농업은 공생, 유기농은 물질 순환의 원리

하지만 아직도 한살림 운동을 한낱 유기농 식품을 사먹는 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은 수입 유기농 식품을 사먹으면서 환경생태운동에 동참하는 줄 알고 으쓱댄다. 그는 유기농은 안전성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 순환을 의미한다고 했다.

“콩 농사, 옥수수 농사를 예로 들어볼게요. 콩은 수확하고 난 다음에도 깍지, 대궁을 버리지 않고 말려서 겨우내 소를 먹입니다. 소똥 거름은 밭에 있는 생물과 미생물의 먹이가 되어 양분을 만들고 농산물을 자라게 하죠. 옥수수도 마찬가지에요. 옥수수가 소먹이가 되고 소똥과 오줌이 되고 거름이 되고, 다른 먹이가 되고 이런 게 물질순환이에요.”

이렇게 되면 지금 우리가 우려하는 생태계 파괴, 환경오염, 식품오염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외부에서 가져오면서 자원 소모를 하는 것은 유기농이 아니라며 물질순환의 철학이 없는 농업, 농업을 생명의 기초라고 생각지 못하는 ‘유기농 산업’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농업은 공생의 원리에 기초한 것이며, 유기순환 농업방식만이 농민을 살리고 땅을 살릴 수 있다고 힘주어 얘기하는 그를 마주하고 있다 보니, 문득 한미 FTA 생각이 났다. 귀가 따갑도록 들려오는 농업의 경쟁력 상실과 농업 개방의 불가피성 주장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는 전혀 엉뚱한 관점을 갖고 있어요. 해가 갈수록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슬픈 상황은 가격 경쟁력, 이런 차원에서 해결될 거 같지 않아요. 한살림을 시작할 때만 해도 환경문제에 대한 오해가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환경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되어 버렸잖아요.”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된 석유 고갈 문제가 그에게는 결코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화석연료인 석유가 앞으로 40년 정도면 고갈된다고 해요. 제 손자놈들이 50세도 되기 전에 그런 상황이 온다는 거죠. 이건 아무리 부정해도 오는 상황입니다. 삶의 방식을 바꾸는 수밖에 없어요. 지금 화학 비료 치고 농약 사용하는데 그 때 가면 못해요. 기계 농사도 마찬가지죠.”

그의 심각한 표정과 신중한 대답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도리어 묻는 듯 했다.

협동과 믿음으로 일궈낸 농촌의 변화

한살림의 역사는 1986년부터 기록될지 모르지만, 한살림 운동의 뿌리는 70년대 원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제가 69년에 원주에 가서 살게 되었어요. 그런데 남한강 유역에 72년 8월 19일(그는 기억력이 비상하다.)에 큰 홍수가 발생했어요. 이재민이 14만 5천 세대 정도였고 대부분 가톨릭 원주 교구 관할 지역이었지요. 독일의 가톨릭단체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291만 마르크를 지원받았지요. 그 돈으로 재난을 당한 농민들과 광산촌 근로자들을 지원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긴급한 재난복구에 주력하고 그 후에는 사회개발위원회를 만들어 농민, 근로자들과 살아갈 길을 의논하고 모색했죠.”

66년 출소 후 뜻한 바 있어 고향인 경북 영덕으로 내려가 농사를 시작했으나 얼마 못 가 실패하고 만 그의 경험은 쓴 약이 되어 이 때 도움이 되었다. 그는 사회개발위원회 일을 시작했던 73년 1월과 그만두었던 85년 1월의 마을 모습에서 변화를 확인했다고 한다. 그 힘은 바로 협동이었다.

“한 마을에 열 집이 소를 키우면 잘 되는 집도 있고 안 되는 집도 있겠지요. 그러면 같이 모여서 원인을 찾아봐요. 소를 잘 키우는 사람의 기술이나 경험을 공유하면서 몰랐던 걸 알게 되지요. 소가 잘 되는 집에서는 소를 대하는 것부터 달라요. 그렇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고, 생각을 모으기 위해서 교육도 하고 토론도 하게 되면 많이들 소가 잘 돼요. 그게 협동이에요. 또 새로 소를 키우겠다는 사람들은 있는데 소를 살 능력이 없을 수도 있지요. 그러면 소를 살 수 있는 자금도 지원하고, 지원받은 사람들이 모여 한우 작목반 이라는 협동체를 운영하게 되죠.”

수해복구 사업에서 시작하여 신용협동조합까지 결성되는 지역사회개발의 운동 과정을 지켜보며 그가 체득한 변화에 대한 믿음이 한살림 운동으로 옮겨졌음은 당연하다. 공생과 공동체는 한살림 운동의 밑바탕을 이룬다.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지 않고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연대도 그런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제안하고 실천하기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새해에는 ‘삶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자’는 그의 말에, 한살림의 외침에 귀기울여보자. 더 늦기 전에 말이다.

그는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알알이 보석 같았던 사람들의 발걸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특히 그는 도시 소비자에서 지역의 살림꾼으로 거듭나고 있는 주부들이야말로 한살림이 생명평화세상을 꿈꿀 수 있게 했던 큰 힘이었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한살림 운동 20년 동안 가장 깊게 마음에 새겨진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도 그는 같은 대답을 했다. 누군들 사회의 밥상을 챙기겠다며 학교급식운동을 벌이고 통일농업을 위해 기금을 모으고 북한 어린이들에게 우리 쌀을 보내며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돕기 위한 활동까지 펼치는 아줌마들의 열성에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의 엄격한 삶 앞에 괜스레 주눅 들어 있던 나는 그 순간부터 그가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다음에는 진짜로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와 정담을 나눌지도 모르겠다.

※ 2007년 1월호부터 ‘박영선이 만난 사람’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해 인터뷰를 진행해주신 김정인 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생명’이란 화두를 던지며 자연 생태를 되살리고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되찾고자 노력해 온 한살림운동 20년의 역사를 기록한 <스무살 한살림, 세상을 껴안다>를 펴냈습니다.

먹을거리라는 비근한 일상에서부터 출발하여 생명이 숨쉬는 농업이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생명의 문명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이를 건강하게 기르고 싶은 엄마들로부터 무위당 장일순, 김지하, 박재일 등이 참여한 한살림 스무 해의 역사를 담았습니다. 〈모심과 살림 연구소│그물코〉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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