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3월 2007-03-01   1141

세계는 지금 영국의 나눔 축제 ‘빨간 코의 날’: 즐기면서 나눈다

영국의 나눔 축제 ‘빨간 코의 날(레드 노즈 데이)’

어린이들이 등굣길인지 하굣길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물어보는 수수께끼 아닌 수수께끼가 있다. 어린 학생들이 뛰어가면 집으로 가는 길, 천천히 걸어가면 학교 가는 길이라는 게 정답이다. 그만큼 공부보다 노는 것이 즐겁다는 의미이겠지만, 학생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뛰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즐겁게 학교 가는 날

그런 날이 온다. 오는 3월 16일 금요일에는 영국의 초등학생들이 학교로 뛰어갈 것이다. 옷차림도 자유롭게 하고 갈 것이다. 영국의 초등학교는 교복을 입는다. 교복은 천연색을 최대한 배제하고 신발도 검은 계통의 색깔을, 그것도 반짝이는 검은 색은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초등학생들이 복장도 마음대로 울긋불긋하게 차려 입고, 신발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신고, 심지어 얼굴에 페인팅까지 하고 학교에 갈 수 있다. 또 한 가지, 이날 어린이들은 코를 피에로처럼 빨갛게 분장할 것이다. 이 같은 파격이 허용되는 것은 이날이 바로 빨간 코의 날(Red Nose Day)이기 때문이다. 공부만 하고, 천연색이 없는,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난다니 학교 가는 일이 얼마나 즐거울까.

빨간 코의 날은 도대체 무슨 날일까?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985년 에티오피아는 심각한 기근으로 고통 받았다. 엄청나게 많은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를 보고 영국의 코미디 작가 리처드 커티스가 중심이 되어 코믹 릴리프라는 자선단체를 만들었다. 코믹 릴리프는 여러 가지 이벤트를 열어 모은 기금의 60%를 아프리카, 40%를 영국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1도 수단에 있는 난민 캠프에서 크리스마스에 난민지원을 위한 방송을 하였다. 사실 지금 아프리카가 당하고 있는 고통에 유럽 국가들은 상당한 책임이 있다. 내전과 기근이 제국주의 침탈에 의한 민족간 갈등과 토지의 무차별한 개발 및 사용에서 비롯된 바가 크기 때문이다.

축제와 나눔의 절묘한 만남

빨간 코의 날은 코믹 릴리프의 모금 행사와 관련 있다. 빨간 코의 날 몇 주 전부터 상점들에서는 코에 붙이는 장식품을 판매하는데 그 수익금이 코믹 릴리프로 전해진다. 학생들이 빨간 코를 한 개에 1,800원에 샀다면 이 금액의 거의 대부분이 기부되는 것이다. 또 이날 교복 대신 천연색의 화려한 복장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은 치장한 만큼 돈을 낸다. 신발, 옷, 가발, 페이스 페인팅 등 모든 항목에 돈을 낸다. 이 돈도 전액 코믹 릴리프로 기부된다. 학생들이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지불하는 돈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되는 것이다.

빨간 코의 날은 축제를 통해 기부하는 날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아름답게 꾸미면서 남을 돕는다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가. 그러니 어린 학생들이 이 날 만큼은 학교로 뛰어가지 않고 배길 수 없을 것이다.

나눔에 앞장서는 공영방송과 기업

코믹 릴리프는 격년으로 봄에 빨간 코의 날 행사를 벌인다. 이 날이 되면 영국 전역은 축제의 날이 된다. 이 행사를 가장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곳은 BBC와 전국에 슈퍼마켓 체인망을 가지고 있는 세인즈베리이다. 세인즈베리는 영국 국립미술관의 건물 한 동을 지어서 기증한 회사로도 유명하다. BBC는 기금모금 행사와 코미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시청자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빨간 코의 날 오후가 되면 어린이 채널인 CBBC를 필두로 BBC의 모든 채널들은 갖가지 행사와 모금 관련 보도를 정규 방송 사이사이에 내보낸다. 오후 6시가 되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특별방송을 시작한다. 생방송으로 모금행사를 진행할 뿐만 아니라, 최근에 방영되었던 인기 쇼 프로와 영화 패러디 등을 방영하기도 한다. 특별방송은 BBC에서 무료 제공하는 스튜디오와 제작설비 등을 이용한다. 공영방송으로서 BBC의 위상이 다시 한번 확고해지는 것이다.

세인즈베리는 코믹 릴리프의 기부금 마련을 위한 상품 판매를 맡는다. 매우 다양한 상품이 개발되어 판매된다. 티셔츠, 컴퓨터 게임, DVD 등을 세인즈베리는 자기 이윤을 남기지 않고 판매하는 것이다. 물론 대표 상품은 빨간 코다. 빨간 코의 디자인도 매번 바뀐다. 89년에는 향기 나는 고무로 만든 코에 미소 짓는 얼굴을 넣었고, 91년에는 코에 팔을 붙였고, 93년에는 토마토를, 95년에는 색깔이 변하는 코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2005년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머리카락을 단 빨간 코를 제작해 빨간 코 자체가 하나의 얼굴모습이 되게 하였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 이렇게 즐겁고 간단하다니

올해에는 ‘큰 코’라는 이름을 붙인, 스스로 커지는 코가 선보일 예정이다. 큰 코와 함께 올해 빨간 코의 날을 수놓을 재미있는 행사들이 준비되고 있다. 어린이들의 뽐내는 치장 외에 초·중등학생들이 어른 옷을 입고 학교 가는 행사가 마련된다. 또 ‘빨갛게 꾸미자’는 행사가 있다. 빨간 코를 달고, 얼굴을 빨갛게 칠하고, 머리에는 빨간 리본을 달고, 빨간 모자를 쓰고 학교에 간다. 치장을 한만큼 기부금을 내는 것은 물론이다. 재미있는 복장으로 학교마다 패션쇼를 열 수도 있고 춤 시합을 가질 수도 있다. 학생들만이 아니라 교사들도 참여하는 행사이다. 즐기면서 기부를 실천하는 진정한 축제의 장이다. 또 학교에서는 빨간 화랑을 만들 수도 있다. 빨갛게 만든 어린이들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기금을 모을 수 있다.

그 뿐인가. 세상을 통째로 빨갛게 바꾸는 일도 가능하다. 빨간 선글라스 하나면 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이렇게 즐겁고 간단한 것을 어린이들은 이날 배운다.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빨간 코의 날 행사에 참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빨간 코를 사면된다. 영국의 대부분의 학교가 이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또 옷으로 자기를 꾸밈으로써 참가할 수 있다. 빨간 코의 날 공식 홈페이지(www.rednoseday.com)에 들어가면 수백 가지의 모금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세계로 번져가는 코믹 릴리프

이쯤 되면 전국적으로 벌이는 행사를 통해 과연 얼마만큼의 기부금이 모일까 궁금할 것이다. 2001년에는 1,098억여 원, 2003년에는 1,107억여 원, 2005년에는 1,134억여 원 정도가 모금되었다. 어마어마한 돈이 모금된 것이다.

영국에서 시작한 이러한 축제성 모금행사가 이제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열리고 있다. 영국의 코믹 릴리프에서 영감을 받아 미국에서도 86년에 코믹 릴리프라는 자선단체가 결성되었다. 88년에 오스트레일리아 코믹 릴리프가 결성되었고, 독일에서도 2003년부터 텔레비전 방송에서 이와 비슷한 행사를 시작하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렇게 모금된 기부금은 40%를 영국에, 60%를 아프리카에 사용한다. 영국에서 사용된 예를 하나 살펴보자. 세계 각국에서 어린 학생들에 대한 집단 따돌림이 문제가 된다. 집단 따돌림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위한 전화상담 사업에도 기부금이 지원되었다. 이처럼 빈곤층이나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기부금이 이용된다. 그동안 코믹 릴리프는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7,000여 건의 사업을 지원하였다.

아름다운 실천이 주는 희망

빨간 코의 날 모금된 기부금으로 코믹 릴리프는 아프리카에서도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다. 예를 들면, 말라리아와 여러 가지 질병 퇴치를 위해 간호사 훈련사업을 지원했고, 질병을 옮기는 모기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기장을 보급하기도 한다. 코믹 릴리프는 아프리카 지원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기도 한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가나 어린이 엘비스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부모님들께서는 코코아 농장에서 일했지만 우리 가족이 먹고 살만큼 수입이 충분하지 않았어요. 저는 종종 학교에서 배가 너무 고파 공부를 할 수 없어서 중간에 집에 와서 학교에 가지 않은 적도 많아요. 이제는 여러분 덕분에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부모님이 일하는 농장이 쿠아파 코쿠 협동회사 소속이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부모님은 코코아 가격을 제대로 받으세요. 그리고 공정한 거래로 더블과 같은 맛있는 초콜릿도 만드는 거예요. 우리 아빠와 같은 농부들이 이젠 협동회사의 주인이에요. 농부들이 이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하여 의견도 내시죠. ”

말라위의 제임스 이야기도 들어보자.

“집안이 어려워 도망을 나왔어요. 길거리 생활은 너무 힘들었어요. 비닐봉지를 팔았는데 수입이 괜찮았어요. 그런데 길거리 형들이 저를 때리고는 모두 빼앗아 갔어요. 버스 정거장 근처 벤치 밑에서 자고 있는데 어떤 친절한 분이 저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어요. 이 분은 여러분의 재정지원으로 프로젝트를 하시는 분이었지요. 이 프로젝트 덕분에 저는 우리 가족이 키울 수 있는 과일과 채소 씨앗, 농기구를 사서 농사를 지어요. 일부는 우리 가족이 먹고 나머지는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죠. 이제 제가 엄마에게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동생들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는 게 너무 기뻐요. 또 여러분들은 교복과 책도 사 주어 제가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 주었어요. 공부 열심히 하고 어른이 되면 좋은 직장을 구해 우리 가족이 다시는 가난하지 않도록 할 거예요.”

즐겁게 나눈 돈이 모여서 진짜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러한 축제적인 기부행사가 우리 사회에서도 실현될 날을 함께 꿈꾼다.

진영종 성공회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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