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4월 2007-03-29   885

교식주(敎食住)가 하늘이다

얼마 전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경제는 작년에 5% 성장했지만 실질소득은 2.3% 증가에 그쳤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언론이 대서특필했고 일부 언론은 “바로 이것이 지표경기와 체감경기가 차이 나는 이유였다”고 자랑스럽게(?) 확인하기까지 했다.

필자는 여기에 대해 일단 회의적이다. 그 이유를 말하기에 앞서 경제성장률과 실질소득 증가율의 차이가 왜 발생하는지 간단히 짚고 넘어 가기로 하자.

민생안정은 경제성장에 딸려오지 않는다

경제성장률은 국내총생산이라는 총량지표의 증가율을 말한다. 여기서 국내총생산이란 우리 경제가 작년 1년 동안 생산한 재화와 용역의 총량이다. 실질소득이란 이것을 실질 구매력으로 환산한 개념이다. 다시 말해 작년에 생산한 물건을 가지고 다른 물건을 사려고 할 때 얼마나 ‘신나게’ 살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 두 지표는 물건 값의 상대적인 비율이 그대로 있는 한 같이 움직인다. 만든 것이 많으면 그것을 가지고 다른 것을 살 능력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건 값들이 변화하면 양자 사이에는 괴리가 발생하게 된다. 실질 소득은 내가 파는 물건 값이 내리거나, 내가 사려고 하는 물건 값이 오르면 떨어지게 된다. 국민경제 전체로 보면 수출가격이 오르면 실질 소득은 더욱 증가하고, 수입가격이 오르면 실질소득은 감소한다(따라서 우리나라 원화가치가 절상되면 실질소득은 생산량에 비해 더 상승하게 된다. 어떤 언론들은 작년에 실질소득 증가세가 낮은 이유로 원화절상을 들고 있는데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보도다).

이 사례는 민생을 이야기하면서 총량 지표를 들먹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단순화인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총량지표의 성장과 민생이 완전히 무관할 수는 없어도 그 상관관계가 1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민생은 그것 자체로 별도의 정책적 관심을 받아야 하는 예민한 정책과제이지 경제가 성장하면 저절로 딸려오는 사은품이 아니다(“성장을 우선해서 먼저 파이부터 키워야 분배도 있는 것 아니냐”는 통념은 이런 의미에서 아주 잘못된 것이다. 파이가 커지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먹잘 것이 없을 수도 있고, 먹잘 것이 있어도 그것이 실제로 우리 입에 들어오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FTA를 뛰어넘는 영원한 관심사 ‘교육’

그렇다면 민생이란 무엇이고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어떤 점이 문제인가. 보통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기초적 여건을 의식주로 요약한다. 그러나 필자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필수적인 문제는 의식주라기보다는 교식주(敎食住)라고 본다. 입는 것 보다는 자녀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생이란 ‘교식주를 안정시키고 그 소비가능영역을 균등하게 확대하는 것’이라고 요약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교식주는 무슨 문제가 있는가. 문제 아닌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런 질문은 오히려 공허하게까지 들린다. 공허함을 애써 달래며 하나씩 생각해 보자.

먼저 교육이다. 최근 정가의 핫이슈는 FTA도 아니고 부동산도 아니다. ‘3불정책’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 국민의 화두였던 부동산도 일단은 지나갔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농성을 해도 FTA는 이미 그 위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그러나 3불 정책을 두고 대학과 교육부가 대치국면을 연출하고 정치권이 속앓이를 하면서 교육은 당당(?)하게 민생문제의 최전방에 배치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가장 일반적인 교육 문제는 “교육 받는 데 너무 많은 돈이 들어서 돈 많은 사람들만 좋은 교육을 받는다”는 점일 것이다. 교육이 이렇게 망가진 진정한 이유는 사회가 좋은 교육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공부를 더 하면 사실상 처벌하는 교육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형평성 때문이다. 그러나 형평성을 달성하는 다른, 그리고 더 좋은 방법은 좋은 교육을 많이 공급하는 것이다.

임대주택이 아니라 내 집을 마련할 수 있게

다음은 주택 문제다. 연말연초의 부동산 광풍에서 보듯이 부동산은 온 국민의 화두다. 그러나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은 아직도 기본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국가는 무릇 국민에게 적당한 수준의 주거환경을 제공해야 할 사실상의 의무를 지고 있다. 문제는 무엇이 ‘적당한 수준의 주거환경’인가 하는 점이다. 임대주택 공급강화 정책에서 보듯이 국가는 ‘그야말로 비바람을 피할 수만 있다면 임대주택이 어디냐’는 시각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현재 원하는 것은 떠돌이 전월세살이가 아니라 ‘자기 집’을 갖는 것이다. 이 염원을 무시하는 것은 실업이 문제가 되니까 비정규직 일자리를 남발하는 정책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왜 누구는 자기 집을 두 채 세 채씩 갖고 누구는 영원히 임대주택에 살아야 한단 말인가. 정부는 왜 미국의 주택정책이 무주택자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집 없는 사람들이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하고 있는지 하루 빨리 천착해야 한다.

식품안전장치 강화 서둘러야

마지막으로 먹거리 문제다. 농산물 시장 개방에 의해 우리나라 먹거리 환경이 위협 받은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먹거리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급식으로 제공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리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정부도, 학부모도, 학교 당국도 이것을 원했던 적이 없고, 특히 학부모들은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낼 용의도 있건만, 우리 아이들은 툭하면 집단 식중독에 걸려 고생하고 심하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이것이 어찌 OECD에 가입한 선진국의 모습이란 말인가. 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잘못된 먹거리를 공급한 사람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법원 역시 먹거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을 준엄하게 징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민생은 하늘이다. 그것을 소홀히 하면 단기적으로 정권이 무너지고 장기적으로 나라가 결딴난다. 정부가 파이 장사에만 몰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는 제대로 된 사회가 어떤 것인지를 맛보고 싶다.

전성인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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