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4월 2007-03-29   1043

밖으로 나오라, 4.19여 아름다운 해방 꿈꾸며

민주주의가 정착되면 개인이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한낱 믿음에 불과했다는 것이 밝혀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폭력 앞에 무릎 꿇지 않기 위한 책략이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 그 소임을 다한 것이다. 폭력에 맞서 저항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과학, 국가, 시장에 대한 맹신으로 전복되었다. 개인들은 더는 이상으로 현실을 비판하던 순진성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거꾸로 현실로써 이상을 조롱하는 여유를 부린다. 인간의 정신이란 자신이 물건이기를 거부하는 저항이지만, 개인들은 가련한 안락을 대가로 정신을 팔아넘긴다. 정치적 폭력이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범람하는 시대에 왜 사람들은 스스로 정신을 파괴하는가?

역사는 흘러간 것이 아니다

다른 정신을 가진 사람끼리 만나 소통하고 연대하는 것이 민주주의라지만, 이 땅의 민주주의는 다른 정신을 허용하지 않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식민화되고 있다. 자본의 동일성 논리는 역사적 허무주의(상대주의)라는 마취약을 통해 사람들을 억압과 폭력에 대한 불감증 환자로 만든다. 동학농민전쟁, 3월 독립운동, 4월 민주혁명, 5월 민중혁명, 6월 시민혁명의 역사는 과거의 사건일 뿐, 더 이상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불빛이 아닌 듯하다.

요즘 젊은이들이 4·19나 5·18을 교과서에 나온 고대사쯤으로 알고 있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의식은 지나간 과거의 실체적 사건으로서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사건은 변하지 않는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실체적 원본으로서 역사적 사건이란 역사를 과학화하려는 실증주의자들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허구일 뿐이다. 실체화된 역사는 권력투쟁의 장에서는 쉽게 이용될 수 있지만, 사람들의 역사의식을 자극하지는 못한다. 정치의 종속변수로 타락한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노예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를 극복하려는 사람들에게 역사는 실체적 사건이 아니라 이념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 1987년 6월 29일 민주헌법 쟁취 국민평화 대행진의 모습

과거와 현재를 잇는 소통과 연대의 장

사람들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역사를 보편적 이념의 틀로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한다. 이런 실천적 관심을 통해 보편성을 획득한 이념으로서의 역사는 갖가지 기념사업이나 국가화, 법제화, 혹은 세계화를 통해 계속해서 확대 재현된다. 자유, 평등, 민주, 인권, 평화는 가장 흔히 등장하는 이념들이다. 그러나 이성적 개념의 체계로 편입된 이념으로서의 역사는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가지는 못한다. 이념으로서의 역사는 처음부터 추상화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한 결과이기 때문에, 구체적 역사를 보편적 이념 속에 포섭해 버린다. 이 때문에 이념으로서의 역사는 언젠가는 억압적 현실을 부정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한 이데올로기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런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주체들이 서로 만나 소통하고 연대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역사는 서로 다른 기억과 해석이 반복적으로 겹쳐지면서 발생하는 동일성과 차이의 긴장 위에서만 새로운 이념으로 끝없이 재탄생한다. 이런 맥락에서 역사는 나와 너의 만남이고 소통이고 연대여야 한다. 그런데 만남을 위한 부름의 주체는 산자가 아니라 죽은 자여야 한다. 반대의 경우 역사적 만남은 정치적 수사나 권력투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나는 호명의 주체가 아니라 응답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서로주체들의 인격적 만남과 소통, 그리고 연대를 통한 응답으로서의 역사는 이념에 따라 서술된 역사서를 벗어나 구체적 실천 속에서 새롭게 형성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4·19는 갑오농민전쟁과 3월 독립운동에 응답한 역사이면서 동시에 5월 민중혁명과 6월 시민혁명을 호명한 역사다.

▲ 1980년 각 대학에서 출발하여 도청 앞까지 질서정연하게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는 학생시위 대열(광주)

‘우리 안의 타자’를 체험하는 역사

응답으로서의 역사는 서로주체들이 연대하여 ‘우리’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응답으로서의 역사에서 서로주체들의 연대는 너와 내가 동시에 부름에 응답할 것이라는 추상적인 전제가 가정되어 있다. 이러한 전제는 언제든 사변적 요청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관념적으로 상정된 서로주체의 연대는 ‘우리’에로 동화되지 않는 타자를 허용하지 않는 동일성의 체계를 형성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응답으로서의 역사는 언제나 ‘우리’라는 서로주체성의 나르시시즘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응답으로서의 역사는‘우리’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바깥에 있는 ‘우리 안의 타자’를 따라 체험하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

바깥으로 나가는 역사는 ‘이념으로서의 역사’와 ‘응답으로서의 역사’와 달리 ‘우리 안팎의 보편성’ 속에 깃든 역사적 진보에 대한 예찬이 아니다. ‘바깥으로 나가는 역사’는 자유, 민주, 인권, 평화, 과학의 역사적 진보 속에 감추어진 퇴보의 역사를 폭로한다. 예를 들어 자유 민주주의라는 국가체계가 과학(기술)과 시장(자본)에 의해 조정되면서 인간을 사물화 시키는 과정을 밝히는 것이다. ‘바깥으로 나가는 역사’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듯이, 빛 속에서 숨겨진 어둠을 들춘다. ‘바깥으로 나가는 역사’는 ‘우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요구하는 동일성과 폐쇄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부정적 현실을 끝없이 부정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아름다운 해방을 꿈꾼다.

▲ 4.19혁명 당시 광화문 시내에서 트럭에 올라타 시위하는 학생, 시민들의 모습

4·19 혁명의 재인식

4·19 민주혁명이 곧 반세기의 역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정치적 민주화가 실현된 자유의 땅이 되었다. 그래선지 국립묘지와 국가체계의 바깥에서 4·19를 찾을 수가 없다. 현실은 계산에 능숙해진 나머지 언제나 대체가능한 상품으로 전락한 개인들의 가련한 안식처로 전락했으며, 과학주의, 국가주의, 시장주의는 진리, 자유, 성장의 이름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은밀히 가른 다음, 노골적으로 비정상을 금지하고 배척한다. 장미꽃 문양을 새긴 칼로 정신을 거세하는 것이다.

4·19의 정신을 가지고 억압되고 소외된 현실에 저항하려는 사람들은 사라져 간다. 4·19 민주혁명의 역사가 스스로 바깥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동학농민전쟁에서 시작하여 3월, 4월, 5월, 6월 혁명을 통해 형성한 자유의 역사에서 진정한 주체는 우리의 안에 있으면서도 바깥으로 추방된 ‘우리 안의 타자’였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우리 안의 타자’를 따라 체험하는 것이 절망적 현실의 유일한 희망일 수 있다. 행복과 자유를 넘어 아름다운 삶을 향한 희망은 언제나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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