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4월 2007-03-29   420

돈의 노예

출출한 오후, 지인이 귤을 한 아름 들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오래 전 그의 집을 매매해 준 일이 계기가 되어 종종 들린다. 고향이 제주라 그런지 그가 들고 오는 귤은 새콤달콤한 맛에 바닷바람 한줌까지 따라와 사무실의 분위기를 바꿔놓는다. 이렇게 일로 알게 되어 때론 간식도 갖고 오고 안부도 묻는 사이가 될 때는 보람도 느낀다. 하지만 매번 그런 것만은 아니다. 눈앞에 현금이 오고가는 현장이라 이곳만큼 사람의 심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데도 없지 싶다.

부동산 사무실을 연 지 얼마 안 되어 주택매매 건이 있었다. 매도인이 양도세를 덜 내려고 거래확인서에 금액을 적지 않고 도장을 받아가려고 했다. 나는 투철한(?) 직업의식에 그녀의 편법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우격다짐 끝에 금액을 적고 보냈다. 매도인이 세금을 회피하면 다음 매수인에게 세금이 전가되기 때문이다. 며칠 후, 그녀는 사무실로 와서 나에게 갖은 포악을 부렸다. 나 때문에 양도세를 많이 내었다는 이유로.

양도세(양도소득세)란 팔 때의 금액, 즉 양도하는 금액에서 취득했을 때의 금액과 그 밖의 세금을 제한 양도 차액에 대해 내는 세금이다. 당연히 자신의 자산에서 불어난 이득에 대한 세금인데 나의 과실로 몰아가는 언행은 어불성설이었다.

너무 어이없이 당한 일이라 나는 몸져눕기까지 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여자에게 당한 수모라 진정하기도 어려웠고, 이 삭막한 현장에서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자책에 한동안 마음 다스리기가 어려웠다. 지금 같아선 한 귀로 흘려버렸을 테지만 그 때는 새내기라 상처를 많이 받았다.

요즘 집값이 고층아파트처럼 치솟자 다주택자들은 온갖 편법을 동원하여 양도세를 피하려고 한다. 한 사례가 위장이혼이다. 부부간의 믿음이 문서나 서류는 한낱 형식에 불과하다고 여길지라도 조세의 의무를 저버릴 만큼 물신의 성채가 견고해야 하는 걸까. 불로소득으로 얻은 이득이니 양도세를 좀 내면 어떠랴. 하지만 엄청난 금액을 세금으로 내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빼앗기는 기분이 들겠다는 마음도 이해가 간다.

아직 우리 사회는 성실한 납세자가 대우를 받는 세상이기보다는 탈세자가 의기양양하고, 조세저항운동을 벌이는 이들이 똑똑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국민의 혈세라는 세금이 투명하게 적재적소에 쓰이지 못하고 ‘눈먼 돈’이 되어버리는 걸 안타깝게 생각해서 사람들은 ‘세금폭탄’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을까. 세태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뿐이다.

돈이란 음식에 들어가는 소금과 같이 인생의 조미료이다. 적당히 간을 내는 역할만 하면 되는데 사람들은 소금을 독째로 갖다 부어 몸을 상하게 하고, 돈의 노예가 되어 웃고 울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돈의 노예들이 득실거리는 부동산의 동산에서 거간꾼 노릇을 하기 위해 출근을 마다하지 않는다. 약간의 소금을 구하기 위하여…….

홍성남 수필가, 공인중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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