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1월 2009-01-01   1544

최성각의 독서잡설_ 여인의 향기보다 매혹적인 독서삼매




여인의 향기보다 매혹적인 독서삼매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연재를 시작하며

아마도 카프카에 관한 책을 뒤적이다 발견한 시였을 것이다. 클라우스 바겐바하의 책이었을 것이다. 얀 첸 차이라는 중국의 시인이 읊은 시인데, 카프카도 아주 좋아했다는 시다. 제목은 ‘깊은 밤에’. 시의 내용은 이렇다.

‘추운 밤 책을 읽다가 / 잠자리에 들 시간을 잊었노라 / 내 금침의 향내는 / 벌써 날아가 버리고, 난로에는 불기가 사그라졌다. / 그때까지 애써 노기를 억누르고 있던 / 내 아름다운 애인이 나에게서 등잔을 낚아채가며 / 이르기를, 그대 지금 몇 시나 되었는지 아는가.’

이 시를 만난 뒤, 그 여인과 아무런 관계도 없지만 얼마나 황홀하고 행복했던지, 그때 내가 만지고 있던 책들을 마치 애완동물을 대하듯 어루만졌다. 깊은 밤, 독서삼매에 빠져 있는 시인의 방 풍경이 선연하게 눈에 떠오른다. 목욕을 마친 애인은 금침 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시인을 기다렸을까? 필경 책이 원망스러웠을 여인에게는 안 된 소리이지만, 이 밤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시는 책에 관한 시인가, 에로티시즘을 다룬 시인가? 여인의 기다림이 주제이고, 책은 단지 매개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여하지간에, 책 좋아하는 인간들은 아무도 못 말린다. 새해부터 귀한 지면이 허락되어 중구난방으로 책 이야기를 펼치게 되었다. 귀한 지면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텐데, 잘 모르겠다. 나는 성심껏 쓰고, 독자들은 그저 유쾌하게 읽어주시면 될 것이다.



벽 너머로 훔쳐보는 세계의 어둠

이 책을 나는 1972년에 만났다. 책 속지에 그런 펜글씨가 보인다. 그때에는 샤프연필도 세상에 없었고, 모나미 볼펜이야 있었지만 곧잘 펜글씨를 쓰곤 했다. 바지나 소매 끝에는 잉크가 번져 있기 일쑤였다. 고등학교 3학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녔다. 대학이 뭐하는 곳인지,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도 잘 몰랐고, 실업계 고등학생인 내게 무엇이 좌절되었는지도 사실 잘 몰랐다. 은행원 취업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나는 수업시간에도 책을 봤다. 선생님들은 사고만 안 치고 조용히 앉아 책만 읽으면 수업시간에도 간섭을 안 하셨다. 일찍이 나를 포기하셨다. 참으로 고마우신 분들이었다. 폐간된 『사상계』를 통해 ‘실존주의 특집’을 봤다. 니체, 사르트르, 하이데거, 야스퍼스를 읊조리곤 했는데, 사실 뜻도 잘 몰랐다. “존재는 본질에 우선한다.”, 그런 말을 이해하기 위해 그렇다고 어디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시골이었고, 외로운 실업계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원제 : The Outsider), 콜린 윌슨 저, 이성규 옮김, 범우사, 1997년 07월
그때 벼락처럼 만난 책이 바로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였다.
책의 첫줄부터 당돌하고 문제 제기적이다. “아웃사이더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사회문제다. 그는 벽 구멍을 통해 인생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총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이 다룬 첫 아웃사이더는 바르뷔스의 『지옥』이었다. 『지옥』에 나오는 인물이었고, 그런 인물을 그려낸 작가 바르뷔스였다. “재능도 없고, 이룩할 사명도 없고, 남겨줄 감정도 없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이지만, 무엇인가 보답을 바라고 있는” 인물이 이 소설의 주인공인데, 심지어 이 인물은 이름도 없다. 이 인물은 벽 구멍으로 타인의 삶을 훔쳐본다. 그런 인물을 창조해낸 소설가와 만나 그 짓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벽 너머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이 이들의 관심사다. 흔해빠진 관음증이라기에는 너무나 심각하게 이 기이한 버릇이 전개되고 해석된다. 이른바, ‘실존주의의 시절’이었다.

콜린 윌슨이 다룬 인물들이나 작품들은 한결같이 어둡고, 침울하고, 본격적이고, 절망적이다. 유럽을 휩쓴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사르트르, 헤밍웨이, 니체, 헨리 제임스, T.E. 로렌스, 반 고흐, 니진스키, 그리고 아아, 어찌 도스토예프스키를 빠뜨릴쏜가. 꿈도 없었고, 할 일도 없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도 잘 모르던 시골의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이었던 나는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피상적이나마 세계의 어둠에 접근했다. 그리고 콜린 윌슨이 다룬 무시무시한 인물들과 그들이 생과 작품으로 봐버린 세계의 심연에 빠져들었다. 더러는 이해했고, 더러는 몰이해 상태에서도 왠지 책을 통해 새로 깨달은 사실들에 겨워했다. 내 방황의 근거가 이 책속에 다 담겨 있다고 곡해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매혹당한 것은 책 속의 인물들만큼이나 한 권의 책으로 ‘outsider(아웃사이더)’라는 보통명사를 고유명사로 바꾼 콜린 윌슨이라는 작가였다.

1931년 영국에서 태어난 콜린 윌슨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구두 제조공이었다. 아버지의 수입은 변변치 못했다. 가난해서 그는 자식을 가르치기 힘들었다. 콜린 윌슨이 책의 후기에서 말한다. “나는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돈이 없어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를 절실히 깨달았다”고. 그런 말은 당연하게도 일찍 대학이 좌절된 내 가슴을 쳤다. 콜린 윌슨의 가족들은 그가 공부를 더 하기보다는 어서 주급을 받아오기를 원했다. 결국 그는 16살에 학교를 접고 노동현장에 뛰어든다. 그렇지만 콜린 윌슨은 굴하지 않고 학교를 접는 순간, 12살부터 들었던, ‘인간존재의 의미와 인류의 모든 가치가 자기기만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독학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버나드 쇼와 도스토예프스키, 엘리엇, 괴테가 그의 교과서였다. 나중에 그는 윌리엄 브레이크나 니체를 만나면서 자신의 불우감을 위로 받는다. 그는 12살부터 들었던 의문을 풀기 위해 선생도, 동급생도 없이 공부를 했다. 틈틈이 자전거에 도시락을 싸들고 도서관에 가 자신만을 위한 자료수집에 들어갔다. 마침내 25살에 『아웃사이더』라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세계는 그의 작품에 아낌없는 박수와 찬탄으로써 예를 표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하루아침에 스타로 만든 매스컴이 어느 날 갑자기 때 묻은 걸레처럼 버릴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다시 시골 오막살이로 도망친다.

나는 이 책의 구석구석에 밑줄을 그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라는 의문을 찾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처음 접한 지 37년이 흘렀건만, 지금도 나는 가끔 이 낡은 책을 뒤적인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인해, 그 후 내 보잘것없는 기나긴 독서편력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조국에 바치는 400년 간의 대서사시

80년대 초반, ‘자발적 실업에 준하는 상태’였던 나는 이 책을 길거리에서 300원을 주고 샀다. 체크남방을 입은 것으로 기억되는 어떤 비썩 마른 사내가 비닐을 땅바닥에 깔아놓고 몇 권의 책을 팔고 있었다. 이 책 말고도 주머니 사정이 허락되는 한 몇 권의 책을 더 샀는데, 그게 어떤 책들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토인비의 『도판 세계사』 상하권도 그 좌판에 있었지만, 책값이 비싸서 후일을 기약했다. 내가 구한 책은 일종각(日鍾閣)이라는 출판사에서 펴낸 노벨문학상전집 제8권, 1982년도 판이었다. 유명출판사였던 ‘일조각’으로 착각해주기를 바랐던 가난한 전집 전문 출판사였던 것 같다. 발행처가 종로6가인 것으로 보아 틀림없다. 그렇지만 역자는 당대 최고의 역자였다. 50년대의 대표적인 작가 중의 한 분이었던 『바비도』의 김성한 선생과 영문학자 정병조 선생이었다. 일본어 중역이었을까, 영어 텍스트였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첫 문장, “드리나강의 물길은 대부분이 가파른 산 속 좁은 협곡(峽谷)을 흘러내리거나 아니면 절벽의 둑을 안은 깊은 산협(山峽)을 뚫고 간다”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볼 때, 그분들 작업이 맞다고 믿고 싶다.

문제는 내 300원짜리 『드리나강의 다리』의 제책이 엉망진창이었다는 점이다. 6쪽부터 15쪽까지 거꾸로 제책되어 있었다. 그래서 5쪽 이후에는 책을 거꾸로 들고 읽어야 했다. 16쪽에 이르러서야 책의 물길이 바로 잡혔다. 제책과정의 실수였을 텐데, 당시에도 서점이나 출판사에 갖고 가면 그런 파본은 새 책으로 바꿔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길거리에서 구한 책이라 체크남방의 그 깡마른 사내를 찾을 수도 없었지만 찾았다 한들 바꿔줄 새 책이 없었을 게 뻔하기에 나는 책을 뒤집어 읽었다 바로 읽었다 하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드리나 강물에 몸을 던졌다.

드리나강의 다리, 이보 안드리치 저, 청목사, 1999년 12월

얼마나 강물이 시퍼렇고 깊은지, 얼마나 강물이 뜨겁고 서늘하면서도, 눈물겹고, 장엄한지 그야말로 나는 울었다 웃었다를 연발하면서 이 위대한 책에 빠졌다. 이보 안드리치가 인간을 묘사하는 어떤 대목은 소름이 끼치도록 적나라했고, 그가 인간에 대해 품고 있는 깊은 혐오와 혐오보다 더 깊은 애정이 얼마나 열렬한지 감탄과 존경의 염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 소설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 접경에 있는 비쉐그라드라는 소읍(小邑)과 이 소읍을 관통하는 드리나강과 그 강에 놓인 다리를 중심으로 1506년부터 1914년까지 4세기에 걸쳐 펼쳐진 인간사를 다룬 대서사시다. 히틀러가 조국을 침공하자 정부는 망명했고, 전쟁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가능한 노력을 다하던 재독공사(在獨公使)였던 작가는 드리나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이층집 서재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자주 폭격이 벌어졌지만, 그는 두문불출, 미동도 않고 이 대서사시로서 폭력으로 사라져버린 조국, 유고슬라비아의 역사를 그린 것이다. 모든 폭력 중에서 가장 심각하고 파괴적인 폭력인 국가폭력에 홀로 펜으로 저항한 것이었다. 이때 다리[橋]는 ‘인생을 추하고 덧없이 만드는 혹독하고 파괴적인 시간의 힘에 맞서기 위해 인간이 창조해낸 영원한 삶의 상징’(『제파강의 다리 외』, 조준래의 해설에서, 책세상, 2004년)이다.

이런 작품이 바로 ‘문학’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작품을 접하고 나면, 지금 발표되고 있는 우리 소설들을 읽기가 힘이 들어진다. 문학인이라 자처하는 이들은 문학에 대해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고, 한 줌도 안 되는 문학권력 주변의 패거리주의에 빠져 세월 몰라라 음풍농월하고 있다. 가히 역겹다. 1986년 겨울에 나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응모했는데, 다행히 당선이 되어 쌀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소설을 응모하기 전 가을에 단 두 편의 소설만 읽었는데, 바로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강의 다리』와 솔제니친의 『암병동』이었다. 위대한 작품을 읽고 가당찮은 졸작으로 작가가 된 셈인데, 그 후 내가 보낸 세월을 돌이켜보니 이번 생에 위대한 작가가 되기는 틀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으므로, 비록 여전히 삶이 무엇이라고 단정을 내리진 못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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