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4월 2009-04-01   1497

이제훈이 만난 사람_음악인 장기하




어느 젊은 노래꾼의 ‘재미論’, 가벼운 무거움



 
“남한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이라면 각자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신분사회도 아니고, 최소한의 존중은 누구나 받아야 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게 상식처럼 
   여겨지면 안 되고…,
   이게 제가 이해하고 있는 민주주의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평범한 생각이 관철되기가 쉬운 상
   황은 아닌 거 같다.”



이제훈 <한겨레> 통일팀장
사진 김영광 사진가



‘장기하’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지난해 말 친구들과 송년회 자리였다. 지금은 교수 노릇을 하는 친구와, 정보기술업계에서 일하는 친구가 ‘장기하’라는 음악가를, ‘입에 거품을 물고’ 칭찬·광고했다. 나를 포함해 나머지 친구들은 소주잔만 기울였다. 그럴 수밖에. 처음 들어본 이름이기도 하려니와, ‘장기하교’의 자발적 교도가 된 그 두 친구는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겨울 맵찬 바람을 뒤로 하며 집으로 가던 길, ‘장기하가 누군지 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오래도록 나는 ‘장기하’라는 인물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대한민국 사십대 중반 남성, 인디 음악가를 찾아 나서기엔 삶이 쓸데없이 번잡하고 팍팍하다. 나도 한땐 대학로 극장과 홍대 앞 클럽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각설하고, 나는 장기하를 찾지 못했지만, ‘장기하’는 어느새 내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 <달이 차오른다, 가자> <별일없이 산다>가 무시로 흘러나왔다. 누군가 그랬다지, ‘장기하의 노래엔 중독성이 있다’고. 장기하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이제훈’을 발견하곤 했다. 그의 이런 스며듦에서, 비틀즈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들어설 때 카피로 썼다는 ‘British Invasion’이 떠올랐다면, 허풍이 심한가?


‘장기하敎’의 출현

어찌 됐든 ‘장기하와 얼굴들’은 인디밴드(?!)답지 않게 음반판매 순위 1위를 차지했고, 3월 12일 제6회 한국대중음악시상식에서 3관왕(최우수 록 노래 부문,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 남자 부문, 올해의 노래상)을 차지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두고, 2009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인디 밴드이자, 아니 가장 잘 나가는 록 밴드의 하나이자, 새로운 문화적 징후를 상징하는 아이콘의 하나라고 주장한들, 미쳤다고 반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3월 23일 대낮, 홍대 앞 주차장거리 옆 골목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장기하’를 만났다. (이 인터뷰 기사를 읽기 전에 ‘장기하와 얼굴들’의 첫 정규앨범 <별일없이 산다>를 꼭 들어보시길 권한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동영상도 함께 보시길. 뭐, 앨범 홍보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노래를 듣지 않고 이 글을 읽게 되면, ‘장기하’ 버전으로 말씀드리자면, ‘재미가 없을까봐’ 그렇다.)



돈 없이도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있다. 앨범을 낸 ‘붕가붕가레코드’가 아무런 초기 자본 없이 시작했고, 정규 앨범을 내기 전 싱글을 컴퓨터로 직접 찍어 판매했던 사실이다. 어떤 이는 신기해하고 어떤 이는 ‘진정한 인디 정신의 구현’이라고 한다. 지금은 앨범이 많이 나가서 직접 손으로 찍지는 않을 거 같은데?

그렇다. 어떤 분들은 (앨범 판매가)잘 되니까 공장에 맡겼다고 하는데, 오해다. 처음엔 수공업으로 싱글 만들고, 그건 명함인 셈인데, 그거 판 돈을 모아서 앨범을 만들겠다는 게 애초 레이블 전략, 사업 전략이었다.

인기가 떨어져 앨범이 안 팔리면 다시 손으로 찍어 판매할 생각도 있나?
물론이다. 근데 손으로 찍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활동하게 될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배철수의 노래를 좋아하는 까닭


어느 인터뷰를 보면, 배철수 씨를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이라고 표현했더라. ‘그의 목소리가 음악으로 들린다’고도 했고.

한국말 노래를 하신 분들 가운데 듣기에 가장 좋기 때문이다. 한국말 노래를 많이 들었는데, 배 선배님 노래가 가장 아름답게 들렸다. <세상만사> <산꼭대기 올라가>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등을 좋아한다.

정작 배철수 씨는 ‘장기하와 얼굴들’을 ‘조금 더 심각한 김창완’이라고 했다던데?

글쎄…, 김창완 선배님 음악은 충분히 심각하다. 오히려 제가 덜 심각하다.

장기하 씨 노래를 들은 많은 이들이 ‘1980년대 대학가요제 분위기’라고 평하는데?

즐겨 들은 음악이 산울림, 송골매로 대표되는 캠퍼스 그룹사운드가 많이 나왔을 때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의 영향을 받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한국말의 음률을 보존한 음악


장기하 씨 노래를 들은 많은 이들이 랩인지 내레이션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데?

저는 랩이라고 한다. 근데 랩이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듣기에 어떠냐가 중요한 거 아닌가?  

랩을 듣고 내레이션 같다는 반응이 나오는 건, 그만큼 노랫말이 잘 들린다는 뜻이기도 한데. 이전에 한 인터뷰를 보면 이런 말이 있더라. “백인들의 록음악을 우리가 다시 한다고 했을 때 어느 방식으로 할 것인지…,
신중현 선생부터 해서 우리 선배들이 제시했다는 거죠. 그 당시에는 그게 상식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말의 음률을 보존해서 음악을 만든다는 것.”


그렇다. 저는 그냥 제식으로 한 거다. 지금 유행하는 스타일은 하기 싫다는 생각은 있었다. 제가 음악 만들 때 (요즘 유행하는)일반적인 것은 재미없고, 듣는 분들도 재미없을 거다. 저다운 것을 찾은 거다. 지금도 계속 찾고 있고.



돈? 목살에 소주 마실 정도면 된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장기하 씨 음악을 좋아하는 거 같나?

그런 질문 많이 받았는데, 진짜로 잘 모르겠다. 저는 제 음악이 되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우주에서 떨어진 사람은 아니니깐, 결국 저랑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나. 제가 좋아하는 그런 면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근데 저랑 비슷한 분들이 생각보다 많은 거 같다.
 
앨범이 많이 팔리니 돈도 좀 들어올 거 같은데, 사는 데 돈은 얼마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일신을 보전할 정도면 좋을 거 같다. 술과 맛있는 거는 사먹을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취향이 고급스럽지는 않아서, 꼭 한우를 먹어야 하는 건 아니고, 돼지 목살 정도면 되고, 감자탕 그리고 가끔은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먹을 수 있을 정도면 된다. 술은 소주가 좋다.


서로 감흥 있고 즐거우면 좋지 않나?

-이전 인터뷰를 보면 ‘재미’를 많이 거론하던데?

오해가 많아서 이제 그만 써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재미를 그냥 웃기고 농담하고 그런 식으로 좁게 생각하는 분이 많은 거 같다. 그런 게 아닌데…….

-지위가 높거나 대중노출빈도가 높은 사람들은 ‘재미’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데?

재미없는 사람들이 유명해지다보니까, 재미없는 사람들은 재미를 안 좋아하죠, 왜냐, 재미없으니까.

-음악을 듣는 이들과 공감을 각별히 중시하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노래하는 저나 듣는 분들이나 감흥이 있고 즐거우면 좋지 않나?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되고, 했을 때 재밌는 게 좋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의 저와 미미시스터즈의 휘적이는 안무에 대해 ‘뜨려고 일부러 튄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런 건 아니다. 클럽에서 공연할 때 기타 치며 방방 뛰는 경우는 있어도 따로 나와서 춤을 추지는 않는다. 공연 때 재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한 것이다. 흔히 하는 거 말고 재밌게 하자는 생각으로. 저도 생각이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휘적휘적거리는 춤을 춘다고 판이 1만 장 넘게 팔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겠나?


기를 받으려면 클럽공연은 꼭 해야


-요즘도 클럽공연 많이 하나?

최근에는 많이 못했다. (방송 등)다른 공연이 클럽 공연보다 섭외를 일찍 하는 경향이 있다. 클럽공연은 꼭 해야 한다. 일부러 클럽공연을 하려고 한다. 클럽엔 공중파보다 좋은 뮤지션이 많으니까 클럽에 가서 공연도 하고 보기도 해야 기를 받을 수 있다.

-‘장교주’ ‘인디계의 서태지’ ‘루저(패배자)들의 왕’ ‘무표정’ 등등 별명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별명은 별명이다. 자청한 것은 없다. 저는 ‘장기하’가 젤 좋다.

‘시민 장기하’는 어떤 사람인가?

평범한 시민이다. 근데 남한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이라면 각자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신분사회도 아니고, 최소한의 존중은 누구나 받아야 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게 상식처럼 여겨지면 안 되고…, 이게 제가 이해하고 있는 민주주의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평범한 생각이 관철되기가 쉬운 상황은 아닌 거 같다.


“나는 사는 게 재밌고 신난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첫 정규앨범의 타이틀곡 <별일없이 산다>의 노랫말을 다시 읽어보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니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밤 절대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이번 건 니가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을 거다
     그것만은 사실이 아니길 엄청 바랄 거다
     하지만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이 노래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 어떤 평자처럼 ‘무감각의 정서’가 걱정되시는가? 아니면, ‘더 많은 것’과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무한경쟁의 궤도 속을 헤매느라 ‘재미’를 잃어버린 세상의 수많은 이들을 향한 ‘안타까운 손 내밂’이 느껴지시는가?

누군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면, ‘장교주’는 아마 이렇게 답할 거다.

“아…뭐…, 각자 본인이 생각하는 게 정답이겠죠?”



1982년 2월 20일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중1 때 부모님이 기타와 교본을 사주셔서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2000년 ‘사회의 빠른 변화를 예측해 사회에 공헌하는 미래사회학을 연구하려고’ 사회학과에 들어갔다. 대학에 다녀보니 자질도 취향도 맞지 않아 학자의 꿈은 접었다. 대신 음악가의 꿈을 벼렸다. 학교 친구들과 밴드를 하다, 2002년 또 다른 친구들과 ‘눈뜨고 코베인’이라는 밴드 활동을 하며 산울림과 송골매 등의 음악을 접했다. 2008년 5월 ‘장기하와 얼글들’의 리드 보컬로 첫 공연을 했고, ‘정식 데뷰(?) 한 지 채 1년도 안 돼, 음반 판매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대중스타’가 됐다. 이런 바쁜 생활 덕에 대학은 입학 8년 반 만인 지난해 여름에 졸업했다. 음악은 재미없어지면 그만 할 생각인데, 지금 느낌으론 꽤 오래 음악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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