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4월 2009-04-01   1119

아주 특별한 만남_남상우 회원



남 상 우  회 원


초등학교는 삶의 동력 얻는 시기



이경휴 수필가,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마련이다

봄날이 게릴라처럼 순식간 침투했다. 노란 비비탄 알맹이가 산수유나무 위에 쏟아지고 목련꽃은 드디어 조준을 끝냈다. 그 아래 개나리는 매복 상태로 길목을 지키고 있다. 봄을 찬미하는 시선이 전투 용어로 묘사됨은 시절 탓인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로 시작하는 T.S. 엘리엣의 시구 탓인가. 비교를 즐기는 게 인간의 속성이라면 자연自然이란 분별과 시비를 모르는 채 스스로 찾아올 뿐이리라.

인터뷰를 위해 경기도 시흥으로 길을 나서던 날은 춘분春分이었다. 아무리 철부지들이 많은 세상이라도 춘분은 설명이 필요 없는 절기일 게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고 하지만 실제론 일몰 후 햇빛이 남아 있어 낮의 길이가 조금 더 길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봄기운 완연한 저녁 무렵, 서울을 벗어나자 금방 어둠이 따라붙었다. 지역상으로 수도권에 해당되지만 머릿속 지도는 분명하지 않았다. 내비게이터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 쉽게 목적지에 당도하겠지만 내 의지가 사라진 길찾기는 주인공 없는 화면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쩌랴, 편리함과 속도가 이 시대를 끌고 가는 쌍두마차인 것을.

깊이와 넓이를 짐작키 어려운 물왕저수지의 홀연한 출현에 갈증 났던 심신이 생기를 되찾았고, 주변의 휘황한 불빛은 그곳을 젖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짐작케 했다. 예정보다 다소 늦은 시각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사방은 깜깜했다. 불야성의 서울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로선 당황스러웠지만 어둠 속에 빛나는 눈동자가 단박에 그 사람임을 알아차렸다. 남상우 회원(39세). 초등학교 선생님답게 우리를 애들 다루듯 자상하고 친절히 안내했다. 따라 들어선 ‘플라워 카페’는 숲속 요정이 살고 있는 나라였다. 조화와 생화가 구별 없이 어우러져지며 감미로운 음악이 배경으로 흘렀고, 갓 볶은 원두커피 향과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허브향내를 풍기는 화초들은 시각과 후각을 넘어 오감을 황홀케 했다.

기분 좋은 만남으로 자리를 마주 했다. 당연히 커피를 주문하리라 여겼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분위기를 의식한 듯 다소 열없이 웃으며 먼저 말문을 열었다.

“커피를 안 마신 지 10년 정도 됩니다. 처음 발령 받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들이 개인 컵 없이 종이컵을 사용하더군요. 그래서 나라도 종이컵 쓰지 않으려고 커피를 안 마셨는데 이젠 몸이 적응을 못 합니다. 얼마 전 피할 수 없는 자리라 한 잔 마셨더니 몸이 반란을 일으켜 밤새 고생을 했지요.”

예사롭지 않는 이를 만났다는 느낌이었다. 투사의 이미지는 전혀 아니지만 엄정하고 내밀한 실천이 이론에 능한 환경운동가보다 믿음이 갔다. 아니나 다를까,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의 ‘회비만 내는 회원’이라고 쑥스럽게 말했지만 진정성은 조금도 의심되지 않았다.



‘도토리 키재기’는 유권자의 몫     
 
그는 연신 먼(?) 길을 찾아 온 것을 무척 죄송해했다. 사전에 인터뷰 요청을 겸손하게 사양한지라 오히려 우리가 무례한 게 아닌가 염려했지만 그의 표정은 비 갠 후 맑음이었다. 사실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나는 ‘아주 특별한 만남’은 설렘과 의욕이 동반된 나들이였다.

시흥(始興)시는 비리와 부패, 오명 천국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이다. 민선 4기 동안 기초단체장 모두가 정치자금법, 뇌물수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으로 구속되었고, 주민소환제가 실시되기도 했던 도시이다. 비록 주민소환제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지만 끊임없는 복마전의 진앙지이다. 이런 곳에 참여연대의 청진기를 한 번 들이대고 싶었고, 그 중심을 교직에 있는 그에게로 맞췄다. 물론 그는 대표성을 부정하고 평범한 소시민임을 강조했다. 낯선 사람 만나는 걸 무척 어려워하고 어울려 대화하면 진땀이 날 정도라 하니,  우울한 지식인을 떠올리게 했다.

4월 8일 경기도 교육감 선거, 4월 29일 보궐선거에 대한 교단의 목소리와 민심의 향방이 궁금했다.

“요즘은 정치 이야기를 하면 칼 맞는다고 생각해요. 선생님들조차 교육감 선거를 하루 쉬는 날로 여길 뿐 관심이 없어요. 보궐선거요? 아직 후보가 결정되지 않아 열기가 없다기보다 누가 되든 바뀌는 게 뭐 있어 하는 자조적 분위기이죠.”

모든 국가동력을 경제로 올인하는 나라에 희망이 발붙일 곳이 어디 있으랴. 희망이란 오늘을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그 앞에 다가서는 창이 아닌가. 생존의 터전마저 불구덩이로 몰아넣는 현실 앞에 사람들은 무관심과 열패감으로 ‘먹고 사는’ 일에만 몰두할 뿐이다. 당장 ‘짤리지’ 않으려고 침묵하고 저항과 투쟁하는 자는 ‘떼쟁이’로 불도장을 찍어버린다.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되는 교육감 선거는 이미 7명이 후보 등록을 하고 뛰어들었다. 아마 그들만의 리그가 될 거라고 예견했다. 교육현장의 목소리가 이러한데 840만 유권자는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언론에서조차 경기도의 ‘지역 문제’로 인색하게 보도하는 실정이다. 아무리 ‘서울공화국’이라지만 매스컴의 쏠림현상이 지나치다 싶다.

“많은 선생님들도 회의적이예요. 굳이 시간적 경제적 비용을 막대히 치르면서 교육감 직선제가 필요한가, 차라리 교육전문가와 교사, 학부모들로 선거인단을 구성하여 선거하자고. 그러나 교육자치제는 민의 반영이 우선이고, 그 지름길이 직선제뿐이라는 원칙에는 동의합니다.

사실 전처럼 운영위원 위주로 선거를 치른다면 조직력이 앞서는 사람들이나 기득권자들이 이길 수밖에 없거든요. 교육감 선거가 국민에게 이슈가 되고 중요한 선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방안들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교육감 선거는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들 선거만큼도 국민들에게 관심을 못 받고 있습니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 대한 바람은 부패로 얼룩지거나 힘없는 교사들을 마구 잘라내는 서울시 교육감 같은 사람만 당선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파면되고 해임된 교사들을 보면서 그 생각이 옳고 그름을 떠나 같은 교사로서 무기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교사들의 교육자로서의 신념이 성추행을 자행하는 사람들의 행동보다 존중받지 못하고, 교사를 말단 단순 기술자 정도로만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씁쓸한 분석이다. 보궐선거(4월 29일)를 바라보는 민심 또한 다르지 않다고 한다. 한나라당 예비후보들 벽보만 여럿 있을 뿐 아직 후보등록이 안 된 상태라며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거라는 냉소적인 진단을 했다. 더욱이 정치자금법으로 구속되었던 이들이 다시 꿈을 이루겠다고 재도전을 하며 풀뿌리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어댄다. 유권자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고 흥분을 하자,

“정치자금법으로 구속된 이들은 하나같이 자기만 재수 없어 당했다고 억울해합니다. 이루겠다는 꿈이란 누구를 위한 꿈인지……. 이제 유권자들이 그것 모르겠어요? 그러니 그 놈이 그 놈이라며 찬웃음을 짓지요. 저는 그럴 때마다 강하게 설득합니다. 우리 속담에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이 있듯이 똑같아 보여도 큰 게 있듯이 후보도 그렇다고 말하죠. 눈곱만큼이라도 나은 후보가 없는지 유권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꼼꼼히 비교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보다 적절한 비유가 어디 있을까. 도토리까지 키를 재는 치밀함이 있는데 하물며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후보 선정에 눈 감다니. 후보 못지않게 유권자 의식도 바꿔야 되지 않을까.


‘좋은 선생님’들을 삼류 행정가로

화제는 다시 교육현장으로 돌아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개혁은 단골 메뉴였다.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솜방망이는 보다 넓은 사교육 시장의 활로를 제공해주었고, 현 정권은 초등학교마저 일찌감치 경쟁 구도로 몰아넣는다. 학력평가라는 명칭으로 일제고사를 실시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교사는 파면·해임 등의 사형선고까지 한 상황이다. ‘일제고사 선택권을 존중한 교사에 대한 파면과 해임은 부당하다’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모르쇠’로 일관하고, 며칠 후면 또 일제고사를 치른다. 교단의 분위기는 위축되어 ‘몸조심’을 할 뿐이라니 ‘좋은 선생님’들은 꼭꼭 숨어버리는 건 아닌지. 교육현장의 문제점과 개선점에 대한 생각을 묻자 허허롭게 웃음을 날리며,

“큰 테두리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좋은 교사들이 현장을 떠나 승진에 안달하게 만드는 풍토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대학을 졸업하면서 내내 생각했던 건 어떻게 하면 ‘좋은 선생님’이 될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학교로 와보니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더군요. 좋은 선생님보다 더 중요한 건 업무를 얼마나 잘 하고 승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더군요. 승진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하면 열심히 하는 선생님, 그렇지 않으면 나태하고 게으른 선생님, 뭐 이런 식의 생각이 팽배했어요. 물론 지금은 많이 바뀌었고 더 나아져하는데, 초등학교 교사들이 무슨 파워가 있나요? 여기 저기 눈치 보느라 바쁜 마당에…….

원하는 게 있다면 교사는 학생을 위해 온 마음을 다 하고, 정부나 학부모들은 학교와 교사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우리 탓도 많겠지만 요즘은 교사들이 동네북이 아닌가 싶을 때도 많아요.”

적나라한 자기고백인가, 열패감에 젖어 있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대변인가. 덩달아 분위기가 침울해져 ‘소신모드’로 나갔다. 교육관에 대하여 한 말씀 부탁드렸다.

“최소한 초등학교 때만이라도 학생들이 성적 경쟁에 지나치게 노출되지는 말았으면 해요. 초등학교는 평생 살아가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간입니다. 이 시기에는 당장의 성적보다는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감, 행복감을 조금이라도 높여주는 것이 성적보다는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그렇다고 성적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 정서적 안정감이 지적 호기심을 유지하고, 발현하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주죠. 입시 현실상 쉽지 않겠지만, 최소한 초등학교 기간만이라도 필수 학습량을 최소량으로 유지하고 성적 경쟁보다는 배우는 즐거움을 알게 해 주는 기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안타까운 표정은 역력했지만 발언은 물 만난 고기처럼 활기찼다. 학생들의 편에서 서서 늘 그들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선생님, 이런 선생님이야말로 ‘좋은 선생님’이리라.



‘역사를’이 아닌 ‘역사에서’ 배우다

회원 가입 동기를 묻고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주문하는 마무리 질문에 들어갔다.

“TV 토론 시간을 즐겨보다 김기식(참여연대 전 사무처장) 씨의 팬이 되어버렸죠. 그러면서 참여연대를 알게 되었죠. 굳이 보수논객들을 싫어하는 편은 아닌데 그들의 논조는 에둘러치면서 핵심을 비켜갑니다. 그걸 김기식 씨가 절묘하게 뚫고 나가더군요. 그가 나오면 든든하고 힘이 나더라고요. 회원가입 후 줄곧 지켜봤지만 잘해왔습니다.현 정권의 주요 표적이 되어 있는데도 잘 견디고 있잖아요. 어렵겠지만 지금처럼 하면 되는 거죠.”

2004년 회원 가입을 했다. 본인은 또 ‘회비만 내는 회원’이라고 소개하지만 여기저기 진보단체의 ‘진골회원’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보석을 놓칠세라 마음이 급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여쭸더니 총알 같은 답변이 튀어나왔다.

“역사책 읽기를 좋아하고, 혼자 답사를 잘 다닙니다. 저는 기계든 사람이든 새로운 것을 만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이런 내 취향에 딱 맞는 게 역사읽기입니다. 옛사람들의 사고방식 속으로 들어가서 시간이 주는 편안함에 몸을 맡깁니다. 전체를 꿰뚫으면서 지금을 바라보는 시각을 역사에서 배웁니다.”

물 만난 고기가 역사라는 큰 바다로 자유롭게 헤엄쳐 나왔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를 관통하는 문화재, 복식사를 제외한 문화사 전반에 대한 관심과 애정,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수필로 유명한 영풍 부석사를 혼자서 4,50번 갔었다는 이야기로 고수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이 때다 싶어 회원모임 ‘답사모임 우리땅’으로 발목을 잡았더니 멋쩍게 웃을 뿐 즉답을 피해갔다. ‘역사에서’ 배우는 답사모임을 ‘역사를’ 배우는 모임으로 지레 짐작했을까.

역사에 매달리면 한 눈이 멀고 역사를 외면하면 두 눈이 먼다는 글귀가 언뜻 떠올랐다. 지금 우리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군홧발’시대로 돌아가려는 건 아닌지…….



4.29   시 흥 시 장 보 궐 선 거
민선 1기부터 4기까지 모든 시장들이 사법 처리된 경기도 시흥은 주민들의 지역정치에 대한 불신이 큰 곳입니다. 새로운 지방자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지방자치에 대한 불신을 바꾸기 위해서는 시민이 직접 나서야 합니다. 4월 29일 시흥시장 보궐선거에 꼭 참여하셔서 새로운 생활정치의 장이 펼쳐지는 시흥을 만드는 데 관심 가져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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