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4월 2009-04-01   849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_남북관계: 위기의 남북관계, 진단과 해법




위기의 남북관계, 진단과 해법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파탄지경의 남북관계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이명박 정부 1년 만에 거의 무력화되고 있다. 당국간 회담은 중단된 지 오래고 이산가족 상봉도 끊긴 지 오래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 관광도 이미 중단되었고 마지막 남은 개성공단마저 사실상의 폐쇄를 우려해야 하는 처지다. 북한은 서해 NLL을 비롯해 육상의 군사분계선과 하늘의 민항기 운항까지 위협하고 있다. 군통신선 차단 방침에 따라 개성공단 입출경이 위협받으면서 민간 경협사업까지 누란지위에 처해 있다. 일촉즉발의 팽팽한 군사적 긴장에다 이미 남과 북은 치킨게임에 돌입한 상태다. 상대방에게 겁쟁이라는 욕을 먹지 않기 위해 남북은 더 강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상대방이 굴복해야만 이 게임은 끝나게 되어 있다. 



‘인식의 동굴’에 빠진 대북 정책

이명박 정부는 취임 직후 이른바 ABR(Anything But Roh : 노무현 전대통과 무조건 반대) 노선에 입각해 대북정책의 변화를 추구했다. 야당 시절 줄곧 주장했던 선명한 대북 입장, 즉 북핵 해결 우선과 상호주의 강화 및 북한 인권 개선 등을 정책기조로 분명하게 내세웠다. 북핵 해결의 진전 없이는 남북관계의 지속이 힘들고 명백한 상호주의 없이는 대북 식량지원을 할 수 없었다. 구체적 해법 없이 구호성 슬로건만 내세운 대표적 정책은 바로 ‘비핵개방3000’이었다. 이에 따라 북한의 반발은 더 심해졌고 급기야 ‘말 대 말’의 대결을 넘어 ‘행동 대 행동’의 정면충돌로 이어졌다.

10·4 선언 이행과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을 요구하면서 남북관계 전면중단을 경고한 북한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며 북한의 태도변화가 있을 때까지 원칙을 지키겠다고 응수했다. 북한의 대남압박이 거세지면서 이명박 정부의 입장도 갈수록 강경하고 완고해졌다. 북이 변화하기 전에는 남북관계를 지속하거나 유지할 필요가 없고 관계를 중단해서라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버티기로 발전하고 있다. 포용정책 대신 불개입 정책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단절하는 불개입 정책이 지금의 현실에서 북한 변화에 성공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가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다림의 정책이 북한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신념과 이를 정당화하는 비현실적 대북인식 때문이다.

기다리면 북이 아쉬워 굴복할 것이라는 자의적 대북인식은 또 하나의 잘못된 믿음을 배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도 북미관계와 북핵문제가 진전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이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는 단호할 것이기 때문에 북미관계는 지지부진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에 따르면 항상 북핵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없고, 북미는 타협할 수 없다.1) 결국 북한은 남쪽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게 된다는 논리다. 잘못된 인식이 현실을 제대로 못 보게 하는 셈이다. 이를 두고 플라톤은 ‘인식의 동굴’이라고 지칭했다. 바깥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그 안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대북 ‘인식의 동굴’에 갇혀 있는 한, 남북관계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북미관계 전망과 이명박 정부의 선택

이미 남북관계 자체의 힘으로는 지금의 악화국면을 해소하기 힘들어 보인다. 뱉어놓은 말이 지나치게 많은데다가 상대방의 굴복을 전제로 한 요구여서 어느 한쪽이 고개를 숙이기엔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 보인다. 북미관계를 변화시킴으로써 경색된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는 방식, 남과 북이 지금 미국을 동시에 쳐다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외부 요인을 통한 남북관계 돌파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바람직하기로는 북미관계가 협상을 통해 진전되면서 그 여파로 한반도에 훈풍이 불고 남북관계가 자연스럽게 정상화되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미 3자가 당장 노력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북한은 미사일 ‘카드’를 버리고 미국과의 첫 협상이 원만히 시작될 수 있도록 성의를 보여야 한다. 만에 하나 과거 미사일 발사로 얻은 몇 번의 이익에 눈이 멀어 발사까지 강행한다면 북에게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가 될 것이다. 북미 협상의 기대는 사라지고 명맥을 유지하던 6자회담마저 난관에 부딪칠 수 있다. 선의를 가지고 북을 대하려던 협상파도 대북 경계심과 강경론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게 된다. 북미관계까지 경색되는 것은 북이 미사일을 통해 얻으려는 미국과의 통 큰 협상을 오히려 불가능하게 만든다.

미국 역시 북한과의 신속한 양자협상에 나서야 한다. 북핵 해결의 실질적 단초가 되었던 2·13 합의가 도출될 수 있었던 원인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2007년 2·13 합의는 당시 핵실험과 대북 유엔제재로까지 대립했던 북한과 미국이 본격적인 양자협상을 통해 주고받기식 타결에 나섬으로써 도출되었다. 북미 베를린 회담에서 대부분의 쟁점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었고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상호 타협을 얻어낼 수 있었다. 신뢰에 기반한 진지한 양자협상이 큰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지금 협상을 앞두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 역시 양자협상의 의지를 적극 보여야 한다. 힐러리 장관도 보즈워스 대북특사도 6자회담보다는 양자협상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향후 북미관계 전개에 임하는 이명박 정부의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의 선택은 북미 협상이 진전되도록 미국에 적극 요구함으로써 선제적인 접근을 통해 남북관계 복원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북미관계 진전이 결국 북핵 문제의 진전을 가져오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된다면 오바마 행정부의 적극적인 대북 협상을 말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한국 정부가 나서서 오바마 행정부에게 대북 핵협상 말고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와 북미관계 개선 논의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것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과 미국의 직접 협상을 지지하고 북미관계 개선에 대해 적극적인 협력 의지를 밝힌다면 차후 남북관계 복원에도 긍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또한 북미 협상에 동력을 불어넣기 위해선 오바마 행정부와 북한과의 첫 협상이 순조롭게 시작될 수 있도록 남북관계의 적극적 역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 복원을 통해 북한이 현실과 동떨어진 과도한 대미 요구와 경직된 입장을 갖지 않도록 충분히 설득해야 한다. 지금의 미사일 사태와 같은 북미 갈등을 해소하고 북미 관계 진전을 이뤄내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를 통한 한국 정부의 대북 영향력 확보는 최소한의 조건이 되는 셈이다.

남북관계라는 우리의 독자적 지렛대가 확보되어야만 북미관계의 진전과 갈등 상황을 한반도 평화라는 차원에서 관리할 수 있다. 남북관계의 유지는 북미관계가 갈등으로 치달을 때 한반도 긴장고조를 막는 완충장치 역할을 하는 한편 북미 간 접점 찾기의 가능성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남북관계의 유지는 북미관계가 진전될 경우 한반도 정세에 대한 우리의 개입력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포용정책 비판에 대한 반박

지난 시기 한국의 대북정책은 북한과의 관계 확대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이른바 포용(개입:enga-gement) 정책이었다.2) 교류와 접촉, 화해와 협력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도모하는 정책은 사실 노태우 정부의 7·7 선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는 정치적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중단을 불사해서라도 퍼주기와 끌려다니기를 결코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입장에 서 있고 오히려 남북관계 중단이 북한의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북포용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크게 3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포용을 통해 과연 북한이 변화했는가라는 질문과 정책 추진과정에서 상호주의가 제대로 관철되었는가에 대한 논란, 그리고 포용정책이 결국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용인했다는 비판이 그것들이다. 만약 이들 비판이 타당하고 그 잘못이 바로 포용정책의 근본적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응당 포용정책은 폐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3가지 논란은 결국 한국적 현실에서 비롯되는 불가피한 딜레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미국이 탈냉전 이후 불량국가를 자신의 요구대로 변화시키기 위한 접근으로 선택한 것이 개입정책이지만, 한국의 포용정책은 미국과 다른 한반도 상황의 현실로 인해 조금 더 힘든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이 애초에 분단국가의 상대방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변화 수용에 민감하다. 상호주의 역시 북한 주민의 구조적 변화를 도모한다는 점과 이미 이질화된 상호 가치체계의 차이로 인해 등가의 교환에 합의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기계적 상호주의는 힘들 수밖에 없다. 북핵 폐기 등 단호한 봉쇄 역시 전쟁까지 불사할 수 없기에 더디지만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대북포용의 폐기가 아닌 재확인을

한반도의 현실을 충분히 감안할 때, 바람직한 대북정책의 방향은 포용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한반도의 특성에서 비롯된 어려움을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극복할 수 있는 전략적이고 입체적인 포용의 방식을 고민하는 일이다. 향후 대북정책은 포용기조의 폐기가 아니라 보다 효율적인 포용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

 근본주의적인 대북강경책을 지속할 경우 핵심지지층의 이반은 막을 수 있을지언정 보다 합리적인 광범위한 중간층 포용은 불가능하다. 포용정책의 폐기는 북한의 굴복이나 변화를 얻어내지도 못한 채 그동안 쌓아온 남북관계의 성과를 무위로 돌리는 최악의 선택이다. 

퍼주기를 안 하려면 실제로 ‘주면서’ 퍼주지 않아야 하고, 끌려가지 않고 버릇을 고치려면 ‘만나서’ 대화하면서 고쳐야 한다. 무조건 문을 닫고 관계를 중단하는 것은 북한의 변화를 보장하지 못한다. 대북포용기조의 재확인만이 남북관계를 명실상부한 상생과 공영의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첩경이자 해법이다. 



당국 아니면 민간이, 정치군사가 아니면 경제협력으로

당국 간 정치군사적 합의가 무효화된다면 지금은 분명 남북관계의 위기상황이다. 반포용과 방관의 대북 정책이 남북관계를 전면 중단시키고 우리의 대북 영향력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돌아오지 않은 메아리일 뿐이다. 동굴에 갇힌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정부가 나서서 악화일로의 남북관계를 푸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당국의 노력이 힘들다면 민간에서 여지를 찾아야 하고 정치군사 분야가 어렵다면 경제에서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필자는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성명이 발표되는 그 시각 평양에 있었다. 대북지원 단체인 (사)남북나눔의 대표단과 함께 황해북도 봉산군 천덕리에 추진 중인 살림집 건설 사업을 확인하고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정치적 전면 대결과 군사적 긴장을 선언하는 조평통 성명에도 불구하고 평양은 경제건설 외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남북관계 경색 국면에서 남측 민간단체의 방북을 허용한 것도 경제적 지원 때문이었다. 남북나눔이 새로 제의한 못자리용 비닐박막 제공에 대해서도 북측은 반색하며 합의서를 작성해줬다. 남북 간 합의 무효를 선언한 그 시각 평양에서  새로운 합의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손을 내민다면 북의 단호함도 녹일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의 굴곡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대북지원을 지속하고 있는 민간단체가 북과 오랜 신뢰를 유지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갈등하고 언쟁하더라도 양측이 최소한의 신뢰의 끈은 유지해야 하고, 그 토대는 조건 없이 주는 인도적 지원이다. 정치적 대결 상황을 이유로 북한주민을 인도적으로 돕는 일마저 멈춰버리는 식이라면 당국 간 신뢰는 형성될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못한다면 민간 영역에서, 정치군사가 어렵다면 경제 영역에서 남북관계 경색을 돌파할 수 있는 조그마한 틈새라도 만들어야 한다.



각주
1)  지난 해 12월에 개최된 6자회담에서는 검증문제와 중유제공을 연계시킨 강경입장을 내세워 그 예측을 현실로 바꾸려는 직접적인 노력까지 기울였다. 금년 초 워싱턴을 방문한 대통령 외교자문단 일행이 오바마 측 인사를 만나 대북특사 파견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2)  일반적으로 개입정책은 ‘다양한 이슈영역에서의 포괄적인 접촉 확대와 구축을 통해 대상국가의 정치적 행동에 영향을 미치려는 정책’(the attempt to influence the political behavior of a target state through the comprehensive establishment and enhancement of contacts with that state across multiple issue-areas)으로 정의된다. Evan Resnick, “Defining Engagement,” Journal of International Affairs, vol. 54, no. 2 (Spring, 2001), p.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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