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4월 2009-04-01   1002

김재명의 평화이야기_지구촌의 정의와 평화가 바로 설 날은 언제인가




지구촌의 정의와 평화가 바로 설 날은
언제인가




글 사진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겸임교수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선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비명소리와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많은 경우 그런 비극은 사람 목숨의 무게를 휴지처럼 가벼이 여기는 정치군사 지도자들의 그릇된 생각과 욕심 탓에 일어난다. 무려 5천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던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을 비롯한 전승국은 도조 히데키(일본 육군대장, 전시 내각총리) 등 일본과 독일의 지도자들에게 두 가지 죄를 물었다. 하나는 지구촌 평화를 깨뜨렸다는 ‘평화에 대한 죄’crime against peace이고, 다른 하나는 숱한 민간인들을 마구 죽이고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는 ‘인도에 대한 죄’crime against humanity다. 일본 도쿄와 독일 뉘렌베르크에서의 전범재판에서 얘기된 이 두 죄목은 그 뒤로 전범 처벌의 근거로 자리잡았다.

지난 3월 헤이그에 본부를 둔 국제형사재판소(ICC, 2002년 출범)가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을 붙잡아 그의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체포영장을 냈다. 아프리카 수단 서쪽의 다르푸르 지역에서는 지난 2003년부터 6년 동안 아랍계 유목부족들과 아프리카계 흑인 원주민들 사이에 참혹한 내전이 벌어져 30만 명 가까이 죽고 250만 명의 난민이 생겨났다. 그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의 희생양이 됐다. ICC가 수단 대통령을 붙잡아 법정에 세우겠다고 나서자, 아랍계 국가들은 얼굴을 찌푸렸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박수를 쳤다. 미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알 바시르 대통령이 ICC에 맞서 싸우려면 (다시 말해 무죄를 입증하려면) 스스로 법정에 나와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ICC 가입 피하는 미국과 이스라엘
 

여기서 짚고 넘어갈 사항이 있다. 수단 대통령 알 바시르를 ‘전쟁범죄자’로 몰아 ICC 법정에 세우려는 미국은 ICC 협약(이른바 ‘1998년 로마협약’)을 비준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은 “세계 각지에 주둔해 있는 미군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잘못 기소될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협약 비준을 미뤄왔다. 그 배경에는 “실제로 미국이 통제하기 어려운 국제법정에 미국인이 피고로 서는 곤란한 일이 생겨선 안 되지…”라는 미국적 이기주의가 깔려 있다(2006년 레바논과 2009년 팔레스타인에서 저지른 전쟁범죄로 비난받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ICC 협약 미가입국이다). 수단의 현직 대통령이라도 ICC 법정에 세워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미국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는 바로 그들의 정치지도자가 ICC 법정에 서야 마땅하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강고한 동맹국이자 아랍권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ICC 법정에 서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미국의 지도자란 다름 아닌 이라크 침공에 관련된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딕 체니 전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 등이고, 이스라엘 지도자란 에후드 올머트 이스라엘 총리와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 등이다.

국제평화와 안보를 위해 만들어진 국제연합(UN)의 유엔헌장에 따르면, 모든 나라는 적국의 침공에 맞서거나(방어 목적)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거친 경우(집단안보 목적) 말고는 전쟁을 함부로 벌일 수 없다. 이런 조건 말고 전쟁을 벌인다면 일본의 도조 히데키처럼 ‘평화를 깨뜨린 죄’로 처벌받아야 한다. 부시 전 대통령은 지금부터 꼭 6년 전인 2003년 3월 전쟁에 관한 국제법을 무시하고(이라크로부터 공격을 받지도 않았고, 유엔안보리에서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제재한다는 결의안도 없이), 이라크를 침공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고통으로 내몰았기에 그 책임에 관한 비판을 비껴가기 어렵다.

이스라엘은 어떠한가.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까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민간인 거주지역을 마구 공격함으로써 1천4백 명에 이르는 사망자를 낳게 했다. 이는 제네바협정(1949년)과 이를 보완한 제1부속의정서(1977년)에 비춰볼 때 뚜렷한 전쟁범죄 행위다. 제1부속의정서는 “개별 민간인은 물론 시민 주거지역은 공격목표에서 제외된다“(제51조), “공격은 오직 군사적 목표물로 제한된다”(제52조)고 못박고 있다. 이스라엘 정치군사 지도자들에게 적용될 죄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큰 틀에서 보면 군국주의 일본과 나치 독일의 전쟁지도부에게 적용했던 ‘인도에 대한 죄’를 물어야 할 것이다.



“전범 처벌은 시효가 없다”
 

ICC의 법적 기틀을 마련한 ‘로마협약’ 제8조는 고의적으로 (적에게 공포를 심어줄 요량으로) 민간인 주거지역을 공격하거나 전투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은 전쟁범죄라고 밝히고 있다. 백린탄이나 집속탄을 비롯한 치명적인 무기를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것도 전쟁범죄다. 이스라엘군은 올해 초 팔레스타인 가자지역을 공격하면서 국제법에서 사용을 금지하는 백린탄을 마구 쏘아댔다. 올해 초 팔레스타인 현지취재 때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실이지만, 가자지구의 제일 큰 병원인 시파병원에선 지금도 백린탄으로 온몸을 다친 환자들이 누워 신음하고 있다. 

문제는 전쟁범죄자 처벌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1990년대 발칸반도에서 저질러진 전쟁범죄의 책임을 물어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전 유고연방 대통령)를 법정에 세웠듯, 현실적으로 미국과 이스라엘 전쟁지도부를 붙잡아 ICC 법정에 넘길 수 있을까. 대답은 안타깝게도 ‘아니오’이다. 그렇다고 전범자들이 두 발을 뻗고 편히 잠을 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쟁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국적과 시효에 관계없이 처벌돼야 한다”는 국제법상의 이른바 보편적 사법권(universal jurisdiction) 논리가 국제사회에서 힘을 얻어가기 때문이다. 미국 CIA가 배후에서 개입한 군사 쿠데타 뒤 17년 동안(1973~90년) 칠레에서 군사독재를 폈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1998년 영국 방문길에 붙잡혀 1년 가까이 곤욕을 치렀던 것도 하나의 보기다. 부시 전 대통령이나 올머트 이스라엘 총리 그리고 두 나라의 고위관료와 장성들이 전범재판 법정에 서는 날, 그 날이 바로 지구촌의 평화와 정의가 바로 서는 날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그런 날이 언제 오는가다. 그래도 우리는 역사의 진보를 믿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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