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4월 2009-04-01   1113

서평_참된 법치를 말하다 “떼법은 없다”




참된 법치를 말하다 “떼법은 없다”



박진규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


법치란 무엇인가? 우리 헌법은 ‘법치주의’를 선언하고 있으며, 언론이나 일상생활에서 ‘법치’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법치’라는 말이 어떠한 의미를 담아내고 있는지, 어떠한 과정이나 방법으로 작동되는지 물었을 때, 설명이 가능한 사회구성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법조인을 꿈꾸고 있는 나 역시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면, 이에 관해 명확히 답할 자신이 없다. 나는 그 이유가 법에 대한 무관심 또는 무지와 같은 개인적 문제에 있다기보다, ‘법치’의 실현에 누구보다 영향력을 지닌 정치인이나 법률가와 같은 권력층들의 법해석과 법집행의 왜곡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 ‘법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정부의 발언과 행동들을 보면 절망이 가득하다. 정부의 눈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법’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제거가 자행된다. 촛불을 든 시민들을 짓밟던 때에도,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구속할 때에도, 용산에서 시민의 생명을 앗아간 때에도 정부는 이를 ‘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 시도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법질서 확립’을 외치면서 ‘법치’를 포장하지만, 사실상 ‘법질서 확립’보다는 ‘법질서 파괴’에 가까운 지금의 상황이 ‘법치’의 의미에 대한 혼란을 준다.

법이 정권의 도구로 이용되어, 우리가 믿고 있는 ‘법치’와 정권이 말하고 있는 ‘법치’가 괴리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 불행한 시대에서, 이 책 『떼법은 없다』는 참된 법치를 말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은 ‘법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법치 파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실에 관한 문제제기에서 출발한다.

책에서는 촛불집회, 정치화된 사법부, 집시법의 위헌성, 사이버모욕죄와 같은 최근의 주요 이슈들을 통해 비교적 흥미롭게 ‘법’의 의미에 관한 대화를 가능케 한다. 또한 전관예우, 변호사 독점 체제와 같은 사법부의 고질적인 병폐라던가, 국민참여재판, 로스쿨, 공판 중심주의와 같은 키워드를 다루고 있기에, 나처럼 비법학도이면서도 법을 관심영역으로 둔 많은 젊은이들의 지적 능력을 보완할 수도 있다. 글쓴이들은 각기 다양한 주제와 내용을 다루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법’이란 국가가 아닌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입을 모은다. ‘법치의 본질은 법을 통해 정부권력을 통제하고 이를 통해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함에 있다’(본문 20쪽)는 한상희 교수의 설명이나, ‘법치는 권력을 위한 것도 경제를 위한 것도 아니며 오로지 주권자인 국민을 위한 것’(본문 133쪽)이라는 김창록 교수의 설명 등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법’의 의미를 요약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현실과 관련하여 ‘법치’의 의미를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법치’의 말로 포장되었으나 실상은 ‘법치 파괴’에 가까운 현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법치의 확립’이란 말은 정부가 국민에게 요구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아니’(20쪽)라거나, ‘법에 따라야 하는 것은 국민들보다는 그 국민들의 행복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기관, 그 중에서도 특히 법집행기관’(25쪽)이라는 설명은 법치 파괴가 자행되는 정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고, 그 비판의 적실성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글쓴이들이 다루는 ‘법’의 현실은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 ‘법치’의 현실과 미래를 비관적으로 느끼게 한다. 하지만 글쓴이들은 회의적인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회의적인 현실에도 불구하고, 의지에서만큼은 여전히 희망을 속삭이는 글쓴이들의 비판과 대안들은 “지식의 회의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라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민주화를 쟁취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법치’라는 말은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명시적 문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다가온다. 그런 상황에서 ‘법치’의 참된 의미를 찾고 싶다면, 이 책 “떼법은 없다”에서 7인의 글쓴이들과 함께 참된 ‘법’과 ‘법치’에 관한 대화를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벼랑 끝에 몰린 법치와 인권 구하기

떼법이란, 법 적용을 무시하고 생떼를 쓰는 억지주장 또는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불법시위를 하는 행위로, 이 신조어는 집단 이기주의와 법질서 무시의 세태를 보여준다. (네이버 백과사전)

‘떼법’이란 말은 어디서 왔을까? 참여사회연구소는 이에 대해 조사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1997년부터 2008년 5월까지의 신문기사를 대상으로 ‘떼법’이란 말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조사한 것이다.

단순 빈도수로 보면 한국경제(73회), 동아일보(50회), 중앙일보(37회), 조선일보(33회), 경향신문(23회), 한겨레(14회) 등의 순서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용의도를 살펴보면 경제지 혹은 보수지로 평가되는 신문은 ‘파업시위 비판’에, 한겨레·경향 등에서는 ‘정책우려’와 관련된 기사 혹은 칼럼에 많이 쓰임을 알 수 있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 수 없지만 같은 용어를 사용함에도 그 주체에 따라 다른 어법이 작동함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천하에 떼법은 없다. 억눌린 대중의 하소연이 있고 답답한 군중의 함성이 있을 뿐 떼법은 없다(한상희, “‘떼법’은 없다”에서).


“시위나 파업을 ‘떼법’으로 부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파업·시위는 떼쓰기에 불과하다고 보는 사용자의 시선’과 ‘헌법보다는 집시법이나 도로교통법이 훨씬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몰상식함’”(참여사회연구소, 2008/6/12)이 우리 사회에 ‘떼법’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떼법은 없다 / 김창록 외 / 해피스토리 / 2009.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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