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4월 2009-04-01   2291

문강의 대중문화로 보는 세상_’소녀시대’라는 시뮬라크르




‘소녀시대’라는 시뮬라크르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무대 위에서 예쁘고 깜찍한 소녀들이 앙증맞은 표정으로 노래를 부른다. ‘지지지지지~’. 무대 아래에서는 중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 환호하고, 집에서는 아저씨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이들의 춤과 노래를 보며 흥겨워한다. 이 소녀 아이돌 그룹의 이름은 ‘소녀시대’다. SM엔터테인먼트의 가장 잘 나가는 스타인 소녀시대는 오늘도 종횡무진 각종 연예프로그램을 휩쓸며 뭇 남성과 여성들의 눈과 마음을 흔든다.

  
‘소녀’들의 ‘시대’는 없다 

소녀시대라는 아이돌 그룹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깨끗하고 청순하고 예쁘고 깜찍한, 거기에다 키도 크고 노래도 잘 하는 10대 소녀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름이 의미하는 그런 ‘소녀시대’는 없다. 한국의 10대 소녀들 절대다수는 오늘도 사각형 교실에 앉아서 입시공부를 하고 있거나, 최근의 충격적인 기사들이 보여주듯 입시현실에 지쳐서 목을 매고, 또래 아이들에게 폭행당하고, 암매장을 당하고, 어른들에게 돈을 받고 몸을 판다. 지옥과도 같은 대학 입시와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 팔리는 자본주의 현실 속에서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거나 그 속에서 목숨을 끊거나 그 현실에 팔려다니는 소녀들은 있되, 지금 저 무대 위에서 뛰면서 예쁘게 노래하는 ‘소녀’들의 ‘시대’는 없다. 요컨대 소녀시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하나의 가장假裝, 장 보드리야르의 용어를 빌면 ‘시뮬라크르’다.

하지만 한국사회 10대들의 ‘시대’가 어떻든 간에 소녀시대는 분명 무대 위에서 계속 춤추고 노래할 것이고, 소녀시대가 사라지면 또 다른 소녀시대가 나타날 것이다. 핑클과 SES가 지나갔던 자리에 이들이 등장했듯이 말이다. 입시와 소비문화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10대들의 비참한 현실이라는 실재를 가리기 위해서 이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등병들이 자살할수록 우정의 무대가 필요하고, 어머니를 가정에 묶어둘수록 어버이날이 필요한 것처럼, 소녀들이 청순하고 발랄하게 뛰어놀 수 없는 시대일수록 ‘소녀시대’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녀시대라는 시뮬라크르는 판타지나 환상이라는 말로 바꿔도 무방하다. 소녀시대라는 환상은 소녀들이 갇히고 죽어나가는 실재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서로 보완적인 소녀들의 ‘상품화’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것은 ‘어른들’이다. 소녀시대라는 아이돌그룹을 기획하고 만들어낸 것도 어른이고, 소녀들이 입시지옥과 자본주의 현실 속에서 신음하는 현실을 만들어낸 것도 어른들이다. 떼를 쓰며 보채는 아이에게 ‘호랑이 물어간다’는 거짓말로 울음을 그치게 하는 부모처럼, 오늘 한국의 10대들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고 또 그 현실을 가리기 위해 환상을 만드는 이들도 어른들이다.

물론, 이 모든 ‘게임’을 통해 이익을 보는 이들도 역시 어른들이다. 소녀시대라는 그룹의 구성원들인 연예노동자들이나 소녀시절을 입시공부로 보내야 하는 10대 소녀들은 이 점에서 어떤 공통점을 가졌다. 이들 모두가 ‘상품화’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기획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합숙하면서 ‘회사’가 원하는 이익을 내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 소녀시대 팀원들이 말 그대로 ‘문화산업’에서 생산되는 하나의 상품인 것처럼, 10대 소녀들이 ‘착하게’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 역시 대학진학을 통해 자본이 원하는 능력을 갖춘 착한 노동자로 자신을 취업시장에 팔기 위한 상품이 되는 길고 험난한 과정이다. 모든 것을 교환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드는 힘을 가진 오늘날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렇게 10대 소녀들을 각기 다른, 하지만 서로 보완적인 상품들로 찍어낸다. 소녀시대가 부르는 노래를 음원으로 만들어 팔면서 시시때때로 핸드폰을 바꿀 것을 종용하는 거대 통신회사들의 끊임없는 광고, 입시준비의 효율성 면에서 학교를 따라잡아 아예 제2의 학교가 된 사교육 시장 등은 소녀들의 상품화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또 다른 ‘어른들’이다.



사라지지 않는 억울한 소녀들의 유령
 

텔레비전에서는 소녀시대가 예쁜 노래를 부르고, 학교와 학원에서 소녀들이 밤늦게까지 열심히 입시공부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실재는 때로 그 무시무시한 모습을 내비친다. 맞고 때리는 소녀들, 그걸 동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소녀들,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소녀들, 채팅을 통해 몸을 흥정하는 소녀들, 또래에게 맞아 죽는 소녀들에 관한 소식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소식들은 이를 언제나 ‘무서운 요즘 10대’ 운운하는 기만적인 제목으로 다루는 언론에 의해 전달된다. 시스템의 충실한 구성원인 주류언론은 이러한 소식들을 ‘충격적’인 사건으로 보도함으로써 동시에 이를 ‘예외’로 규정해버린다. 어려서부터 살인적인 경쟁과 비인간적인 학습량에 치어 살았던 아이들이 괴물로 클 수밖에 없는 당연한 사실은 논의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묵묵히 어른들에 복종하거나 어른들의 장단에 맞춰 노래하는 소녀들은 ‘정상’의 영역에, 이 현실에서 도태되어 죽거나 다치는 아이들은 ‘비정상’의 영역에 배치되며, 잠시 충격받은 여론이 잠잠해지는 순간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죽거나 다친 소녀들만 ‘억울’한 셈인데, 이들을 위해 어른들은 멋진 말도 준비해놓았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억울하게 죽은 이들은 ‘유령’이 된다. 〈햄릿〉에서도 〈장화홍련전〉에서도, 유령은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 출몰한다.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유령을 편안히 저승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현실의 꼬인 모순을 푸는 일이 필요하다. 눈을 감는다고 해서 유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녀시대’라는 시뮬라크라가 아무리 죽고 다치는 진짜 소녀들의 현실을 가린다고 해도, 10대를 괴물로 만드는 이 시스템이 아무리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억울한 소녀들의 유령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잊을 만하면 우리에게 나타나 현실의 모순을 상기시킬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1998년, 전설의 소녀그룹 ‘핑클’이 활동을 시작했던 그 해, 소녀들의 유령이 등장하는 〈여고괴담〉이 개봉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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