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4월 2009-04-01   1397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오픈특강_김제동과 함께 하는 ‘앎의 즐거움’




김제동과 함께 하는 ‘앎의 즐거움’



김혜민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줄무늬 티셔츠에 편안한 청바지 차림. 바로 참여연대에 강의를 하러 온 대한민국 최고 MC 김제동 씨의 복장이다. 너무나도 평범하고 수수해서 그가 강의실에 입실해서 강단으로 나왔을 때조차도 알아보지 못했다. 연예인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었을까? 화려한 비주얼에 요란한 등장을 예상했던 나로서는 적잖게 당혹스러웠다. 복장에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괜스레 궁금해졌다.



‘앎의 즐거움’, 도처에 널려 있는데


앎의 즐거움. 늦깎이 편입생이라며 장난기 어리게 자신의 소개부터 한다. 학력이란 단지 배우고자 하는 힘과 노력을 뜻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며 도처에 산재된 ‘배움’을 부지런히 주워나가는 사람에게는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은 ‘학력’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한다. 뭇 사람들은 앎, 배움이 어떻게 즐거움이 될 수 있냐고 궁금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김제동 씨는 그런 사람들에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피력한다. 예를 들어 웃음을 보자. 누군가를 웃기는 것은 개그맨의 전유물이라며 자신은 유머감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계를 긋는 사람들은 일단 웃음도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된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웃음의 의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적극적인 표현이라는 식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한다. 편안하게 생각하고,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는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해보시란다. 외국어도 마찬가지란다. 발음이 이상할까봐 단어를 다 모를까봐 두려워한다면 배움이 즐거울 리 없단다. 단어를 조금만 알아도 대충 핵심단어만 몇 개 알아들으면 다 알아들을 수 있고, 발음이 이상하더라도 오히려 외국인들에게 귀여움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부담 없이 재미있게 외국어를 공부할 수 있지 않느냐고 질문한다.


‘웃길 줄 알아서’라는 편견은 버려야

결국 배움은 소통을 위한 것이란다. 웃을 줄 알아서, 혹은 남을 웃길 줄 알아서 상대방과 사랑을 소통하고,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알아서 나라 간에 소통할 수 있게 되면 배움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리라.

그럼 소통은 왜 하는 것일까? 자기 자신과 외부 환경과의 충돌의 가능성을 최소화시키기 위함이 아닌가? 혹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환경과의 조율로 자신이 최대한 즐겁게 살기 위함이 아닌가? 그렇다. 배움은 즐겁게 살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파리의 센 강, 그 존재를 모르고 그냥 우연히 보게 되었다면 그저 작고 볼품없는 악취 나는 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강에 대해서 알게(배우게) 된다면 그 지식으로 인해 돈을 내고서라도 한 번쯤 보러 가줌직한 그런 가치 있는 강으로 다가올 것이다. 똑같은 강을 보고도 한 쪽은 인상을 찌푸리게 되고, 다른 한 쪽은 즐거울 수 있었던 비밀은 배움에 있었다.

이런 소통으로 즐거움을 누린 다음에는 소통 과정에서 충돌이 된 소위 소통의 모난 부분을 둥글게 깎아나가야 한다. 센 강은 배움으로 인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앎으로 인해 아무리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작고 볼품없는 악취 나는 강이라는 특성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우리나라 어느 시골에서 흐르는 이름 없는 강이 훨씬 멋있고 정이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소통의 모난 부분이다. 그럼, 이제 둥글게 깎아보자. 센 강을 깨끗하고 매력적인 강으로 만들기 프로젝트를 감행하자고 주장하든가, 이참에 센 강보다 훨씬 매력적인 우리나라 시골 강을 세계적으로 이름난 강으로 만들자고 주장을 하면 되지 않을까?



부드러움에 숨어 있는 강함을 캐낼 수 있다면

참여연대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다. 극좌파라는 비난의 글들과 함께 참여연대 회원은 회사에서 사원으로 뽑으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소식까지 접했다. 극우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극좌는 더욱더 아닌 나로서는 부담스러운 단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 단체에서 하는 활동도 한없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막상 참여연대 주최 강연을 들어보니 그들이 인터넷으로만 알았던 그런 융통성 없는 부담스러운 단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강연 제목을 보았다. ‘앎의 즐거움’이다. 알아 나간다는 것, 즐겁기만 할까? 하지만 즐거운 공간이어야 된다는 것. 그 속에서 참여와 연대가 더욱 빛날 것이라는 것이 이후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기대가 아닐까? 참여연대가 원하는 바, 추구하는 바는 나라의 근간이 되는 정부를 뒤흔들어 카오스 상태를 만들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힘 있는 자에게 상대적으로 힘없는 자의 처지를 대변하고 그들과 소통하여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데에 있음을 이 강연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좋다. 모두가 웃고 즐거워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데에 두 손 두 팔 들어 뜻을 같이 한다. 참여연대가 이 강연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앞으로도 부드러움 속에서 강함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많은 사람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참여연대에서 하는 다음 강연이 기대되는 것은 아마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김제동 씨의 티셔츠와 청바지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평범하면서도 수수한 옷차림으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친근하면서도 편안했다. 어느 옷차림보다 멋있는 옷차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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