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5월 2009-05-01   1541

이제훈이 만난 사람_세상을 바꾸는 여자들

“변한 게 없다고?
촛불 엄마가 기르는 아이들은 다를 거다”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


이제훈 <한겨레> 통일외교팀장
사진 김영광 사진가

이영숙(33) 씨와 박안나(29) 씨. 둘은 나이도 다르고, 사는 곳, 고향 출신 학교도 다르다. 한국사회에서 인맥을 따질 때 중시하는 어떤 기준으로도 공통점이 없다. 그런데도 둘은 지인이자 벗이자 동지다. 아마도 둘은 인테리어 전문 카페인 ‘레몬테라스’http://cafe.naver.com/remonterrace.cafe가 없었더라면, 지금껏 ‘서로 모르고 지내는 사이’였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난해 4월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조지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려고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약속하지만 않았어도, ‘서로 모르고 지내는 사이’로 여전히 살고 있을 터이다.

레몬테라스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문제를 고민하던 둘은‘세상을 바꾸는 여자들’세바여, http://cafe.naver.com/letemansei이라는 카페를 새로 만들어 여전히 ‘촛불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세바여’가 뭐하는 덴지 모르시겠다고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미사에서 백합을 받으신 적이 있나? 불교계의 시국법회에서 연등초를 받아보셨나? 그도 아니라면, 촛불집회 현장에서 아줌마들이 직접 만들어 나눠주던 주먹밥을 먹어보신 적이 있나? 이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촛불의 거리 어디에선가 세바여와 맞주쳤다는 얘기다.


벽지 구하려다 촛불시민 되다

그런데 영숙 씨와 안나 씨는 어떻게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촛불동지가 됐을까? 대답을 당겨 하자면, ‘벽지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다리를 놔줬다. 

영숙 씨는 2004년에 결혼했다. 줄곧 셋집에 살다가 지난해 4월 경기도 분당에 자기 집을 장만했다. 결혼 4년 만에 마련한 ‘내 집’을 멋지게 꾸미고 싶었다. 이사 준비하며 벽지와 장판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지난해 5월 레몬테라스를 찾았다. 벽지와 관련한 정보를 탐색하다, 카페의 ‘쫑알쫑알 게시판’(쫑방)에 들렀다가 아줌마들의 수다와 만담에 꽂혔다. 그리고 마치 채팅을 하듯 쉼없이 올라오는 쫑방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글에 ‘낚였다’. 그 뒤로 영숙 씨의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일상생활은 물론 가치관, 언론관, 정부관 등등이. 영숙 씨의 온라인 닉네임은 ‘빈곤마마’. 집에서 기르는 두 마리 고양이 ‘빈’과 ‘곤’의 엄마란 뜻이다. 

안나 씨도 벽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레몬테라스에 가입했다. 이 카페에서 그는 벽지를 거저 받았다. 어떤 이들은 벽지뿐만 아니라 된장, 김치 등도 덤으로 준다. 안나 씨는 카페의 나눔정신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한 얘기를 카페에서 나누게 됐고, 고등학생인 막내 동생의 급식 문제가 걱정돼 거리로 나섰다. 안나 씨의 온라인 닉네임은 실명과 같은 ‘박안나’다.

 
‘촛불 1년’, 절망은 없다

‘촛불 1년’이다. 어떤 이들은 지난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새로운 사회운동이라고 평가한다. 또 어떤 이들은 ‘촛불’은 뜨거웠지만, 그 어떤 가시적 성과물도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실패라고 규정한다. ‘촛불의 절망’이라는 말도 있다.

4월 21일 낮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3층 회의실에서 영숙 씨와 안나 씨를 만났다. 1시간 30분 남짓한 만남,  두 ‘촛불시민’은 쉼없이, 아주 즐겁게 얘기했다. 오랜 친구와 수다를 떨 듯이.

신문에 의견광고 내려고 세바여 만들어

-왜 레몬테라스에서 활동하지 않고 세바여를 따로 만들었나?

박안나(이하 박) 지난해 촛불 때 카페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는데, 소울드레서라는 카페에서 <한겨레>에 광고를 했더라. 서로 얘기를 하다가 누군가 ‘우리도 돈 모아서 광고하자’고 했고,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 했다. 그런데 레몬테라스에서는 모금을 할 수 없다. 회원이 워낙 많아 이상한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운영자의 허락 없이는 상행위도 할 수 없다(레몬 테라스의 회원은 4월 27일 현재 90만 3천 명을 넘어섰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을 만든 거다. 그러니 처음엔 순전히 돈 모으려고 만든 셈이다.

박안나 씨  

-세바여 일은 잘 됐나?

이영숙(이하 이) 세바여 첫 사업이 광우병 현수막 제작 배포였다.‘우리집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아파트 베란다에 내걸고 그러지 않았나? 세바여의 현재 회원이 3,500여 명(4월 27일 현재 3,588명)쯤 되는데, 이 가운데 90% 정도가 현수막 공동구매 때 가입했다. 이사갈 집을 멋지게 도배하려고 레몬테라스에 가입했는데, 도배는커녕 광우병 현수막 공동구매 진행하느라 이삿짐도 풀지 못한 채 상자만 가득 놓아두고, 정신이 없었다. 세바여 회원들은 세바여에만 가입한 분들은 거의 없다. 다들 다른 카페에서도 활동한다. 레몬테라스 말고도 82쿡(요리), 지우맘(육아), 스사모(스테인리스로 된 주방용품을 사랑하는 엄마들의 모임) 등 많다. 젊은 기혼 여성들이 주축이라, 육아 요리 등 생활 관련 카페가 상대적으로 많다.


<한겨레> <경향신문>에 100차례 넘게 의견광고 게재

-그래서 광고는 했나?

소울 드레서는 <한겨레> 1면 하단 광고를 했는데, 알아보니 너무 비싸더라. 그래서 모은 돈으로 <씨네21>에 330만 원짜리 광고를 하고, 남은 돈으로 뭐할까 하다, 의견광고를 1주일에 두 차례씩 내기로 했다. 나중엔 돈이 모자라 주 1회로 줄였고, 돈이 떨어질 때쯤 선거법 위반으로 걸렸다.(세바여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100회 넘게 의견광고를 실었다. 지금도 매주 1회 의견광고를 내고 있다. 애초 미국산 쇠고기 반대에서 시작된 그들의 의견 개진은 세상의 다양한 일들로 관심 영역을 넓혀갔다. ‘살인을 살인으로 덮으려 했던 죄, 그 죄는 무엇으로도 덮지 못하리. 우리는 용산철거민 참사를 잊지 않는다’ ‘왜, 굶느니 임시직이 낫다며~? 대통령직도 인턴제하면 안 되겠니?’ ‘함께 힘내요 MBC!’ 등등 셀 수 없이 많았던 짧은 의견광고의 끝에는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이라고 적혀 있었다.)

-무슨 일로 선거법을 위반했나?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경기도민 둘이서 말이다, 하하(박안나 씨는 경기도 구리, 이영숙 씨는 경기도 분당시 주민이다). <한겨레> 생활광고란(2008년 7월 25일치)에 ‘7월 30일은, 서울시 교6감 선거의 날!! 다들 알고 계시죠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 추신: 주말 나들이엔 경복궁이 최고래요∼♡’라는 광고 문구를 실었다. 당시 주경복 후보의 기호가 6번이었다. 그래서 인터넷에선 교육감을 ‘교6감’이라고 부르고, ‘주말엔 경복궁이요’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경기도민, 서울시교육감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다

세바여 운영자는 따로 있지만, 부운영자인 안나 씨가 광고 문구를 썼고, 세바여 총무 담당인 내가 광고 신청과 대금 납부를 했다. 그래서 선거법 위반 혐의자가 된 것이다. 처음엔 벌금이 1인당 300만 원씩 나왔다. 카페회원들이 바자회를 열어 도와주셨다. 어떤 분은 직접 담근 김치를 내놨고, 또 어떤 분은 직접 만든 비누와 케이크를 내놓으셨다. 벼룩시장도 열었고. 후원해주신 분들도 있고. 그렇게 500만 원 정도 모았다. 신문 의견광고 낼 돈을 모으려고 장바구니도 만들어 1,200개 정도 팔았다. 장바구니엔 ‘미국산 쇠고기와 GMO 제품을 불매합니다’라는 문구를 적었다.

-그 일 말고 개인적인 일로 재판 받아본 적 있나?

박, 이 없었다. 경찰서, 법원, 검찰청 같은 데 가본 일 없다. 그런데 지난해에 다 가봤다(웃음).

박안나(왼쪽) 씨, 이영숙 씨

-의견광고를 보니, 미국산 쇠고기와 직접 관계 없는 내용도 많던데?

의견광고를 많이 하다 보니, 매주 같은 내용으로 하는 것보다 그때그때 시사성 있는 내용을 담아서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조계사 앞에서 촛불시민 한분이 칼에 찔린 일이 있었는데, 사고라 보험 처리가 되지 않았다. 병원비가 엄청 나와 애를 먹고 있는데 그 분이 입원한 병원의 노조가 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지불 유예 조처를 이끌어냈다. 세상 일이 이런 식으로 서로 연결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촛불 집회에 열성이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처음엔 거창하게 나온 게 아니다. 머릿수 채운다 생각했다. 그런데 나와 보니 사건도 많이 터지고, 현장에서 고생하는 분들도 많고, 발을 끊을 수가 없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나오겠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누가 나올까, 하는 의무감이 있었다. 밤새우시는 분들 먹을거리도 챙겨드리고. 해가 지면 어딘가에 모이고, YTN, KBS 지지 방문도 하고. 그렇게 하루에 한군데는 가는 식으로 촛불집회 참석이 습관이 됐다.

이영숙 씨

촛불 이후, 방송 뉴스와 신문 기사에 대한 의심이 많아졌다

-촛불 1년, 남은 게 없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변화는 당연히 있다. 지난해 4월 26일 첫 집회에 200명이 왔다. 그런데 1주일 만에 1만 명이 넘었다. 그 자체가 중요하다. 미국에서도 다우너(주저앉는)소 도축 금지법안이 없었다. 미국의 사회운동가들이 줄기차게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한국에서의 촛불 이후 미국의 몇 개 주에서는 다우너소 도축 금지법안이 발의됐다고 한다. 그쪽 사회운동가들이 상당히 고마워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전에는 지식인들이 운동을 이끈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별다른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아이들 기르는 엄마들도 운동에 관심이 많고, 정보도 서로 나누고, 실제 실천도 한다. 당장 변화가 없어보일지라도 그 엄마들이 기르는 아이들은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촛불 이전과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에코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았는데, 전에는 여성문제를 사회 측면에서 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해 촛불 이후 여성 문제를 생활, 가정 측면에서도 생각하게 됐다. 촛불현장에서 여성들은 집회 참여자들이 배고프다면 먹이고, 춥다면 입히고, 아이들이 힘들어하면 함께 쉴 수 있게 했다. 전에도 살림의 가치를 낮게 본 것은 아니지만, 살림이 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촛불 이전엔 정치나 경제 등 시사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텔레비전 뉴스도 집중해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촛불 이후론 텔레비전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 신문을 관심 있게 보게 됐다. 또 전에는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 기사를 100%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지금은 한번쯤 ‘왜 저렇게 썼을까’ 되짚어보게 된다. 지난 1년간 당한 게 많아서, 의심이 많아졌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영숙 씨와 안나 씨가 웃으며 말했다. 세바여의 의견광고 싣기 운동의 최종목표는 이명박 대통령 퇴임 때 ‘축! 퇴임’이라는 광고를 내는 것이라고.

세바여엔 근엄함이 없다. 회의를 하더라도 꼭 결론을 내려고 하지는 않는다. 운영진 회의는 네이트온으로 하는데, 누군가 농담을 하면, 하던 얘기는 뒤로 미뤄두고 한참 수다를 떤다. 영숙 씨와 안나 씨는 말한다. “즐겁지 않으면 오래 할 수 없다”고. “싸우지 않고, 무력화시키기”,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귀찮게, 시끄럽게 하기.” 세바여의 모토는 흐르는 물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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