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1월 2010-01-01   1293

문강의 문화강좌_식모의 미소



식모의 미소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인기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세경과 신애를 눈여겨보게 된다. 아마도 이들이 시트콤 내에서 하고 있는 ‘식모’라는 역할이 주는 어떤 낯설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가사 도우미’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가 많지만, 그 표현은 ‘식모’(食母)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직접적인 솔직함을 결여하고 있다. ‘식모’는 말 그대로 ‘밥을 먹이는(하는) 여자’다. ‘식모’의 모(母)는 ‘어머니 뻘의 나이많은 여자’를 뜻하며, ‘주모’(酒母)나 ‘유모’(乳母)에서와 같이 ‘아주머니’를 의미한다. ‘가사 도우미’라는 말에서 ‘도우미’는 ‘돕다’라는 동사에서 나왔는데, 세경이가 하는 식모일은 순재네 가족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고용되어 월급을 받고 거의 모든 집안일을 책임지는 일이다. ‘도우미’라는 단어는 그래서 ‘고용-피고용’ 관계를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로 순화시키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하며, ‘식모’가 종일 담당하는 힘든 노동의 본질을 가리는 기능을 한다.


위험한 여자 혹은 착한 여자

한국 대중문화에서 ‘식모’들은 대개 부르주아 가정의 안락함을 위협하는 ‘위험한 여자’ 혹은 비운의 운명을 겪는 ‘착한 여자’로 재현된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와 <화녀>(1971)에 등장하는 식모는 부도덕한 주인에게 몸을 뺏긴 후 히스테리적인 망상 속에서 가족 전체에 대한 복수를 도모하다 결국에는 제거된다. 조선작의 소설 『영자의 전성시대』(1975)의 영자는 시골에서 상경해 부잣집의 식모가 되지만, 주인 아들에게 겁탈을 당하고는 집을 나와 여공이 되지만, 결국 사창가에서 한 줌의 재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공히 지방에서 상경한, 교육받지 못한, 신분상승 욕망에 불타는, 하지만 마음은 고운, 가난한 하층계급 출신이다.

2009년에, 그것도 시트콤에서 불현듯 등장한 식모 세경은 위 작품들에서처럼 진지하게 그려지지는 않지만, 역시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빚쟁이에 쫓긴 아버지를 기다리기 위해 서울에 온 하층계급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식모들과 다르지 않다. 갈 곳 없는 자신과 동생에게 머무를 곳을 주고, 일도 하게 해주면서, 거기에다 50만원의 월급‘까지’ 주는 순재네 가족에게 세경은 시간 날 때마다 ‘고마움’을 표하는데, 그건 세경과 신애의 마음이 착하고 본성이 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층계급 출신 식모는 자신의 ‘가치’보다는 주인의 ‘배려’만을 생각하는 ‘착한 사람’으로 재현됨으로써 고용관계 속에 깃든 ‘착취’들을 효과적으로 가린다. 욕망의 화신 아니면 착하고 순한 시골소녀, 이것이 주류 대중문화가 하층계급 여성을 묘사하는 이분법이다.


권력을 넘어서는 삶의 힘

하지만, 세경과 신애 자매는 단지 ‘식모’라는 이름으로 포괄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지붕뚫고 하이킥> 27회의 에피소드는 이를 잘 보여준다. 세경은 탁월한 계산능력을 발휘하여 숫자감각에 어두운 순재의 사위 보석의 기를 꺾고, 보석이 잘못 고른 고랭지배추를 감별하여 순재의 신임을 얻는다. 해리의 동화책을 보다가 구박을 당한 신애는 변비환자 해리가 내리지 않고 간 변기 속의 작은 똥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와 결합시켜 ‘애기똥’이라는 동화를 짓는다. 클라이막스에서 순재는 야채죽을 끓이던 세경을 불러 정산을 도와달라고 하면서 보석에게 세경 대신 죽을 끓이라 하고, 신애의 동화에 감동하여 눈물까지 흘린 해리는 신애 대신 멸치똥 따는 일을 하면서 신애에게 빨리 다음 편을 쓰라고 말한다. 순간적으로, 세경/신애와 보석/해리 간의 지위는 전복된다. 중요한 점은 세경과 신애가 가진 것이 단지 ‘재주’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 속에서 스스로 끌어올려 체화한 ‘능력’이라는 점이다. 세경은 전자계산기도 없는 산골마을에서 살면서 터득한 암산능력과 자연친화적으로 농사짓던 경험에서 나온 감별능력을, 신애는 동화책 살 돈이 없는 깡촌에서 자라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의 경험을 서사화하여 스스로 동화를 쓰는 감각을 발전시킨 것이다. 계산능력, 감별능력, 창의력과 함께 이들은 서로 도울 줄 아는 능력, 공감할 줄 아는 능력, 친화력, 독립심도 가졌다. 이 모든 것들은 역설적으로 이들이 힘들게 살아야 하는 주변부 하층계급이었기 때문에  갖게 된 능력이다. 이런 점에서 해리와 준혁, 지훈과 같은 부잣집 아이들이 세경과 신애의 능력과 감각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세경과 신애가 삶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이런 능력을 정치철학자 네그리와 하트는 ‘삶정치적 능력’이라는 개념으로 정식화했다. 반면, 타인의 삶의 에너지를 뽑아 씀으로써만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식모를 집에 두는 순재가족이 가진 힘은 ‘삶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갈 곳 없는 세경과 신애는 ‘삶권력’에 의해 흡수되지만, 이들이 가진 ‘삶정치적 능력’은 ‘삶권력’의 힘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점점 성장하고, 이 에피소드에서처럼 어느 순간 폭발하여 집안에서의 고용 관계를 역전시키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권력은 ‘삶정치적 능력’을 영원히 제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히스테릭한 욕망의 화신과 착한 순둥이라는 ‘식모의 이분법’을 뛰어넘은 곳에는 이들이 가진 진정 혁명적인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쓴 회상록에는 1848년 혁명의 와중에 귀족인 토크빌 가족이 가진 저녁식사 장면이 등장한다. 창밖 저쪽에서는 반란에 나선 노동자들을 막기 위해 부르주아지들이 쏘는 대포소리가 들린다. 가족들은 호화로운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얼굴에 공포의 기색을 떨칠 수는 없다. 그 순간 이들의 식사를 시중들던 젊은 하녀 한 명이 주인들의 공포에 떠는 얼굴을 보며 ‘살짝’ 미소 짓는다. 하층계급인 그녀에게 대포소리는 공포의 떨림이 아니라 승리의 미소를 낳는 것이다. 그녀는 즉시 해고된다. 풀리지 않은 현실의 모순이 유령을 낳는다면, 진정한 혁명의 유령은 바로 이 하녀의 미소 위에 존재한다. 세경과 신애가 가진 삶의 힘은, 언젠가, 무능한 보석과 해리가 가진 권력과 자본의 간교와 포악을 넘어서게 되어 있다. 순재네 가족 ‘지붕’을 ‘뚫’어버리는 강력한 ‘하이킥’처럼 세경과 신애의 ‘삶정치적 능력’이 정의의 폭력을 행사하는 날, 보석과 해리는 공포에 떨면서 세경과 신애의 자비를 구걸할 것이다. (여기서 ‘웃음소리’ 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