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2월 2010-02-01   1369

김용민이 만난 사람_”바람 그치면 누웠던 풀이 다시 일어납니다”


 




“바람 그치면 누웠던 풀이 다시 일어납니다”


정연주 전 KBS 사장

김용민 시사평론가  사진 김영광 사진가




이병순 씨가 KBS 사장이 되고 처음 단행한 개편에서 필자는 잘리고야 말았다. 그것도 오프닝 멘트 나가기 한 시간도 채 안 돼 말이다. 당시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된 담당 PD, “김용민 씨도 알겠지만”이라며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지인은 KBS 내에서 필자가 ‘친 정연주’ 인사로 분류돼 ‘아웃’됐다고 일러줬다.

졸지에 ‘친 정연주’가 된 필자는,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이명박 정권의 완력腕力에 의해 물러난 지 1년 4개월 된 시점인 1월 20일, 생후 첫 일면식을 하게 됐다. 7개나 되는 라디오 매체를 보유하고 있는 KBS 안에서, 무명의 게스트에 불과했던 필자를, 정연주 전 사장이 재임 중에 알고 있었을 리 만무했다.

이렇게 정연주가 전혀 몰랐던 ‘친 정연주’의 첫 인터뷰는 그렇게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3층 회의실에서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그 날 그 시점은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관련한 1심 재판 결과가 나온 때였다. 이명박 정권이 획책한 ‘언론탄압’의 또 다른 결정판이었던 사건, 상식에 준거해 결과는 ‘무죄’였다. 배임 혐의를 뒤집어썼던 정연주 전 사장과 마찬가지로. 이 화제로 운을 떼었다.



이명박 정부 2년, 언론 자유 지수도 급전직하

“언론의 두 가지 기능은 사실보도와 정책비판이다. 그런데 정책비판을 했다고 기소하는 게 온당한가. <PD수첩> 재판 결과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언론매체인 방송이 정부 정책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최근에 <PD수첩>의 4대강 사업 비판 보도를 두고도 징계를 논의하고 있다. 언론의 정상적인 역할을 문제 삼아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그러면서 정연주 전 사장은 ‘기막혀서 적어갖고 다닌다’며 품 안에 있던 수첩을 꺼내 펼쳤다.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 RSF가 지난해 10월 20일 발표한 세계 언론 자유 지수(순위)였다. 2006년 31위, 2007년 39위, 2008년 47위로 지속적으로 하락하던 우리나라. 이명박 정권이 ‘촛불’ 트라우마를 지우고 ‘멋대로 국정운영’을 본격화한 지난해에는 무려 22단계가 추락해 69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우리보다 앞선 나라 중에는 가나(27위), 트리니다드 토바고(28위), 수리남(42위), 파푸아뉴기니(56위), 이번에 대지진이 발생한 아이티(57위), 탄자니아·토고(62위)가 있었다. 평소 같으면 ‘우리보다 못 산다’며 우습게 알았을 나라들이었다. 이런 가운데 공·민영을 통째로 장악해 장기집권의 틀을 완성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나라 이탈리아(49위)도 우리보다 스무 계단이나 우월한 것으로 나와 충격을 더했다.

그러나 반성의 기미가 없는 이명박 정권이다. 최근에는 검찰과 이른바 ‘조중동’의 지원을 받아 사법부를 이념의 장으로 몰아가며 ‘문제적 판결’을 한 판사에 대해 마녀사냥을 일삼고 있다. 영원히 심판받지 않는 권력, 검찰과 ‘조중동’은 이명박 정권의 지원 속에 사법부 능멸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단계에 이른 듯하다.







“MB특보 출신 사장 밑에서 힘들겠지만 이겨낼 것”

화제를 KBS 문제로 돌렸다. 정연주 전 사장은 2008년 8월 이임사에서 “강제로 ‘해임’된 뒤 사장실에서 농성을 하면서 계속 싸워볼까 하는 생각을 절실하게 한 적이 있지만, 여러분들이 공영방송 KBS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접는다”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KBS는 ‘땡이李 뉴스’의 산실이 돼 버렸다. “이제 우리의 경쟁상대는 MBC나 SBS가 아니라 국정홍보방송인 KTV가 돼 버렸다”는 자조마저 KBS 기자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정연주 전 사장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일까. 정연주 전 사장의 답이다.

“그렇다. 떠날 때 후배들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표시했다. 지금은 어떠냐고? 달라진 것은 없다. 젊은 후배들이 지금 당장은 이명박 정권 혹은 MB특보 출신 사장 밑에서 매우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뿌리까지 뽑힌 것은 아니잖나. 바람이 불면 풀은 눕게 돼 있다. 그러나 바람은 항상 쌩쌩 불지 않는다. 바람이 잦아들면 풀은 다시 일어난다. KBS 후배들,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극복할 것이다. 자존심을 회복할 것이다.”

KBS에 들어가자마자 정연주 전 사장은 실무 제작진에게 자율권을 부여했다. 수평적 소통구조를 형성하기 위해서도 애썼다. 조직에는 창의의 바람이 불었다. 이 때문일까. 정연주 사장 대代의 KBS의 TV 프로그램은 시사 교양은 물론, 드라마 코미디에 있어서도 전성시대를 열었다. ‘땡전 뉴스’라는 오욕의 역사가 언제 있었냐는 듯 KBS 뉴스는 영향력뿐 아니라 신뢰도 면에서도 1위 자리에 올랐다. 적어도 현 정권과 수구언론들은 정연주 전 사장 시대의 KBS 콘텐츠 경쟁력에 대해서는 그 어떤 구실도 찾지 못 하고 있다.

제작자의 권한을 최대한 존중하다보니 뜻하지 않은 정치적 억측에 휘말리기도 했다. 2008년 5월 3일에 방송된 KBS 1TV <다큐 3일> ‘대통령의 귀향 – 봉하마을 3일간의 기록’ 편 제작을, 편집까지 완료돼 편성된 상태에서 보고받았고 한다. 청와대의 불편한 기류가 예견되는 대목이었다. 그때 “청와대(이명박 대통령) 편도 제작하는 것이 어떻겠나”라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물론 실무진은 난색을 표했다는 후문이다. 정연주 전 사장은 이 때문에 ‘정연주가 기획한 것 아니냐’는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KBS 수신료 인상은 ‘조중동’에 광고 몰아주기 위한 포석

KBS 수신료 인상 문제로 논의를 옮겼다. 김인규 현 사장은 물론, 정연주 전 사장도 재임 시절 ‘수신료 인상’을 추진했다. 그러나 현재 시민사회 내부에서는 KBS 수신료의 인상은 물론이고, 기존 납입분 조차 ‘안 내겠다’는 결기가 감지된다. 정연주 전 사장, 이 문제와 관련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할 수 없는 말이 있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할 수 있는 말’부터 들었다.

“KBS의 수신료를 올려준 다음, 2TV에게 배당돼 왔던 광고분을, 이른바 ‘조중동’이 선점할 가능성이 높은 종합편성채널 시장에 내준다는 설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설이 아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그렇게 추진하겠다며 공식화했다. 이 점에서 또 한 번, MB정권 인사들의 뻔뻔함을 느끼게 된다. 아니, 방송정책을 책임지는 사람이, 어떻게 공영방송의 공적재원인 수신료를 인상해 사기업 먹여 살리는 밑천을 만들어 줄 수 있는가.”

당연히 정연주 전 사장이 재임 시절 추진할 당시의 ‘수신료 인상’ 명분과, 지금의 구실은 완전히 다르다. 정연주 전 사장의 수신료 인상은 ‘공영방송 바로세우기’의 일환이었다. 수신료가 인상돼서 재원이 공영화되면 광고 비중이 축소돼 KBS는 권력은 물론 자본으로부터의 의존도를 줄이게 된다. “‘국민의 눈치’만 보는 KBS가 되게 하자” 이런 취지이다.

이렇게 되면 KBS가 건전한 공공재로서 방송의 청정지역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2008년 기준으로 KBS의 수신료 수입은 총수입의 41.9%를 차지한다. 광고 비중(40.9%)을 조금 앞서는 것이지만 일본 NHK(96.6%), 영국 BBC(73.2%)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현 집권 세력에 우호적인 언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현재의 ‘수신료 인상’ 논의와는 철학부터 다른 것이다.

그러나 정연주 전 사장은 시민사회의 ‘수신료 거부 움직임’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사실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은, 그러니까 ‘수신료 인상의 당위성’에 대한 대국민 설득은 김인규 현 사장과 KBS 구성원들이 공정성 회복을 통해 답해야 되지 않을까.



“조중동 종편의 조폭적 경영, 언젠가 드러날 것”

자연스럽게 ‘조중동’ 이야기로 넘어갔다. ‘조중동’이 방송시장 진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형국이다. 신문기자 출신으로서, 뉴미디어가 발호하는 시대에 대한민국 최대의 지상파 방송사 사장을 역임한 정연주 전 사장의 시각은 “한심하다”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KBS, MBC, SBS 외에 3개의 종합편성채널이 등장한다면, 한정된 광고시장에서 6자 모두는 뒤엉켜 혈투를 벌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중동’ 종편의 상처는 더욱 깊을 것이다.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방송 콘텐츠 제작은, 결국 사람이 하는 건데, 이걸 가능케 하는 ‘맨 파워’가 어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겠나. 절체절명의 상황이 오게 되면, 그러니까 쇠락의 기로에 서면, ‘조중동’ 종편은 숨겨왔던 조폭적 경영의 본질을 드러낼 것이다. 광고주를 협박할 것이다.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 줄 정치세력과 유착할 것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방송은 신문과 다르게 ‘재허가’라는 심사 과정이 3~5년마다 있다는 점이다. 불공정거래, 특혜, 정치적 편향성 시비. 이것만으로도 ‘조중동’ 종편은 혹을 달고 있는 형국이다. 혹 달고는 장래를 보장할 수 없다. 한나라당이 영구히 집권한다는 법이 없지 않는 한.”

그러면서 정연주 전 사장은 이점을 힘주어 강조한다. ‘방송이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다’와 ‘방송시장에서 신문하듯 경영하면 끝장난다’는 조언의 다름 아니다.

“지금부터 ‘조중동’을 끊임없이 압박해야 한다. ‘너희의 운명이 불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칫 존망을 걸어야 하는 사업에 뛰어 들겠나’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재허가 못 받는 상황에 이르러 ‘우리가 이 정도 매몰 경비Sunk cost를 들였는데 어떻게 탈락시킬 수 있느냐’라는 앓는 소리를 못 하도록, 다짐 또 다짐을 받아야 한다.”



KBS 바로 서는 날 위해 5년 활동정리

그렇다면 권력과 자본에 침식돼 가는 우리 언론의 구조를 뛰어넘을 대안은 없을까. 이런 가운데 정연주 전 사장이 일전에 제안한 ‘한겨레신문 뉴스전문채널TV’이 번뜩였다. 정연주 전 사장의 설명이다.

“악법인 미디어법은 반대한다. 그러나 우파 기득권 세력의 집권 연장을 위한 음모에 맞서는 대안은 모색해야 한다. 이들은 KBS를 NHK화하고, ‘조중동’에게 민영방송을 안겨주는 전략을 정권적 차원에서 세우고 있다. 이를 두고 내가 <한겨레> 후배에게 ‘이런 상황이 올 때 넋 놓고 있을 수만 없다.’‘조중동’에 종편 준다면 진보매체에 보도채널을 허가하라’며 정치투쟁을 벌여야 한다’라고 조언한 것이다.”

호사가들은 이를 두고 ‘정연주 전 사장이 자기 앉을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모양이다. 정연주 전 사장의 속내는 무엇일까. 그는 ‘내가 갈 곳은 KBS’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 법정신을 따른다면 KBS에 복귀해야 한다고. 1년 이상 임기를 남겨 두고 불법적으로 쫓겨났는데.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겠나?) 옛날에 했던 일 중에 잘했던 성과, 이를테면 실무 제작진에게 자율권을 부여한 것, 사내 소통구조를 수직에서 수평적 관계로 전환한 것, 지역할당제, 학력, 연령을 사전에 파악할 수 없는 신입사원 선발 면접제를 재활성화할 것이다. 아쉬웠던 점, 그러니까 나하고 생각이 같지 않았던, 나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이들, 이를테면, 노조, 그리고 사내 반대인사와 충분한 소통을 하지 못했던 점도 개선해보고 싶다.”

이 말에는 ‘업무 복귀’ 뿐 아니라 자신이 KBS에 이루려 했던 이상이 제대로 싹을 틔웠으면 하는 바람이 스며있다. 그러나 돌아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전망은 희박하다. 하지만 이런 불투명한 앞날과는 별도로, 정연주 전 사장은 KBS에서의 5년간 활동상을 소상히 정리하고 있다. ‘MB의 나팔수’인 KBS가 ‘국민의 방송’이라는 본령을 회복하는 그날, 이것이 KBS 바로 세우기의 준거가 되길 기대하며 말이다.

초년 기자이건만 신념을 포기할 수 없다며 ‘끝 모를 절대권력’ 박정희에 대항해 직장까지 잃은 젊은 기자. 미국으로 쫓기듯 떠났다가 국민주 신문 <한겨레> 창간과 함께 언론계에 복귀해 부패한 수구매체 ‘조중동’의 실체를 들춰내며 신문의 ‘기본’을 구현하려 한 언론 운동가. KBS에 들어가서는 관료적 구조를 콘텐츠 본위의 시스템으로 바꾸려 했던 경영인. 그리고 지금은 무지막지한 정권과의 한판 승부도 피하지 않는 투사. 내가 평가하는 정연주는 이러하다. 그래서 말한다. 나에 대한 ‘친 정연주’라는 낙인이 억울하지 않다고. 생각해보라. 권력과 함께 사라질 ‘친 김인규’ ‘친 최시중’ ‘친 이명박’같은 수식어보다 얼마나 멋들어지는지.


안내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2010년 봄학기 오픈특강

<언론과 권력, 시민주권> 정연주 전 KBS 사장 >>

·3월 4일(목) 저녁 7시~9시 참가비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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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김민수, 정세윤 간사  02-723-0580  people.psp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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