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2월 2010-02-01   1300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_사법부 독립된 판결 통해 국민 인권보장


사법부 독립된 판결 통해
국민 인권 보장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소위 시국사건들에 대한 일련의 법원 무죄판결로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강기갑 민노당 대표의 공무집행방해 등에 대한 무죄, 전교조교사 시국선언사건 무죄, MBC<PD수첩>의 광우병위험 쇠고기수입 관련프로그램 무죄가 논란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이 무죄판결들에 대해 처음에는 검찰이 거친 불만을 언론에 쏟아내며 나섰다. 무죄의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사실판단과 법리를 짜 맞춘 듯한 판결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검찰의 수장인 검찰총장도 이번 판결들에 대해 국민들이 많이 불안해한다는 식으로 거들었다. 이러한 검찰의 불만을 일부 언론은 받아쓰기하듯 빠뜨리지 않고 여과 없이 보도했다. 더 나아가 판결을 내린 판사들의 이념적 편향성을 거론하며 법원 내 ‘우리법연구회’가 뒤에 있다는 식의 왜곡보도를 했다. 그러자 이윽고 집권여당의 고위당직자들이 나서서 본격적인 정치공세에 들어갔다. 대법원장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지라는 식으로 윽박지르는가 하면, 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하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을 강화해 중요사건의 경우에는 특정판사에게 사건을 배당할 수 있게 하고, 정치적 성향이 강한 판사를 형사재판에서 배제하라고까지 주장했다. 그리고 집권여당은 당내 사법개혁특위 제2차 회의 후, 우리법연구회 해체 없는 사법개혁은 무의미하다며, 다시 이 단체의 해산을 특별히 요구하고 나섰다.

법원 판결에 대한 비이성적, 폭력적 공격들

국민의 여론을 선도하는 언론은 법원의 판결에 대해 비판을 가할 수 있다. 판사가 행사하는 재판권도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결에 대한 비판에도 분명 지켜야 할 한계가 있다. 사건의 내용과 본질에 대한 논리적이고 학리적인 비판이어야 한다는 한계가 그것이다. 그러나 법원 판결에 대한 집권여당, 검찰, 몇몇 언론의 비판은 사건의 본질이나 판결의 내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다. 우선 판사들의 학술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를 법원 내의 이념적 판사서클로 매도한다. 그러고 나서는 관련 판사들이 우리법연구회 소속이 아닌데도 ‘우리법연구회’를 들먹이면서 이 판사들이 내린 판결에 이념적 색칠을 가하고 판사들을 이념적 편향성에 젖어 정치판결을 내린 판사들로 매도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 정치적으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이런 선동에 자극받은 탓인지, 급기야 일부 보수시민단체들이 대법원장의 차에 계란을 던지고, 판결을 내린 판사의 집 앞에서 위협적인 시위를 벌이는 폭력적 사태까지 벌어졌다. 자신들의 입장과 다른 판결이 내려졌다고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이러한 근거 없는 비판과 비이성적 공격은 관련 판사들에 대한 과도한 명예훼손이자 정치공세이며 사법부 독립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위헌적 행위로서,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사법부 독립의 기본은 ‘법관의 독립’

이러한 파상적 사법부 독립 침해행위의 와중에 대법원장이 사법부 독립을 굳건히 지켜 나가겠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사법부 독립’이 판사들에게 어떤 판결을 해도 괜찮다는 식의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반발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사법부 독립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정치권력이나 법원상층부 등 법원 내외부 세력들의 판결 간섭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것으로 힘없는 국민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집권여당, 검찰, 몇몇 언론들, 대법원장과 판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보수시민단체들은 지금 분명 이 ‘국민을 위한’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고 있다.

사법부 독립의 출발이자 기본은 ‘법관의 독립’이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이 재판을 함에 있어 일체의 ‘법원 내외부’의 간섭이나 영향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헌법, 법률,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해야 한다는 ‘법관의 독립’을 중요한 사법운영의 원리로 선언하고 있다. 판결에 대한 간섭의 주체인 ‘법원 내외부’에는 우선 소송당사자가 포함된다. 그 사건 판결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소송당사자의 간섭이 일차적으로 사법부 독립 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이라는 것이 분쟁의 당사자인 소송당사자들의 주장을 듣고 중립적 제3자인 판사가 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판단자인 판사가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소송당사자로부터의 독립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해진다. 판결 비판에 제일 먼저 포문을 연 검찰이 바로 형사사건의 ‘원고’라는 ‘소송당사자’다. 패소한 소송당사자는 판결에 불만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심급제도가 완비되어 있는 나라에서 법원판결에 불만이 있으면 이를 항소이유서에 법리적으로 잘 기재하고 2심법정에서 더 열심히 법리공방을 벌여서 풀면 된다. 언론을 통해 감정적으로 표출하려 해서는 곤란하다. 이번처럼 검찰이 법원의 1심판결에 대해 자극적인 문구를 동원해 법원 판결을 폄훼하는 것은 소송당사자로부터의 사법부 독립 침해가 될 수 있다. 검찰은 법원 판결에 대한 불만을 언론에 의도적으로 흘리기에 앞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나 기소에 무리한 법적용은 없었는지, 각종 혐의사실들에 대한 입증을 다했는지,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중립성을 지키며 수사권이나 기소권을 국민을 위해 행사했는지를 조용히 되돌아봐야 한다.

언론이나 시민단체도 사법부 독립의 침해자가 될 수 있다. 이번처럼 사건 본질이나 판결의 내용에 대한 이성적 비판이 아니라 비이성적, 폭력적 이념공세로 나간다면 당연히 사법부 독립의 침해자가 된다. 집권여당과 같은 정치세력에 의한 사법부 독립침해는 과거 우리 사법부의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사법부 독립의 암흑기인 유신시절에 초임 판사까지 포함한 전국 모든 판사들의 임명장에는 대법원장의 이름이 아니라 대통령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사법부의 수장이 아니라 행정부의 수장이 모든 법관의 임명권자였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판사가 판결을 통해 행정부 등 외부세력으로부터 철저히 독립해 오직 헌법, 법률, 양심에 따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내는 판결을 내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헌법상 삼권분립 원리도 훼손

집권여당과 행정부는 일심동체다. 당정협의도 자주 한다. 따라서 집권여당 고위당직자의 사법부 때리기는 간접적으로 행정부의 사법부 흔들기가 될 수 있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대법원장에게 정치성향이 강한 판사들을 형사재판에서 배제시키라거나 10년 뒤 재임용시 판사들의 자질검증을 하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것은 집권여당과 행정부가 사법부의 사법권 행사를 좌지우지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판사에 대한 인사권도 사법행정권으로서 헌법에 의해 사법부에게 전속된 ‘사법권’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을 배출해 행정부를 장악하고 다수의석으로 입법부까지 거머쥐게 된 집권여당이, 사법부의 판결을 정치적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사법권 행사에까지 관여하려 하는 것은 헌법상의 삼권분립원리와도 충돌한다. 입법, 행정, 사법의 세 부 중 적어도 한 부는 집권정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어야, 사법부의 다른 두 부에 대한 적절한 견제를 통해 권력 간의 균형이 지켜지고, 절대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낼 수 있다. 결국 이번 사태야말로 사법권 독립침해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삼권분립원리의 과도한 훼손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MBC<PD수첩> 무죄판결에 항의하는 어버이연합,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 1월 21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이용훈 대법원장과 문성관 판사 사퇴를 요구하며 화형식을 하고 있다.

법원 외부세력, 노골적으로 사법부 독립 침해

이번 사건의 판결을 내린 판사들이 이념적 편향성을 가졌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사실은 이 판결을 비판하는 집권여당과 검찰, 몇몇 언론과 보수시민단체가 더 독한 이념적 편향성을 뱉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자문해보아야 한다. 최근의 법원 무죄판결들에 대한 이러한 비이성적 비판은 문민정부 이후 법원 외부세력에 의한 가장 노골적인 사법부 독립침해 시도로 사법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간 관료화된 사법부 구조 하에서 고위법관 등 법원 상층부로부터 ‘개별법관의 독립’이 우리 사법부 독립의 중요한 화두였다면, 작금의 사태는 다시 법원 외부의 정치세력으로부터 사법부 독립이 유린되는 상황이다. 우리는 사법부를 곧잘 ‘국민 인권보장의 최후보루’라고 부른다. 사법부야말로 독립된 판결을 통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는 마지막 언덕이다. ‘사법부 독립’은 법원의 재판이 권력의 부당한 힘의 행사로부터 영향 받지 않게 함으로써 힘없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번에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사건의 피고들이 정부 정책을 비판한 교사요 언론인이요 정치인 개인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표현의 자유와 같은 자유와 권리를 정치권력으로부터 무죄판결을 통해 지켜준 이번 판결들은, 오히려 사법부 독립이 지향하는 바를 실현한 판결들이다.

‘튀는 판결’은 모두 잘못된 판결인가

이번의 사법권 독립침해는 법의 해석과 적용이라는 재판과정이 다원성과 상대성이 인정되는 영역이라는 점을 일절 도외시하고 있다. 다종다양한 사실관계와 다의적인 법률해석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의 재판에서 판결에 하나의 정해진 정답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재판의 다원성과 상대성을 보완하고 법해석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심급제도와 상소제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2심, 3심을 거치면서 또 다른 법관들의 법 해석과 적용을 통해 그 사건에 대한 1심법원의 판결이 교정될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 그 사건이 대법원의 상고심에까지 올라간다면 대법원의 판결이 그 사건에 대한 최종적인 법적판단으로 확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법 해석과 적용의 다원성 및 상대성을 인정한다면, 소위 ‘튀는 판결’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복잡다기한 사실판단 위에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법조문을 적용하다 보면, 종래 유사사건에서의 대법원 등 다른 법원의 선판례와는 다른 새로운 법적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 언론은 이 ‘튀는 판결’을 이념적 편향성을 띠거나 세상 물정 모르는 불량판사들에 의한 ‘잘못된 판결’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현대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한다. 이 급변하는 복잡다기한 현대사회에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한 결과가 천편일률적이라면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다. 소위 ‘튀는 판결’이 나온다는 것은 법원의 판사들도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판결 속에 담아내려는 노력을 한다는 증거다. 법원도 정체되지 않고 항상 발전하는 건강한 조직이라는 반증이다. 지금은 ‘튀는 판결’이지만 가까운 장래에는 이것이 법원의 주류적 입장이 되고 대법원의 판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튀는 판결’을 적대시하는 일부 언론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도 하나의 사건 판결에서 여러 반대의견들이 곧잘 개진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반대 의견을 내는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은 최고법원의 재판관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튀는 판결’을 내리는 불량판사들이란 말인가.

물론 법원의 대다수 판결이 튀는 판결이어서는 곤란하다. 법원의 법적 판단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무너지고 나아가 법치주의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법적 안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들 중 일부가 ‘튀는 판결’이고, 이 ‘튀는 판결’이 법원 전체에 신선한 자극제가 된다면 오히려 ‘튀는 판결’은 권장되어야 할 바다. 다른 판사들로 하여금, 법의 해석과 적용에 또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던져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튀는 판결’은 사법 발전을 위한 일종의 촉매제이다.

오히려 우리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로서 사법부 독립을 극도로 침해받던 군사정권 시절에는 이런 ‘튀는 판결’이 전무했음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권력이 주시하고 있는 소위 시국사건에서 무죄라는 ‘튀는 판결’을 내리면, 그 판사는 법적 소신을 버리지 않고 용기를 낸 대가로 법복을 벗어야 했다. 심지어 법복을 벗고 나서도 정보기관의 계속된 감시와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는 증언도 있다. 이런 이유로 당시 많은 판사들은 소위 ‘무난한 판결’만을 내리곤 했다. 유신의 헌정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끌려온 수많은 시국사범들에게 가차 없이 유죄판결과 함께 중형이 내려졌던 이유다. 그런 ‘무난한 판결’을 내려야만 판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고 대법관 등 상급법원의 판사로 승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의 ‘무난한 판결’은 그래서 ‘보신용 판결’이었다.


‘사법부 독립’의 수혜자인 국민이 나서야 할 때
     

이런 ‘무난한 판결’과 비교해봤을 때, 오히려 이번의 ‘튀는 판결’은 칭찬을 들어야 할 판결들이다. 무죄판결을 내려서 그 판사들이 개인적으로 얻을 것이 뭐가 있었겠는가. 지금은 군사정권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관료화와 권위주의의 잔재가 적잖이 남아 있는 우리 법원사회다. 이런 법원사회에서 ‘튀는 판결’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오히려 곱지 않은 시선이 모아질 뿐이다. 담당판사 자신도 일종의 ‘왕따’를 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승진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튀는 판결’로 얻을 개인적 이익은 없고 몇몇 불이익만 예견될 뿐인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무죄판결을 내린 판사들은 적어도 개인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대의를 쫓은 판사들이다. 그 대의가 무엇이겠는가. 일체의 다른 것들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오직 헌법, 법률, 양심만을 생각하며 독립된 재판을 통해 힘없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헌법상의 ‘사법권 독립’의 요구를 따른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독립된 재판의 수혜자는 국민이다. 이제 수혜자인 국민이 나서서 사법부 독립을 지켜주어야 한다. 더 이상의 침묵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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