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2월 2010-02-01   1171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_수정 세종시, 한국사회 기본가치와 믿음 훼손



수정 세종시, 한국사회 기본가치와 믿음 훼손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세종시 문제로 나라 전체가 반년 가까이 몸살을 앓고 있다. ‘수정안에 대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어느 야당대표의 발언까지 나와 있는 상태다. 수정안을 관철시키기 위한 개정입법안이 제출되어 있어 국회에서 여야 간 큰 격돌이 예상되고 있다. 격돌은 이후의 지방선거, 대선 등으로 이어져 세종시가 일으킨 파장은 계속될 것 같다. 2010년 1월 11일 정부가 발표한 수정안에 대한 여론동향을 보면, 수정안에 대한 지지(40% 후반대)가 원안에 대한 지지(40% 초반대)보다 약간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신규정책이 아니고 또한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선전하는 것에 견준다면, 수정안 지지는 그렇게 높지 않다. 관건이 되는 충청지역의 원안 지지도(60% 대)는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여론 동향은 세종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입장이 사실상 반반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이 상태는 양 입장이 단순히 팽팽히 맞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용과 호랑이가 서로 싸우는 용호상박龍虎相搏의 형국을 말한다. 수정안이 발표된 이후, 보수단체들은 ‘원안은 나라 망치는 대못이다’라고 주장하는 반면 진보단체들은 ‘수정안은 국민 사기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같은 사안을 두고 극과 극의 해석과 주장이다. 여기엔 여야의 정치적 대립에다 좌우의 이념적 갈등마저 겹쳐 있고, 그 저변엔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서로에 대한 적대감만 키우는 한국식 ‘증오의 정치’가 짙게 깔려 있다. 이러니 일반 국민들은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세종시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정부의 주장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아닌지를 잘 모른다. 세종시 논란은 또 다른 논란을 낳으면서 한국사회 전반에 ‘적대와 갈등의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있다.



정부, 마녀사냥식 담론조작의 전형

세종시 논란을 일으키는 진원지는 놀랍게도 정부다. ‘경제학자의 입장으로 볼 때 세종시는 비효율적’이라는 총리 지명자의 발언으로부터 시작한 ‘세종시 수정론’은 대통령이 공중파 방송을 통해 국민과 약속했던 세종시 원안을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접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권력적 담론으로 부상했다. 그와 함께 시계바늘은 8년 전으로 돌아갔다. 그 8년 동안 선거공약으로 제시된 세종시는 국가정책이란 틀에 담겨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어갔다. 그러나 세종시 반대론자들은 이 과정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8년 전 ‘수도이전반대’의 눈으로 세종시 문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해석을 위한 자료는 정부가 제공하고 있다. 원안대로 추진하면 세종시는 유령도시가 되고, 또한 수도와 정부의 분할로 국정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은 총리 등 정부 측 인사들의 입에서 나왔다. 온갖 국가기구를 동원해 이들은 전 정권이 마련한 ‘세종시 원안’의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인 양 선전하고 있다. 국가에 의한 ‘마녀사냥식 담론조작’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권력자는 뒤에 뒷짐을 지고 서 있고, 출세에 눈먼 엘리트 관료들이 나팔수가 되어 떠들고 있다. 여기에 보수적 성향의 일부 지식인과 언론들이 장단을 맞추어 흥을 돋우고 있다. 도대체 왜 이들은 세종시 원안을 이토록 증오하고 폐기하려고 할까?



1960년대부터 추진된 국가중추기능 이전 통한 국토균형발전론

세종시는 공모를 통해 선정된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시)’의 새로운 이름이다. 행복시는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소재 행정부처를 옮겨 복합기능을 갖춘 중추거점으로 조성되는 신도시를 말한다. 세종시 원안은 이러한 내용을 일체의 정책으로 갖추고 있다. 도시기본계획에서 세종시는 ‘국가균형발전기능’, ‘지역혁신기능’, ‘도시서비스기능’의 3대 기능을 부여하도록 되어 있다. 이를 위해 2,200만 평의 땅 위에 인구 50만 명을 수용하되, 6개 도시특화권역(중앙행정, 문화국제교류, 첨단지식기반, 대학연구, 의료복지, 도시행정)을 2030년까지 3단계로 나누어 조성토록 되어 있다. 나랏돈 8조 5천억 원이 투여되고 국회에 계류 중인 ‘행복시건설특별법’과 ‘세종시지위법’이란 두 가지 특별법이 뒷받침한다. 이러한 내용의 세종시 원안은 수년간에 걸쳐 수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한 여러 개별연구와 각종 계획수립을 통해 마련된 것이다.

공공정책이란 측면에서 세종시 원안은 크게 나무랄 게 없다. 문제는 원안을 어떻게 하나하나 긴 호흡으로 실행으로 옮겨내느냐다. 그러나 세종시 반대론자들은 원안의 정책내용에 관한 것보다 ‘정부부처(9부2처2청) 이전’이란 개별 쟁점을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부처 이전이 수도분할만 초래할 뿐이고 균형발전에도 별반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액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들이 실제 중요하게 꼽고 있는 이유는 정부기관이전을 통한 행복시 건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충청권의 표를 얻기 위해 공약으로 내걸었던 ‘행정수도이전’의 편법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 같은 문제제기가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주장이 단순하고 편향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가령, 공약을 통해 정책 의제가 제기되는 것은 한국정치의 현실이다. 국가중추기능을 옮겨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국토정책은 이미 1960년대부터 추진되어왔던 바다. 공약으로 제기 된 후 세종시는 이미 국가정책으로 수년간 추진되어왔던 것이다. 이 모든 측면을 무시한 채 반대론자들은 수도분할이란 점만 주장하고 있다.

결국 특정 정파적 관점에서 원안을 바라본 결과, 원안의 모든 것이 왜곡되고, 또한 합리적인 공공정책으로 풀어갈 가능성이 봉쇄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세종시 유령도시론’이다. 정부기관을 옮겨봤자 공무원 몇 명만 따라가니 끝내 유령도시가 된다는 주장이다. 세종시는 행정을 중심으로 하지만, 문화, 산업, 복지 등의 기능을 골고루 갖춘 도시가 되도록 되어 있다. ‘정부기관 이전’은 복합거점기능을 이끌어내는 ‘마중물pumping water’이다. 마중물을 이용해 중추거점이 될 도시기능을 끌어들이고 구축하는 것이 곧 행정중심의 세종시를 건설하는 이유이고 전략이다. 반대론자들은 이 모든 가능성을 일거해 부인한 채 뜬금없는 유령도시론으로만 몰아가고 있다. 



수정 세종시, 졸속으로 만들어진 관제 기업도시

그렇다면 세종시 수정안은 바람직할까? 답부터 준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 정부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종전 약속을 깨고 국가백년대계가 될 수정안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던 만큼 정부가 2010년 1월 11일에 발표한 세종시 수정안은 뭔가 획기적일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뚜껑을 막상 열어보니 세종시 수정안은 그러한 기대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현 정부는 8년 전 ‘수도이전반대’란 정치적 입장으로 세종시와 무관한 신도시 하나를 만드는 방안으로 축소해놓았다. 어떠한 논거도 이유도 분명히 제시하지 않고, 국민적 논의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정부는 이러한 결정을 일방적으로 내렸다. ‘세종시 발전방안’이란 이름으로 발표됐지만 수정안은 원안을 결코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수정안의 도출과정이 졸속 그 자체다. 수십조 원이 들어갈, 그래서 국가미래를 좌우할 복잡한 내용의 세종시 사업을 불과 2개월 만에 뚝딱 바꿔놓았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9부2청2처’란 정부기관 이전의 백지화를 사전에 정해놓고,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기업들을 끌어들여 자족 신도시를 만드는 것으로 땜질했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능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무늬이고, 실제 내용을 보면 수정 세종시는 기업도시의 특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정 세종시는 정부가 만드는 기업도시, 즉 관제 기업도시에 불과하다.

세종시는 100여 명의 전문가들이 4개의 입지후보지를 비교 평가해 선정한 행정도시로서 적합지이지 기업도시로서의 타당성이 검증된 곳이 아니다. 이러한 수정 세종시가 과연 성공할까? 성공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를 수정안에서 전혀 찾을 수 없다. 그 핵심이 바로 수정안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족용지 확대와 이를 근거로 한 고용창출 규모 및 방식이다. 제대로 들여다보면 대부분 틀리거나 불확실한 전제에서 도출된 것이다.

수정안에서 정부는 기업과 대학을 유치해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주는 게 지역주민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수정안은 원안대로 하면 8만 3천 명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전체 인구도 기껏 17만 명밖에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원안에는 분명하게 고용창출인구가 25만 명으로 2차 산업에서 12%, 3차 산업에서 88%를 창출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필요한 용지 면적도 근거를 가지고 소상하게 산출되어 있다. 원안에서 창출하고자 하는 고용은 고차의 서비스업, 즉 21세기 산업경제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를 위한 토지이용도 친환경적인 집약적 방식(콤팩트 시티 모델에 근거)을 전제하고 있다. 일인당 자족용지면적도, 정부가 발표한 9.7㎡가 아니라, 실제 16.4㎡에 달해 수도권 13개 신도시 중에서 가장 많은 광교보다 무려 1.3배 많다.

근거도 없는 자족용지 부족을 내세워 용지를 3배로 늘렸지만, 이는 곧 수정안의 모든 문제점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원안에서는 자족기능 확충사업이 2016∼2020년 사이에 집중되도록 되어 있다. 반면 수정안은 행정기관이전을 백지화하는 대신 기업유치를 통해 자족기능을 확충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그 결과 세종시 주력사업은 전국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기업도시, 혁신도시, 경제자유구역 사업 등과 중복·경쟁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유치를 위해 파격적 유인책을 제시함에 따라 세종시는 다른 지역의 투자기회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국토의 중추거점이 되어야 할 세종시가 오히려 다른 지역의 발전을 위축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늘어난 용지를 채우기 위해 제공하는 파격적인 유인책은 결국 국민 혈세를 대기업들에게 안겨주게 되는 꼴이 된다. 땅을 개발하지 않고 저가로 공급하는 원형지가 바로 그러하다. 정부는 산업용지 기준으로 원형지 공급가격을 평당 36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제시하고 있다. 산업용지라 하지만 생활필수시설 등의 설치가 허용되기 때문에 원형지의 실제 조성원가는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첫마을 사업에서 공급한 원형지 가격(유상기준) 평당 145만 원과 정부가 현재 공급하고자 하는 원형지 가격 36∼40만 원 간의 차액은 약 100만 원에 이른다. 이를 전체 자족용지(450만 평)의 60%에까지 적용하면 총 차액은 2조 7천억 원에 이른다. 이 차액은 대기업에 돌아가는 ‘유인책이란 이름의 특혜’다.



21세기형 미래도시 버리고 20세기 산업화도시로 뒷걸음


그렇다면 엄청난 특혜를 받고 들어올 대기업들이 기대만큼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답은 결코 그렇지 않다. 대기업들은 총4조 5천억 원을 들여 22,954개의 일자리를 만들 것을 약속하고 있지만 투자비 1억 원당 0.164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험치를 적용해 계산하면, 실제 고용 규모는 7,000여 개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이라도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주면 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이 또한 수정안은 전혀 보장해주지 않고 있다. 가령, 첨단녹색산업단지 부지 중 대기업이 전체의 85.6%를 차지하는 반면 나머지 14.2%는 중소기업의 몫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좁은 부지에서 중소기업은 전체 고용자 중 53.0%인 25,906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근로자 당 부지면적으로 치면 대기업의 1/6에 해당하는 부지면적에서 이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함에도 지역민들을 대거 고용할 중소기업을 유치하고 지원하는 방안은 수정안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밖의 자족기능 유치지구에서 만들어낼 일자리 전망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대학, 연구기관, 글로벌유치지구 등은 모두 일자리 창출의 효과가 큰 사업이거나 조직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수정안에 제시되어 있는 일자리(자족거점기능을 통해 총 8만7천여 개)는 실제 1/2 내지 1/3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래의 세종시는 2030년 이후를 전제로 해서 건설할 계획이었다. 소득이 높아지고, 고령화가 급속히 이루어지며, 고차의 서비스업이 경제를 주도하는 2030년 이후, 누구나 와서 살고 싶어하는 도시가 진정 거점도시가 되고 자족도시가 된다. 원안의 세종시는 지금 수정안에서 제시된 것과 같이 대기업 공장을 끌어들여 생산직 고용을 늘리고, 이를 중심으로 도시의 자족성이 구현되는 20세기 기업도시 모델을 전제로 했던 게 아니다. 수정안은 원안에 담긴 21세기 도시에 대한 꿈을 버리고, 산업화 시대에나 걸맞은 과거식 도시를 결국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수정안대로 추진되어 성공하면 할수록 세종시는 많은 ‘성공의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 같다. 그 대표적인 예로 수정 세종시가 결국 초광역화된 수도권 외곽도시로 전락할 공산이 너무나 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들어올 사람들의 정주성향, 내부정주여건의 불비, 교통인프라에 의한 탁월한 외부접근성, 협력 및 부품조달망, 기술 및 산업 네트워크, 기업본사와 현지공장 간의 관계 등을 고려해본다면, 세종시는 수도권 외곽도시가 되어 수도권과 충청권의 연담화만 촉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국토 상에 수도권-충청권이 하나로 묶어지는 거대한 블랙홀이 나타나게 된다. 세종시 원안은 이러한 국토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수정 세종시는 원안이 가고자 하는 길을 거꾸로 가고 있다. 건설의 목표, 도시의 성격이 모두 바뀐 ‘가짜 세종시’를 만드는 데 줄잡아 60조 원(공공+민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과연 이렇게 많은 돈을 들어 수도권 턱밑에 당초 목적과 성격을 상실한 가짜 세종시를 과연 건설해야 할까?

정부의 일방적인 선전과 달리, 수정안은 원안을 결코 능가하지 못하고 있다. 정권의 권력적 의지에 의해 원안이 끝내 폐기되고 수정안이 현실화되면, 이것이 가져올 한국사회에 대한 파장은 깊고 오래 갈 것으로 보인다. 그 파장은 원안의 폐기에서 비롯된다. 세종시 원안은 ‘9부2청2처’의 중추행정기관을 옮겨 국토의 거점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국가균형발전을 이끌어내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원안에는 그래서 한국사회의 발전, 국가에 대한 신뢰, 민주주의의 준수 등 한국사회의 기본가치에 관한 강한 믿음이 담겨 있다. 때문에 수정안은 원안의 단순한 폐기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기본가치와 믿음에 대한 훼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세종시를 ‘효율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을 망각한 것의 필연적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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