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2월 2010-02-01   1720

아주 특별한 만남_이옥숙 회원



밴쿠버 아줌마의 거침없는 하이킥

이옥숙회원


글 이경휴 수필가,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

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

                                        ‘2월’ 오세영




벌써 2월, 입춘立春이 문턱에 섰다. 바람은 여전히 칼날을 세우지만 그 칼끝에선 따사로운 햇살이 반짝인다. 유난히 많이 내린 눈과 기세등등하던 동장군은 물러날 줄을 모르더니 어느새 때가 되니 절로 떠날 채비를 한다. 가고 오고, 또 새롭게 오가고, 더불어 슬픔과 기쁨도 함께 찾아드는 게 세상사이다.

일만 명이 넘는 시민이 서울광장 조례개정 청구인 명부를 서울시에 제출했고, ‘남일당 천사’ 다섯 분이 드디어(?) 이승의 몸을 떠났고, <PD수첩> ‘광우병 보도’에 무죄 선고가 내려졌으니 꽁꽁 얼어붙은 민주주의에 봄날은 어디쯤 오고 있는 것일까.

2월은 무언가 매듭을 짓고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달, 짧아서 아쉬운 달이기도 하다. 이런 때 짧은 만남으로 긴 여운을 남기고 떠나간 사람이 있다. 2월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 캐나다 밴쿠버에서 날아온 참여연대 초창기의 ‘산증인’인 이옥숙(54세) 회원.

햇살 좋은 오후,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났다. 소리 내어 잘 웃고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넉넉한 품성의 전형적인 ‘대한민국 아줌마’요, 짧은 머리에 짧은 털코트, 갈색 롱부츠 차림의 ‘밴쿠버 아줌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양손에 들고 있는 카세트테이프를 만지작거리며 크게 웃기부터 시작한다.

 
강남 아줌마에서 밴쿠버 아줌마로

“나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 어쩌지?” 하면서 이미 이야기보따리는 난전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기분 좋게 웃는 웃음소리에 금방 사람들이 진을 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 ‘그때 그사람’들인 P·L처장들이 반갑게 얼굴을 내민다. 서로 가정사부터 근황에 이르기까지 큰언니가 친정나들이 온 분위기이다. 단박에 오늘은 인터뷰라기보다 큰언니의 입담에 오감이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았다. 편안하게 오늘은 듣고 있을 테니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주문하자, 상기된 표정이 1997년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회원가입 시기가 그때이다.

“내가 할 이야기가 이 네 개의 테이프 속에 다 들어 있는데, 시간 나면 한번 들어보셔요.”

<여성시대>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 낡은 테이프에 참여연대의 역사가 들어있을 것 같아 흥미로웠다. 테이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회원가입 동기부터 말했다.

“세칭 저는 강남아줌마잖아요. 그런데 주변 친구들은 세상일에 도통 관심이 없더라고요. 그 땐 이미 우리나라가 IMF사태로 나라가 휘청거렸는데도 자식과 남편밖에 모르더라고요. 답답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렸죠. 마침 참여사회 아카데미라는 강좌가 있어 용산에 갔더니 박원순 변호사님이 환대를 해주셔서 신바람이 났죠. 시민단체 강좌에 강남아줌마가 나타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고무된 분위기였죠. 변호사님이 여쭸어요, 어떻게 여길 왔느냐고?”

그 시절로 돌아가듯 수줍게 말을 했지만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당시 그가 그런 자리에 나타난 사실 하나만으로도 시민운동의 횃불을 든 셈이었으리라. 다시 또박또박 분명하게 말을 이어갔다.

“정부와 기업은 은행을 사금고처럼 흥청망정 돈을 끌어다 쓰고, 부도가 나면 은행 빚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떠맡기고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잘 살고. 이런 나라가 어디 있어요? 분개했는데 참여연대가 국민의 입장에서 그 책임을 정부에게 묻는다는 게 참 신선해서 왔다고 하니, 박 변호사님 마음에 쏙 들었던가 봐요.”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정확한 판단이었지 싶다. 1997년 나라는 거덜이 났지만 책임지는 위정자는 아무도 없었고 국민들에겐 금모으기를 배후에서 조종하며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던가. 돌반지, 금목걸이, 금가락지는 쏟아져 나와도 금괴 종류는 나오지 않았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마련이다’라는 경구는 단지 교육용 금언인지 예나 지금이나 답답할 따름이다. 다시 화제는 참여연대 용산시절로 돌아갔다.








부패방지법 국회통과, 가장 기억에 남아

이야기를 하며 그는 연신 웃음을 참지 못했다. 돌이켜보니 아름다웠던 시절의 치기 어린 순간이 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모양이었다. 시민운동을 하겠다고 나온 사람이 ‘명품’으로 휘감고 무대에 서듯 화장을 하고 나섰으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수밖에. 하지만 처음 낸 그 마음이 도道를 이룬다고 했기에 ‘처음처럼’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덩달아 웃었지만 그의 진정성엔 조금도 의심이 가지 않았다.

“이 테이프는 저의 참여연대 활동기예요. 그때 했던 일들을 문화방송 <여성시대>에 투고해서  읽혀졌던 편지글이에요. 전 많은 사람들에게 참여연대를 알리고 싶었어요. 제목도 ‘참여연대의 회원이 되어주셔요’로 시작해 참여연대의 활동, 조직, 회원모임 등을 자세히 적어서 보내면 모두 채택되더라고요. 심지어 참여연대에는 좋은 색싯감, 신랑감도 많고, 주례를 서주실 훌륭한 분도 많다고 쓰기도 했어요. 담당 PD가 저를 시민필자로 소개해주어서 <한겨레> ‘흐린 후 맑음’란에 글도 썼지요. 그러니 얼마나 제가 신바람이 났겠어요?”

사랑과 재치기는 숨길 수가 없다고 하듯이 참여연대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짐작이 갔다. 옆에서 이야기만 들어도 그 시절의 열기에 후끈 몸이 달아올랐다. 넋을 잃고 듣다가 비로소 첫 질문을 드렸다. 활동 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여럿이 있지만 그래도 제일 즐겁고 기억에 남는 일은 부패방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일이죠. 국회에 입법청원을 내고 시민로비단으로 국회의원 사무실을 방문하여 부패방지법의 필요성을 얘기하는 거죠. 당시 한 사람당 국회의원 10명이 배정되었죠. 나중에는 시민로비단 모두가 어깨에 띠를 두르고 국회를 드나들었죠. 그렇게 해서 부패방지법이 탄생된 거죠. 일이 끝나면 사람들과 어울려 순댓국 먹으러 가고. 참 잊을 수 없는 순간이죠. 그리고 그 맛도.”

기억을 환기시켜주는 음식으로 순댓국이 떠오른 모양이다. 함께 침을 꿀컥 삼켰고 몸은 저절로 그에게로 바짝 다가갔다. 이야기는 안국동 시절로 흥미진진하게 접어들었다.



원조 안내데스크

“압구정동 집에서 안국동까지는 15분 거리니까 거의 매일 출근했지요. 그냥 왔다 갔다 하면서 자원활동 할 일거리를 찾았죠. 간사들은 할 일이 많아 전화 받을 틈도 없더라고요. 외부에서 전화는 수없이 많이 오는데 일일이 간사들이 상대하긴 역부족이더라고요. 박 변호사님은 시민단체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하게 전화를 빨리 받나 싶어, 암행어사처럼 각 단체에 전화를 하여 그 횟수를 집계하고 있었어요.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자원활동가들이 교환수처럼 일단 전화를 받아서 거를 건 걸러서 간사들에게 연결해주면 어떨까 생각했죠. 대환영이었어요. 저를 비롯하여 한참 열심히 일했던 아줌마 지원활동가들이 교환수로 앉았죠.”

‘아, 안내데스크라는 자리는 이렇게 시작되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여전히 거침없는 화법으로 말과 웃음, 손짓이 삼위일체 되어 좌중을 압도했다. 그야말로 에너지원이자 활화산이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듯했다.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으면 오가는 사람 모두가 수고한다고 인사를 해요. 얼마나 기분 좋고 신났던지. 또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냈죠. 기금마련이 문제인 것 같아서 알뜰시장 노점상을 열었죠. 아마 98년인 걸로 기억하는데, 첫 회에 160만 원어치를 팔았어요. 그 당시론 큰돈이었죠. 한 달에 한 번 하다 두 번까지 했어요. 이게 <아름다운 가게>의 출발점이 되었죠.”

안내데스크에 이어 <아름다운 가게>로까지 치달았으니 시민운동의 전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접고 이민을 떠났을까?

“금융업에 종사하던 남편이 명예퇴직을 했어요. 생활도 단조롭고 이 나라 이 땅에선 의욕이 생기지 않는 거예요. 친구들도 호주로 뉴질랜드로 이민을 많이 떠났고 남편도 캐나다로 가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럽시다, 하고 떠났죠. 그때가 2000년 말이었어요,”

이젠 캐나다 이야기가 나오나 싶었는데 여전히 참여연대에 대한 그리움을 쏟아냈다.

“초기에는 늘 인터넷에 접속하고 살았어요. 송년회, 후원의 밤 등등 행사가 뜨면 가슴이 막 두근거리는 거예요. 내가 가야 하는데, 내가 안 가면 송년회가 안 될 텐, 하며 걱정하다가 그 시기에 맞춰 네다섯 번 왔던 것 같아요.”

같이 웃는다고 잠시 대화가 중단되었다. 이런 열혈회원이 있을까. 변함없는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왔으며, 처음 참여사회 아카데미 강좌를 듣기 전에는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두루 궁금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인혁당 사건이 있었죠. 물론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사법살인이었죠. 그때 경기여고 교사였던 저의 선생님도 희생되었어요. 감수성 예민했던 그 시절, 신문에 발표되는 것만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신문 스크랩이 취미인데 그것을 하다 보니 자연히 행간의 진실도 어렴풋이 보이더라고요. 그 힘을 확대한 곳이 참여연대인 셈이죠.”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시민운동이 꽃 피기 시작하는 시기에 국가재정의 위기로 우리는 시민운동의 인재 한 사람을 잃은 셈이었다.



북한 올림픽 선수단 돕겠다 나서다 ‘은따’

바다를 건너간 시민운동가의 열정은 어떠했을까. 자연스럽게 교민사회의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굉장히 보수적인 사회예요. 평통(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을 정권의 선전도구로 이용하더라고요. 고국에서 명사가 와서 하는 강연이라 가서 들었더니, 좌파가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는 반공 강연이고, 세계여성대회를 개최한다면서 영부인을 초청해 오고……. 그야말로 코드가 맞지 않더라고요. 이번 동계올림픽 후원도 저는 북한선수단을 돕겠다고 하니 교민사회에선 ‘은따’ 수준이죠. 북한도 같은 동포인데 여전히 반공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니 제 운신의 폭이 좁죠. 그래도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뜻이 맞는 지인들이 더러 있어 함께 책을 읽고 토론도 하는 독서회 활동을 해요. 주로 종교와 철학에 관련된 책을 읽는 모임으로 다음카페에 ‘길벗’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됩니다.” 

이어 문제는 역시 ‘돈’이라며 후원을 위한 기부금 마련 일화를 웃음소리와 함께 펼쳤다.

“이 털코트는 중고매장에서 세일할 때 2만 5천 원에 샀어요. 캐나다에서 생활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한국의 기초생활수급자 정도지만 불편하진 않아요. 선진국답게 국가 혜택이 면밀히 개인에게 닿아 있어요. 의료비 거의 없죠, 식품비 싸죠, 도서관·체육시설, 중고매장 기가 막히게 잘 운영되어 있죠. 몇 해 전에 이와 비슷한 코트를 입고 와서 한 여성단체의 후원금 마련 바자회에 내어 놓았더니 그 자리에서 50만 원에 팔리더라고요. 이에 용기를 얻어 신발, 가방, 옷들을 사서 바자회에 내어 후원금을 대신했어요. 또 밴쿠버에 오는 사람들에게 우리 집을 이용케 하여 후원금으로 기부해요. 기회가 있으면 저희 집을 이용하셔요.”

기부금 마련을 위한 전방위홍보이다. 든든한 후원자가 해외에까지 있다니 절로 힘이 솟았다. 듣는 즐거움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인터뷰인데 그의 휴대전화가 연신 바쁘게 벨소리를 낸다. 내일 출국을 앞두고 겨우 짬을 낸 시간이니 오죽 마음이 급하랴. 아쉬운 마음으로 마지막 질문을 드렸다. 참여연대를 위해 한 말씀 부탁드렸다.

“제가 활동할 때 회원이 14,000명 정도였죠. 물론 이 정권이 들어서고 시민운동단체가 어려워졌지요. 이럴 때일수록 회원들이 늘어야 힘을 받는데, 그 힘을 모으기 위한 시니어들의 활동을 기대해요. 신입회원 모임에 시니어회원들이 가서 손도 잡아주고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주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일몰을 보는 느낌이었다. 순간 ‘철들지 않은 전국어버이’ 때문에 역사가 퇴행 중인 장면이 떠올라 씁쓸하기도 했다.

자리를 정리하며 특유의 웃음소리와 함께 밴쿠버 텃밭에 뿌릴 배추와 상추, 열무 씨앗이라며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두부 만들어 먹으려고 샀다는 간수까지. 씩씩하고 건강한 삶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웃음으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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