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7월 2010-07-01   944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남북관계, 화해모드에서 불안 병색 파행까지



남북관계, 화해모드에서 불안 경색 파행까지


서보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코리아연구원 연구위원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처음부터 경색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경제인 출신의 대통령에게 비즈니스 마인드가 있기 때문에 실리 위주의 대북정책이 전개될 것으로 보았다. 실제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면서 실리주의를 국정운영 원리로 삼았다. 북한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북남 경제협력이 발전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생산적이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전개해가겠다고 밝혔고, 이를 국민적 합의와 원칙있는 남북관계 위에서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가 밝힌 대북정책은 대선 과정에서 제시된  ‘비핵·개방·3000’ 구상이었다. 이는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로 북한의 정상국가화, 남북 경제공동체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 구상은 ‘북한이 먼저 ~하면 남한이 ~해주겠다’는 조건부 혹은 선후관계를 논리로 하고 있었다. 이때 북한은 동반자라기보다는 남한이 베풀거나 이끌어가야 할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북핵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다른 상호 관심사가 논의될 수 있다는 안보 중심의 정책 방향을 띠고 있었다.


MB 정부의 남북관계 딜레마

‘비핵·개방·3000’ 구상은 두 가지 딜레마를 안고 있었는데 그 하나가 연계 딜레마의 문제이다. 북의 핵 포기와 대북 지원 협력이 맞물려 있는 형국이다. 이명박 정부의 연계전략은 남북간 일정한 신뢰가 조성되어 있고 상호 이해관계가 대칭을 이룰 때 실현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남한의 새 정부가 당국간 대화나 기존 합의사항의 이행, 아니면 적어도 대북 지원도 없이 북한에 먼저 행동을 요구했으니 북이 의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또 이명박 정부가 요구한 선 핵포기는 북의 입장에서 볼 때 대북 안전보장, 경제지원, 관계정상화 등 동시행동원칙에 합의한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북은 핵문제를 자신의 안전보장과 직결된 것으로 보고, 그것은 남한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미국과 해결할 문제로 파악하고 있었다.

두 번째 딜레마는 단절의 딜레마인데, 이명박 정부가 전임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엄격한 차별성을 기하려고 집착하면서 초래할 수 있는 높은 기회비용의 문제이다. 이명박 정부는 ‘평화번영 정책’을 추진해온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부정하며 출발했다(소위 ABR, Anything But Rho).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전 두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퍼주기’라고 비난하며 보수여론을 동원했다. 그런데 그것은 대선용만이 아니라 현 정부여당의 대북정책 수립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퍼주기=북한정권 연장=안보 불안이라는 등식은 대북정책의 일관성과 초당적 협력의 필요성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대북정책을 평화·통일정책의 맥락이 아니라 국내정치의 소용돌이에 빠뜨려 버렸다는 비판을 초래했다.

북한은 2차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인 10·4 공동선언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이명박 정부는 6·15선언, 10·4선언의 ‘정신’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이행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북은 대화에 응할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이명박 정부는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북은 남북간 합의사항도 이행하지 않고 자신의 안전보장과 직결되는 핵문제에 대해(조지 W. 부지 행정부도 실패한) 선 핵포기를 요구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기 시작했다. 2008년 3월 24일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북핵과 개성공단사업을 연계하겠다고 한 발언에 북은 개성공단에 있는 우리 당국 인원의 전원 철수를 요구했다. 급기야 4월 1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처음 거론하면서 대통령을 “역도”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비핵·개방·3000’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2009년 미국에서 새 행정부가 등장하자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을 새로 단장할 필요성을 가졌는지 모른다. ‘비핵·개방·3000’이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으로 변경되었다.

변경된 데에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로 평화협정 체결, 관계정상화, 경제지원 등 소위 일괄타결 접근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의 선 핵포기를 추진해온 이명박 정부에게는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랜드 바겐은 이명박 정부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편승한 것이 아니라 동맹관계를 활용하여 미국의 신 대북정책을 견제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랜드 바겐 역시 북핵문제 우선 해결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비핵·개방·3000’과 동일하다. 다만, ‘비핵·개방·3000’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그 대가로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경제 중심의 단계적 전략이라면, ‘그랜드 바겐’은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는 대신 국제협력을 통해 경제지원과 안전보장을 한꺼번에 해주겠다는 일괄타결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그랜드 바겐은 미국을 남한의 대북 압박정책에 끌어들여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물론 북미대화와 6자회담을 어렵게 해 북한으로 하여금 도발적인 상황 돌파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2009년에 들어서면서 북한은 서서히 남북관계와 한반도 주변 정세를 악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1월 17일 북한은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남한과 “전면적인 대결태세로 진입했다”라고 발표했고, 같은 달 30일 대남 접촉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남북간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한 합의의 무효화를 선언했다. 3월 들어서는 한미간 ‘키 리졸브’ 훈련을 이유로 개성공단 출입을 3차례나 제한하였고 급기야 4월 5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그리고 5월 25일 북은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선 핵포기 압력 → 북한의 핵능력 강화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과 2009년 2차 핵실험은 비슷한 상황에서 일어났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채택되자마자 미국에서는 소위 BDA 사태를 연출해 북한에 금융제재를 가하고 나섰다. 북한은 부시정부의 압박을 보면서 9·19 공동성명을 이행할 미국의 의지를 의심하면서 벼랑끝전술로 나왔다. 또 북한은 2008년 1년 동안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켜보면서 남북관계가 발전할 가능성이 희박하고, 오바마 행정부 역시 한미동맹관계의 틀에 얽매여 전향적인 대북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보고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핵문제를 우선으로 대북정책 방향을 수립했지만 그것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 2008년 북핵 검증의정서 채택을 둘러싸고 나타난 갈등에서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신고한 핵프로그램의 검증 방법에 시료채취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면서 검증 자체를 불발로 만들어버렸다. 당시 북한과 미국 사이에 합의한 검증방법은 현장방문, 문건 확인, 기술자들과의 인터뷰였는데 우선 이 방법을 추진하고, 필요시 추가 방법을 논의할 대화의 모멘텀을 살리는 방안은 무시되었다. 검증 방법상의 입장 차이가 검증 자체를 불발시키고 북핵은 2차 핵실험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북핵시설 검증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힐C. Hill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의 힘겨운 노력은 미국내 강경파와 한국과 일본 정부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북미간 핵검증 관련 평양 회담이 진행되고 그 이후 합의에 따라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와 핵 불능화 재개가 진행되고 있을 때,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 가진 남북 당국간 회담인 군사실무회담은 대북 비난전단 살포 문제로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의 북핵정책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을 꼽을 수 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유엔 안보리는 이를 규탄하고 북한을 제재하는 결의 1718호와 1874호를 채택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제재와 병행하여 대화 재개를 통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았다. 2009년 7월 18일 캠벨K. Campbell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한국을 방문해 미국의 대북정책이 대북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투 트랙 전략임을 밝혔지만, 한국 등 동맹국들의 승인이 없는 한 포괄적 패키지를 북한에 제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 북미대화의 시기와 논의 범위를 협의하며 미국의 대북접근 속도를 조절하려 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보다 더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대북 제재와 함께 한반도 비핵화를 진전시키려는 적극적 자세와 창의적 노력이 미흡했다는 점이다.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하거나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도록 하는 독자적 노력이나 미국과의 공동의 이니셔티브를 전개하지 않았다. 이점 역시 2006년 10월 9일, 1차 북핵 실험 이후 제재와 대화를 병행한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이상 두 가지 사례는 이명박 정부가 최우선 순위를 매기고 있고 북한이 가장 민감해한다는 점에서 남한정부의 대북 압박은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원인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무익한 대북제재

2008년 7월 11일 남측의 금강산 관광객 고 박왕자 씨가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남북간 불신이 높아지는 가운데 발생한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더욱 얼어붙었다. 이명박 정부는 진상 규명, 재발방지 대책, 신변안전보장 조치 마련을 관광 재개의 선결 과제로 제시해왔다. 이에 대해 북한은 작년 8월 17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 위원장의 면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조치에 따라 관광에 필요한 모든 편의와 안전 보장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관광 재개 분위기가 마련되었다고 판단했다. 현-김 면담 이후 북한은 당시 합의한 군사분계선 육로통행 제한 조치 철회와 이산가족 상봉에 나섰다. 또 김대중 대통령 국장에 특사 조문단이 내려왔고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했다. 연말에는 해외공단 남북 공동 시찰도 있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은 재개되지 않았다. 남한 정부는 금강산 관광 재개의 조건을 제시했지만 그와 별도로 관광 재개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는 의심스러워 보였다. 지난 2월 8일 개성에서 열린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실무회담이 결렬되자 북측은 후속 접촉을 하자고 제안했으나 남측은 거부했다. 정부는 금강산 관광 비용이 김정일 정권에 통치자금을 제공하는 결과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현금이 들어가는 일을 쉽게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인권에도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발언을 시작으로 현정부는 유엔 인권기구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을 상정하고 통과시키는데 적극 참여해왔다. 정부는 일부 민간단체의 대북 비난 전단 살포를 묵인하고 북한인권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당국간 대화가 중단되어 있는 상태에서 안팎에서 북한을 비난하는 일에만 전념하는 것이 북한인권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인권의 보편성을 내세워 북한인권을 거론하지만 이스라엘 같은 명백한 인권국에는 침묵하거나 대내 인권상황을 악화시키는 상태에서 북한이 압박에 의해 인권개선의 길로 나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자기도취에 다름 아니다.


압박 속에 실종된 남북관계 비전

이명박 정부는 남측 민간인 피살, 북한의 핵실험, 그리고 천안함 사태 등 다양한 계기로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 열중하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효과를 가져오는지 궁금하지만 남북관계 단절이 남한에게도 경제적, 외교적 손실을 가져오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남북관계 단절로 금강산, 개성공단, 그밖의 북한 지역에 투자한 시설 운용과 사업권 행사도 중단되었다. 금강산 사업 중단은 강원 지역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외 국가신인도 하락과 국방비 증액이 국내 민간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천안함 사태 이후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대한 외교적 고립과 금융 제재를 추진하고 있지만 중국, 러시아 등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한미 간 합의된 전시작전통제권을 여론 수렴 없이 연기 요청하면서 미국으로부터 통상압력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북한은 중국과의 경제협력 강화로 제재를 피해나갈 것이다. 집권 3년차인 이명박 정부는 압박 위주로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현정부의 대북정책 목표는 비핵평화구조와 남북경제공동체 실현이다. 그러나 정책수단이 정책목표를 훼손시켰다면 의당 정책수단을 수정하고 정책결정자를 교체하고 그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 붕괴, 압박에 대한 기대효과와 같은 주관주의를 배격해야 할 것이다. 집권 후반기를 달려가는 이명박 정부가 그 막바지에 이르러 남북관계를 되돌아볼 때 어떻게 자평할 지 벌써 궁금하다. 천안함 사태 이후 북풍몰이로 선거에 활용하다가 실패했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을 압박하려고 다방면으로 ‘국제공조’를 추진하고 있는데, 세계화 시대에 남북 화해와 상생을 통해 평화와 통일을 준비해야 할 때 이 무슨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인가. 남북관계는 특정 정치세력의 관념을 시험하는 무대가 아니라 민족대계를 준비하는 협력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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