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7월 2010-07-01   1199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민주시민은 어떻게 애국하는가



민주 시민은 어떻게 애국하는가?


장은주 영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천안함 사건’ 관련 참여연대의 유엔 안보리 서한 발송이 뜬금없는 애국심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참여연대가 비-국민적이고 비-애국적인 행위를 했단다. 정말 그럴까? 도대체 애국심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떻게 애국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애국심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 애정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 나라와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다.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까지 바쳐가며 그 나라의 번영과 안녕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다. 이는 일단 매우 자연스럽고 순수한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애국심은 현실에서 곧잘 왜곡되곤 한다.


민족·국가주의적 애국심 VS 민주적 애국심

우리 현대사에서 애국심은 무엇보다도 민족주의와 결부되어 이해되었다. 이는 일단, 구한말 ‘애국계몽운동’ 같은 데서 보듯이, 외세의 침탈에 따른 당연한 반작용이었다. 그러나 충분히 역설적이게도 일본의 제국주의는 우리 사회 성원들 사이에 애국심을 일깨우면서 사람들이 바로 그 일제가 발전시킨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애국주의만이 애국심이 표출되는 유일한 형식인양 이해하게 만들고 말았다.

놀랍게도 그런 애국주의는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일제 메이지 천황의 ‘교육칙어’를 모방해서 만들었고 한 때 이 땅의 모든 학생들이 강제로 외워야만 했던 ‘국민교육헌장’은, 우리 시민 개개인의 존재 의의가 무엇보다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는 데 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시민들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충성을 다 할 것을” 매일 매일 다짐하면서 살도록 강요받았다.

이 애국주의는 개인에 대해 절대적인 우위를 지니는 국가라는 가치 실체를 가정한다. 그리하여 그 국가의 이익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당연시한다. 나아가 개인이나 집단의 차이와 다양성을 무시하고 억압하며 ‘우리’ 아닌 ‘남’을 배제하도록 이끈다. 심지어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은 지고한 도덕적 의무이기까지 한 것으로 여긴다.

그런 애국주의가 발휘하는 부정적 영향력은 너무도 컸다. 그래서 가령 유승준이나 박재범 같은 아이돌 스타들조차 희생양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또, 예컨대 ‘황우석 사건’ 같은 데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심지어 스스로를 민주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그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들곤 했다.

그동안 그런 잘못된 애국주의를 극복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개인의 자율과 다양성의 가치가 여기저기서 강조되었고, 우리 시민들이 국민국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세계 시민’으로서의 책임감과 헌신의 필요를 더 많이 깨달아야 한다는 호소가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식의 노력들만으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애국주의 광풍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나아가 무조건 애국심을 경원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도 의문이다. 월드컵 응원 열기 같은 데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애국심의 발현조차 무턱대고 위험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평가해서는 곤란할 것이고, 지난 ‘촛불 항쟁’에서 시민들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외쳤던 일의 의미도 되새겨 보아야 한다.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애국주의와는 전혀 다른, 매우 건강하고 바람직한 애국주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름 아닌 ‘민주적 애국주의’가 그것이다. ‘(민주)공화국’의 이념을 정초했던 민주적-공화주의적 전통에서 발전해 온 이 애국주의는, 우리가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단순히 그 나라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곳이라는 사실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시민정신의 발휘, 민주공화국의 진정한 애국심

우리는 어떤 봉건 왕조의 ‘신민’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시민’이다. 민주공화국은 법과 ‘공동선’에 기반을 두고 다름 아닌 우리 시민들이 주권자가 되어 우리 모두의 자유와 존엄을 보호하고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치공동체다. 여기서도 애국심은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라는 괴물 같은 실체에 무조건 헌신하는 것이 바람직해서가 아니라, 바로 오직 그런 민주공화국 안에서만 우리가 자유와 존엄을 지키고 실현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애국심은 혈통이나 민족 같은 것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나의 ‘조국’, 곧 내 삶을 자유롭게 하고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실현하게 해 주는 특별한 삶의 양식에 대한 일체감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라사랑과 자기실현이 내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 그 어떤 국가주의나 전체주의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민주적 애국주의는 국가의 신성화나 절대화를 거부한다. 당연히 ‘국익’ 같은 것이 처음부터 분명하게 주어져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주공화국의 공동선은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참여하는 심의를 통해 비로소 찾아내고 구성해 내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신의 조국을 무조건 우월하다고 치켜세우거나 다른 나라를 깔보거나 하지도 않는다.

물론 민주공화국의 이상은 아직 충분히 우리의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우리 시민에게 민주공화국의 이상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한다는 책무를 지우고 그 이상을 실현해 온 민주적 전통과 그 성취의 가치를 계승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시민은 자신의 나라가 시민의 평등한 자유와 존엄을 보호하고 실현하는 데서 잘못하는 것은 없는지, 권력자들이 부패하고 타락하지는 않는지, 사회의 다수가 부당한 횡포를 부리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시민 불복종’도 감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강요된 의무여서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시민의 평등한 자유와 존엄을 보호하고 실현하는 민주공화국은 어떤 은총의 산물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의 참여와 헌신의 결과로서만 성취할 수 있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시민적 책무’의 자발적 수용 또는 ‘시민 정신’의 발휘야말로 민주공화국에 어울리는 참된 애국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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