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7월 2010-07-01   1120

경제, 알면 보인다-신용카드가 만들어 낸 새로운 결핍



신용카드가 만들어 낸 새로운 결핍

제윤경 (주)에듀머니 대표


어느 이민 가정의 남편 월급은 150만 원이다. 필리핀에서 온 아내는 남편이 큰 부자라고 여기고 10만 원이 넘는 아이의 옷을 덜컥 사 입히는 일을 저질렀다. 외국인 아내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남편의 원망을 들어야 했다. 화폐의 구매력 개념이 형성되지 못한 탓이다. 평범한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150만 원의 돈이 빠듯한 생활비라는 개념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당연히 10만 원 이상의 아이 옷을 살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 것이 보통의 경우이다. 그러나 물가를 모르는 이민자에게는 그런 판단이 쉽지 않다. 대단히 큰돈이라는 생각에 덜 중요한 것에 쉽게 지갑을 연 것이다. 화폐 개념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 지갑에 만 원이 들어 있으면 돈 쓰는데 신중해지는 반면 십만 원이 들어 있으면 충동적으로 소비하게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만 원은 작은 돈이라는 생각이 들어 구매에 있어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신중해지는 반면 십만 원은 만 원짜리가 열 장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고 추상적인 의미의 ‘큰 돈’이라는 자신감으로 발전해 쉽게 지갑 속에서 빠져나가 버린다.



공짜로 인식되는 신용카드 소비

그나마 십만 원이라는 현금은 조금씩 지갑에서 빠져나가면서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한다.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현금이 지불되는 것을 물리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용카드는 그런 물리적 지불 과정이 없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단말기에 카드를 긁기만 했을 뿐 당장 내 지갑에서 소진된 것은 없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교환의 법칙에서 내 눈에는 포기되어지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잃는 것 없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좀처럼 갖기 어려운 기회이다. 결국 단말기에 긁고 다시 내 손에 쥐어지는 신용카드와 그로 인해 새로 무언가 소유하게 되는 경험은 인간의 인지능력 범위 내에서는 공짜의 짜릿한 경험이다. 이런 이유로 신용카드 사용이 일반화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의사결정 능력을 저하시킨다. 화폐개념이 추상화되면서 한마디로 돈을 제대로 못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화폐개념이 사라져가는 아이들

화폐 개념이 없다는 것은 일상적인 생활에 장애를 주는 일이나 다름없다. 가령 아이들 급식비가 필요지출임에도 그에 앞서 마트에 가서 장난감을 사버려 정작 급식비 내야 할 때는 잔액이 부족해 미결제 통보를 받는다. 결국 불필요한 것을 필요한 지출에 앞서 써버리고 나서 돈에 쫓기는 심정에 내몰린다.

가뜩이나 우리의 경제 환경에는 여러 함정이 있다. 소비를 자극하는 광고와 마케팅으로 인해 우리는 냉철한 소비의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상담 중에는 당장 대출이자가 소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도 아이를 무용학원에 보내는 부모도 있었다. 먼 미래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달 한 달 이미 현금흐름이 완전히 깨져서 조만간 파산절차를 밟아야 할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당장의 소비 조절을 하지 못하는 가정이 적지 않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자포자기 심정도 있겠으나 기본적인 화폐개념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황당한 일이다.

이렇게 성인들조차 기본적인 화폐개념이 사라지면서 의사결정 상 오류를 범하는 일이 빈번한데 사회생활의 기본을 배우고 자라야 할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엄마 돈이 없으면 신용카드로 쓰면 되잖아.” 지금의 부모 세대는 어릴 적부터 심부름으로 자연스런 경제교육을 받았다. 두부 한 모, 콩나물 몇백 원어치의 심부름 속에서 화폐의 구매력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은 대량 구매하고 한꺼번에 신용카드를 긁어 소비하는 부모의 소비생활 속에서 화폐 구매력 개념을 익히지 못하고 자란다. 특히 부모의 일상적인 신용카드 사용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이민자의 경우처럼 화폐 개념이 추상적이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자원의 크기가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것은 재화의 가치를 판단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재화의 가치는 객관적인 화폐 가치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아무리 싼 제품이라도 당신에게는 대단히 소중한 물건일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당신은 그 물건이 없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 재화의 가치란 상당히 많은 상황에서 그것을 이용하고 소유하는 개인의 주관에 의해 결정된다. 그에 비해 가격은 재화의 보편적인 필요와 선호를 반영해 결정된다. 많은 사람들이 비싼 가격에 지불할 의사를 갖고 있어야 높은 가격이 형성되지 않겠는가.

중요한 것은 가격과 자신의 필요, 선호의 상관관계를 판단할 수 있어야 자신이 어렵게 번 돈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필요와 선호, 가격의 합리성 따져야

스타벅스 커피 가격이 OECD국가 중 우리나라가 가장 비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싸야만 잘 팔리는 허영심을 이용해 제품의 질이나 그 나라 사람들의 라이
프스타일과 상관없이 ‘가격만 고급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참으로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요와 선호를 우선 생각하고 가격의 합리성을 따질 수 있어야 현명한 소비자이다.

그런데 필요와 선호에 앞서 비싸면 폼 난다는 의식이 소비의 의사결정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베블런 효과라고 한다. 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밝힌 이 원리는 일명 과시성 소비를 일컫는다. 일반적인 상품 시장 경제론에서는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든다. 그러나 사치성 소비는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더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글로벌 커피 브랜드 체인점들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높은 가격으로 장사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비 의사결정이 무능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결국 화폐개념이,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는 단순한 등식에 갇혀 있는 무지에서 비롯된 무능이다. 화폐가 교환 수단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환수단이기 때문에 화폐의 수량에 관심을 집중시킬 것이 아니고 그 화폐를 사용해서 갖게 될 편익 혹은 가치에 대한 설계가 우선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지금 당장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가 아니고 ‘필요한 것이 무엇이지?’라는 질문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지?’, ‘나를 지속적으로 깊이 만족시킬 것이 무엇이지?’라는 질문들을 던져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돈을 쓰고도 불행할 뿐 아니라 불편하며 결과적으로 늘 돈에 쫓기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신용카드의 결제 편리성이 주는 결과는 우리에게 새로운 결핍이다. 많은 것을 구매했고 소유했으나 정작 필요한 것이 늘 부족하고 좋아하는 것에는 쓸 수 있는 돈이 없게 되는 결핍 말이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