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1월 2011-01-01   1408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희망의 인문학으로 내 안의 자존감 일깨운다”

“희망의 인문학으로
내 안의 자존감 일깨운다”

이종수
성프란시스대학 간사,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 사무국장

 

그대 눈물 이제 강물되리니

모든 것이 내 삶에서 떠나 버렸다.
모든 꿈들은 사라져 버렸고 생활에는 텅 빈 공간만이 남아서 황폐해져만 간다.
새삼스런 일이 아닌데도 왜? 이렇게? 미련이 남고 후회스런 것일까?
가을색이 짙어지는 요즈음에는 더욱 더 옛 시절이 그리워서
염라형한테라도 하소연을 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중략)

염라형! 요즘 형을 만나고 싶어 안달복달 하는 사람이 많아서 인기가 좋더라고.
한때는 나도 먼발치에서 나마 형을 만날 뻔 했지.
인연이 안 되려고 그랬는지 그냥 돌아서 왔지만
솔직히 아직 형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놈의 돈 때문에 마지막 잎새 같은 인생이 되었지만
희망은 있어 왜냐구?  인문학이 있으니까.
얼마 남지 않은 학기 설렁설렁 다니고 있지만 마음만은 변치 않아
유종의 미를 거둬서 내 인생의 등불이 되어준 인문학에게
보답을 하고 보고 싶은 나의 패밀리들과 해후를 하는 그날까지
힘차게 살아갈 거야!

<저승이의 넋두리,  성프란시스대학 수료생의 졸업문집에서>

성프란시스대학을 마친 어느 수료생의 글이다. 그는 죽음을 예견했던 것일까? 지난 12월 어느 날 이 글을 쓴 이는 우리 곁을 떠났다. 가수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를 특히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그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가족들, 함께 공부했던 동기생, 동문들이 장례식장에 모였다. 한 동기생이 영정사진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넌 행복한거야. 이놈아. 노숙인이면서도 길거리에서 쓸쓸히 죽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여기를 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 있어. 널 위해서 말야. 그러니 편히 잘 가라”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과정 교육 목표와 운영내용

한국의 현장인문학1)은 필자가 몸담고 있는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과정인 성프란시스대학을 시작점으로 하는데 2005년 9월 20일 1기 입학생을 받았다. 성프란시스대학은 노숙인 다시서기센터를 운영기관으로 하고 있다.

  노숙인을 위한 사회복지라면 잠자리, 일자리, 먹거리, 의료서비스만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인간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기에는 부족하다. 성프란시스대학은 인간으로서 자존감 회복, 공동체적인 삶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2)

  그로 인해 노숙인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그들의 성장을 돕는 것이다. 인문학 경험을 통해 소외된 노숙인들이 가치관 형성 및 통찰력을 개발하여 스스로의 삶을 가꿀 수 있는 자아 존중감의 향상, 지역 사회내 지원체계 형성을 목적으로 한다.

  1년 과정으로 진행되는 성프란시스대학은 철학, 문학, 역사, 글쓰기, 예술사 다섯 과목을 기본 골격으로 한다. 강의실 안에서의 수업뿐만 아니라 여름방학 수련회, 졸업여행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체험을 병행하고 있다. 뮤지컬, 연극, 영화, 미술관 등의 관람과 고궁 답사 등이 그것이다. 

  작년 뮤지컬 관람 때의 일이다. 한 수강생이 이런 말을 했다. “차라리 그 돈을 그냥 주면 하루를 풍족하게 날 수 있는데….” 이 분들의 삶을 생각하면 정말 입장료에 해당하는 돈을 드리고 싶은 유혹이 들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접할 때마다 클레멘트 코스의 창시자 얼 쇼리스가 비니스 워커와 나눈 대화3)를 되새기게 된다.

  다시서기센터의 지하강의실에서 진행되었던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강의는 2009년 여름 지금 위치하고 있는 서울역 부근으로 옮겼다. 독립강의실이 생긴 것이다. 이곳에서 성프란시스인들은 정규수업뿐 아니라 독서, 컴퓨터, 회의 그리고 식사를 한다. 가끔씩은 동아리실과 동문회실로 쓰기도 한다. 모처럼 시작한 배움. 공부의 맛을 잊지 못하는 분들에게 있어 독립강의실은 반가운 소식이다.

  6년차쯤 되니 처음에 없던 고민이 생겨났다. 졸업생 숫자가 늘어난 것이다. 그래서 동문들을 위한 심화강좌를 만들었다. 성프란시스대학은 2009년부터 서울대학교 HK문명사업단과 연계하여 ‘문명과 윤리’라는 주제로 강좌를 이어가고 있다4). 그리고 겨울방학특강을 개설했다. 다른 강의의 강사진이 교수 등 학자들이었다면 겨울방학특강은 시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으로 그 범위를 확장시켰다.5) 사회와의 소통을 위한 고려이다.

  흔히 노숙인들을 ‘고립된 섬’, ‘유리같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닫혀있고 깨지기 쉽다는 의미이다. 소통의 방식을 처음부터 배우지 못했거나 피폐해진 삶으로 인해 잊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분들에게 올바른 토론방법과 소통방법이 체화되게 도와주는 데도 역점을 두고 있다. 자기성찰의 길을 열어주려는 것은 “모든 것이 내 탓이오”라는 식의 무조건 순응하는 착한(?) 국민이 되라는 것이 아니고 고급스런 단어를 나열하는 “선비노숙인”을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당한 분노를 올바르게 표출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을 지닌 “위험한 시민”을 만들려는 것에 더 가깝다.

  이 인문학 수업은 노숙인의 정신적 자립이 주목적이지만 그렇다고 경제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도 없다. 그래서 공공영역 일자리나 자활근로 등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있다. 성프란시스대학이 다시서기센터와 연결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수강생 스스로가 노숙생활을 청산하고 주경야독을 실천하는 경우도 있다.  

  대상이 노숙인인데 수강자들에게 수업료를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프란시스대학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모든 경비는 한국연구재단(구 학술진흥재단)의 시민인문학강좌 지원사업과 기업(삼성코닝정밀소재)의 후원으로 충당한다. 현재는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지만 위의 두 축이 언제까지나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기에 경제적 자립을 위한 고민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울러 선량한 마음을 지닌 많은 이들의 경제적·물질적 또는 재능후원 등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노숙인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갈 기회부여

아직 우리사회에는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존재하고 있다. 언론의 취재요청이 올 때 그래서 특히 조심스럽다. 노숙인을 따듯한 배려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이기보다 사회와 괴리시켜야 할 위험한 존재라는 식의 부정적 시각을 일으키는 선정적인 기사를 쓰는 경우도 적잖기 때문이다.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 때의 일이다. 많은 언론이 노숙인에 대한 마녀사냥식 기사를 쏟아냈다. “술 마시고, 라면 끓여먹고… 숭례문은 노숙자 ‘안방’이었다.” (○○일보, 2008. 2. 13) 방화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노숙인들까지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게 하는 잣대라면 예비범죄자 그룹에서 벗어날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6)

  성프란시스대학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 중 하나인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그로 인해 형성된 사회차별의 개선”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알게 하는 실례인 셈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인문학 과정은 노숙인들이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회부여가 목적이다. 그런데 사회는 지표, 결과, 수치를 요구한다. 성프란시스대학은 인간개조프로젝트가 아니다. 직업교육기관도 아니다.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사회적 기업도 아니다. 인문학 1년으로 사람이 완전히 바뀐다는 기대는 잠시 뒤로 하는 것이 좋겠다.

  성프란시스대학에는 풍물패 ‘두드림’이 있다. 풍물수업으로 시작했던 것이 반응이 좋아 성프란시스대학 동아리로 발전했다. 수업과 연습이 진행되었고 몇 차례 초청공연도 했고 얼마전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발표회도 가졌다. ‘두드림’ 단원들은 말한다. “우리의 공연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가겠다”고. “고단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우리의 공연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분들. 얼마 전까지 남들 앞에 모습을 내놓기를 꺼려했던 분들이다. 이런 변화된 모습을 성과라고 한다면 너무 싱거울까?  

  앞서 말한 성프란시스 수료생의 장례식이 끝난 며칠 뒤 함께 공부했고 함께 고인을 떠나보낸 성프란시스 수료생 한 분이 찾아왔다. 그는 나지막히 말했다.

  “나에겐 그 흔한 인맥이 없어요. 오직 있다면 여기 성프란시스대학 뿐이에요.”

  성프란시스대학은 노숙인들과 함께 공부하고, 웃고, 아픔을 나누고 즐거움을 나누며 살고 있는, 걷던 삶의 길목에서 잠시 방향을 잃고 주저앉은 이가 다시 무릎을 세우고 설 수 있도록 따뜻이 지켜보는 그런 공동체이다.

 

<성프란시스대학 2010년 학사일정>

2010. 3. 10    6기 입학식(성공회대성당)
2010. 3. 16    1학기 개강
2010. 3. 22    1학기 심화강좌 개강
2010. 4. 10    체험학습 : 강화 고려궁지 답사
2010. 5. 1     체험학습 : 연극 <카프카의 심판> 단체관람(문예회관)
2010. 6. 8     체험학습 :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사이>
                  단체관람(대학로 예술마당)
2010. 6. 17   체험학습 : 월드컵 단체응원(시청앞 광장)
2010. 6. 24   체험학습 : 연극 <햄릿서스펜스> 단체관람(대학로 예술극장)
2010. 6 26    성프란시스동문한마당(장흥 신원가든)
2010. 6. 30   1기 종강
2010. 7. 4    체험학습 : 콘서트 <김용우의 콧바람프로젝트 강강술래>
                 단체관람(마포아트센터)
2010. 8. 13-15    여름수련회 (충북 단양, 제천)
2010. 9. 30         2학기 개강
2010. 9. 16         2학기 심화강좌 개강
2010. 9. 18         체험학습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2010. 9. 21-23    한가위맞이 성프란시스한마당
2010. 11. 20       체험학습 : 전시회<피카소와 모던아트>(덕수궁 시립미술관)
2010. 12. 7         체험학습 : 연극 <불편한 상상>(CTS아트홀)
2010. 12. 11       체험학습 :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샤롯데 씨어터)
2010. 12. 18      송년맞이 성프란시스 동문한마당
2011. 1. 4         겨울방학 특강 개강 (예정)
2011. 1. 20-22   졸업여행 (예정)
2011. 2.16        성프란시스대학 졸업식 (예정)

-각주-

1) 대학밖의 인문학이라는 의미로 실천인문학, 시민인문학, 평화인문학, 자활인문학, 사회인문학 등으로도 불린다. 이는 미국의 인문학자 얼 쇼리스Earl Shorris의 클레멘트 코스에서 시작되었다.
2) 2006 얼 쇼리스 초청 국제세미나 가난한 이들을 위한 희망수업 p30 “노숙인을 위한 희망만들기 ‘성프란시스대학’, 임영인)”

3) 얼 쇼리스는 뉴욕의 베드포드힐스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비니스워커와의 대화에서 클레멘트 코스의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이 왜 가난할 것 같느냐?”는 얼 쇼리스 교수의 질문에 그녀는 ‘아이들을 박물관, 영화관, 전시회, 강연회에 데리고 다니며 ’시내 중심가의 사람들의 정신적인 삶‘을 배우게 하라고 충고한다. (희망의 인문학 p167 – 168, 이매진)

4) 2009년까지는 한학기당 10회이던 것이 2010년 부터는 학기당 15회로 늘어난다

5) 2009년 겨울방학 특강에는 송경용 신부, 야생초 편지의 황대권, 이원규 시인, 소설가 강기희, 지구촌동포연대의 배덕호 대표가 진행했다. 2010년 겨울방학특강은 한용걸 신부, 평화여행가 임영신, 참여연대 안진걸, 성공회대교수 겸 가수 이지상, 종교문화연구원장 이찬수 교수 등이 예정되어있다.

6) 경찰수사가 한창이던 당시 서울역 일대의 노숙인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거짓말처럼 잘 보이지않  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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